경쟁과 협력관계[요즘 어른의 관계맺기](2)

2023. 5. 3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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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우리 모두는 연결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그것이 처한 현실이고 관계의 본질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연결되는 방식은 두 종류인데, 경쟁관계와 협력관계가 그것이다. 나는 경쟁을 잘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경쟁을 했다. 위만 보고 살았다. 윗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고, 윗사람과 관계가 좋았다. 관계가 좋으니 소개도 받고 발탁도 됐다.

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는 경쟁하며 성장했다. 우리 국민은 경쟁을 잘한다. 경쟁심도 강하다. 어떻게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가능했겠는가.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바로 경쟁을 잘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모시고 해외 순방 갔을 때도 실감했다. 우리 교민은 세계 어디서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잘산다. 그만큼 경쟁을 잘한다.

나는 경쟁을 잘해 마침내 대통령 비서관이 됐다. 그때 처음으로 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쟁만 잘해서는 다른 비서관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나와 함께 일하는 행정관들이 협력해줘야 비로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협력을 이끌어내야 했다. 정보, 일, 시간 이 세 가지를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우선 아는 것의 공유다. 공직이건, 기업이건 조직은 아는 것으로 일한다. 아는 만큼 일을 잘할 수 있다. 정보가 실력이고 권력이다. 이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비서관을 찾으면 행정관들과 함께 가서 들었다. 부득불 혼자 듣는 경우는 낱낱이 공유했다. 수평적으로도 정보가 흐르도록 했다. 그래서 행정관들 사이의 정보격차도 해소했다. 많이 아는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 노하우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수시로 모였다. 아는 수준의 비대칭 현상에서 벗어나 상향평준화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갔다.

다음으로, 일의 공유다. 행정관 4명이 하던 연설문 작업에 비서관인 나도 포함시켜 5명이 했다. 대신 비서관이 하던 연설문 고치는 일도 5명이 함께했다. 감독이 따로 있지 않았다. 모두가 선수로 참여했다. 연설문 고치는 일을 함께하니, 자신이 맡은 분야 이외의 글도 잘 알게 됐고,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릴 때는 다른 사람이 일손을 덜어줄 수 있었다. 또 도와준 사람이 바쁘면 이를 되갚는 식으로 일을 공유했다.

끝으로, 직장인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도 공유했다. 방법은 함께하는 자리를 자주 갖는 것이다. 연설문 초안이 나올 때마다 쓴 사람이 한 단락씩 읽으면 나머지 4명이 고쳐줬다. 혼자 쓰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함께 모여 고치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고치는 시간은 학습의 시간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이 엇비슷해졌고, 결과물의 품질도 좋아졌다. 함께 모이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자율적으로 썼다. 할 일이 없으면 일찍 퇴근하고, 회의가 없는 날은 사무실에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됐다.

일의 최종 결과로 주어지는 인센티브 배분도 고민했다. 한명에게 몰아주는 무한경쟁 방식, 성과에 따라 분배하는 차등경쟁 방식, 공동기금으로 쓰거나 똑같이 나눠 갖는 비경쟁 방식 등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n분의 1로 나눠 가졌다. 경쟁보다 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은 협력을 잘해야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시대다. 서로 다른 게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 다른 게 섞이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 협력에는 차이가 중요하다. 서로 다르고 차이가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낸다. 차이를 긍정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개방하고 공유할 때 상생과 공존의 협력관계가 빛을 발한다.

경쟁의 순기능도 없진 않다. 승부욕에 불을 붙여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인다.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경쟁관계는 그러나 필연적으로 갈등이 따른다. 우열과 서열을 만들고 대립과 반목, 질시를 낳는다. 내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팀워크를 해쳐 성과를 떨어뜨리고, 품질 향상에도 장애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경쟁을 부추겨 일의 강도를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식은 이제 시효를 다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욕망에 비해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협력의 목표도 경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다. 협력을 통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죄수의 딜레마’가 이를 잘 보여준다. 협력적인 선택이 모두에게 이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을 함으로써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론이다.

결국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추구해야 한다. 맹목적인 경쟁과 무조건적인 협력은 모두 무모하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이 결합한 코피티션(Coopetition), 즉 경쟁적 협력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경쟁하되 사안별로 협력하거나, 협력과 경쟁 분야를 나눠 관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생산과 마케팅 분야는 경쟁하지만, 연구개발 부문은 협력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제는 경쟁자와도 협력한다. 협력 잘하기 경쟁을 하는 시대가 왔다.

이상적인 협력은 상호보완관계로 나아가는 일이다. 아내와 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보완관계다. 나는 소극적·부정적·비관적인 데 반해, 아내는 적극적·긍정적·낙관적이다. 나는 모든 일을 대할 때 안 좋은 결과를 예상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아예 하지 않거나,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후 착수한다. 아내는 전혀 다르다. 좋은 쪽으로 결과를 예상하고, 일단 시작한다. 아내는 가속장치, 나는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어느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고 절충하게 된다.

보완관계가 성립하는 조건은 다양하다. 첫째, 서로 가진 장점으로 다른 쪽의 단점을 메워주는 경우. 둘째, 한쪽은 남아돌고 다른 쪽은 모자라는 경우. 셋째, 너트와 볼트처럼 서로 맞물려야 제 기능을 발휘하거나, 커피와 설탕처럼 한쪽과 다른 쪽이 합해졌을 때 부가가치가 더 큰 경우. 넷째, 서로 다른 게 섞여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경우 등이다.

나는 연설비서관 시절 이러한 상호보완의 효능을 체험했다. 이전까지 경제 분야 연설문만 썼던 내 글에 정무·외교·문화 분야를 담당하는 행정관들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내용을 가미해주니 글의 완성도가 올라갔다. 일이 몰린 사람은 바빠서 짜증 나고, 한가한 사람은 일이 없어 눈치를 보는 일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혼이 나건, 칭찬을 받건 희로애락을 함께하게 됐다. 정보와 일과 시간의 공유를 통해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 관계를 만든 셈이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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