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스승의 날을 보내며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2023. 5. 30. 07: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얼마 전 스승의 날이었다. 필자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대학원 박사학위를 마무리할 때 까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스승님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부모님처럼 인자하고 따뜻한 미소, 학업을 이끌어 주실 때의 엄한 모습 등이 공통적인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국 땅 독일에서 박사학위 지도를 해주셨던 헨켈(henkel) 교수님이 유난히도 떠오른다. 처음 뵈었던 교수님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덥수룩한 수염에 꾸미지 않은 수더분한 얼굴이었지만 나를 쳐다보는 안경속의 눈매는 대단히 날카로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 인품과 따듯한 마음에 여러 번 감동했고, 첫 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필자는 정기적으로 교수님을 만나 뵙고 논문지도를 받았다. 매번 만나 뵙기 일주일 전에 논문을 먼저 드리고 교수님께서는 아주 상세히 읽어보시고는 면담 시간을 잡으셨다. 논문지도 방식은 아주 섬세했다. 먼저 필자에게 논문에 대해 먼저 설명하게 한 뒤, 의문이 드는 내용을 질문하시고 필자가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몇 번씩이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셨다. 당시에는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논문 요지를 파악하고 핵심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게 하려는 교수님의 교육법이었던 것 같다. 문제점을 지적할 때에도 틀렸다거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식이 아닌, '나의 생각은 이렇다'라고 참고적 의견을 주시며 지도해주셨다. 이후에 필자도 제자들의 학위 논문을 지도하며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로서 정말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렇게 할 때 제자는 논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3년 여의 논문지도를 받아 학위 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헨켈 교수님은 마치 본인의 논문 심사를 받는 것처럼 노심초사하셨다.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사하기도 하면서 괜스레 죄송하기도 했다.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별도의 방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오랫동안 심사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낙방한 것이 아닌가 하고 실망할 때 즈음,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교수님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 난다. 외부에서 오신 심사위원장의 최종 결정 권한을 감안하여 심사결과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진심어린 표정으로 수고했다고 표현해주시는 교수님의 눈빛은 처음 교수님을 만났을 때의 날카로운 눈빛과는 정 반대의 눈빛이었다. 논문심사가 끝나고 나서 본인의 일처럼 너무 기뻐하시던 모습, 파이프 담배 애호가였던 교수님이 3시간 동안 참았다가 한숨을 쉬며 담배를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며 '자식을 배려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고국으로 돌아와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씩 독일을 방문해 교수님을 만나고 지도를 받을 수 있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헨켈 교수님은 "오교수는 이제 나의 동료일세." 하시며 편한 대화를 즐기셨다. 필자가 안식년에 식구들과 함께 독일에 가있을 때에 우리를 초대하셨는데, 혹시 당신의 집이 낡아서 불편할까봐 인근 호텔을 잡고 식사 때마다 당신의 차로 함께 이동하며 스스로를 할아버지 교수라고 말씀하시던 모습도 기억 난다. 스승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승의 날을 보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대학에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제 대학의 행정을 책임지는 총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헨켈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부모와 같은 따뜻한 마음, 학문을 이끌어주시던 섬세한 태도,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여 제자들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선각자로서의 모습, 이 세 가지의 진정한 스승의 모습은 필자에게 스승이 어떻게 제자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귀한 스승님들을 만나고 지도를 받아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임에 감사하며 받은 사랑을 제자들에게 베풀어주는 것이 스승님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되었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