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작대기’ 엇갈린 김기현·이재명… TV토론으로 ‘하트’ 그릴까 [여의(汝矣)도록(圖錄)]

김병관 2023. 5. 3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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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작지만 넓은 섬이다. 규모는 작은 섬(여의방죽 안쪽 넓이 기준 2.9㎢)이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의 중심지다. 대다수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여의도에 거점을 튼 뒤 여의주(如意珠)를 거머쥐었고, 숱한 정치지도자가 이곳에서 명멸했다. 그래서일까. 여의도는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여의도(汝矣島) 등으로 불렸는데, 이 명칭들의 유래는 ‘넓은 섬’이라고 한다. 여의도에서 펼쳐지는 정치인의 입과 동선에 주목하는 것도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서다. 세계일보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모멘텀이 될 순간을 포착해 【여의(汝矣)도록(圖錄)】 코너로 연재한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6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식사 시그널'을 보고 있다. 뉴스1
#.장면 하나

이번 주 여의도에서 가장 눈에 띈 장면.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식사 시그널’을 보고 있다.

식사 회동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복잡한 신경전을 표현한 것.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대표, 원내대표의 ‘5각 관계’ 중 가장 주목받은 두 사람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김 대표가 이 대표에게 식사를 제안했지만 ‘국민들이 안 좋아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실이 알려진 것. 

김 대표는 25일 출입기자단과 티타임에서 이틀 전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있었던 일화를 밝혔다. 김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이재명 대표의) 옆자리에 앉아 ‘얼굴 한 번 봅시다. 밥이라도 먹고 소주를 한잔 하든지’라고 했더니 (이 대표가) ‘국민이 밥만 먹으면 안 좋아해요’라고 했다”며 “양당 대표가 만나 밥만 먹으면 국민이 안 좋아한다는 것인데,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당대표 당선 후 8일 만인 지난 3월 15일에도 민주당 당대표실을 찾아 이 대표에게 “격주에 한 번씩 공개든 비공개든 계속 대화를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구애’한 바 있다. 2개월 넘게 김 대표의 식사 제안이 이어졌지만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는 것. 김 대표는 출입기자단에 “(이 대표가) 날 만나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라고 했다.  

여당 대표의 식사 제안을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 대표는 돌연 김 대표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 대표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 국민들이 안 그래도 힘든데 여야 대표가 만나서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더니 그건 안 하시겠다고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2주 전쯤에 (김 대표가) 식사 제안을 했었다. 그래서 정책 대화를 하자, 국민 보는 데서 국민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맞겠다고 했더니 (김 대표의) 답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보여주기식 만남보다는 정책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제안을 거절했다는 취지다.

김 대표와의 만남에 까다로운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는 회동을 거듭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 대표와의 이른바 ‘영수 회담’을 가질 계획은 없는 상황. 여권 내에선 윤 대통령이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 등으로 검찰에 기소된 만큼 회동 시 수사기관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윤 대통령은 대신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협치 물꼬를 만들려고 하지만, 이 경우는 박 원내대표가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 ‘식사 시그널’의 화살표가 서로 맞닿은 사람은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박 원내대표뿐이다. 정치 입문 전 각각 경찰(윤 원내대표)과 기자(박 원내대표)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매주 월요일마다 오찬을 하며 현안을 논의한다는 후문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장면 둘

‘식사시그널’ 사진의 효과였을까. 여야 대표의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김 대표와 이 대표가 정책토론회 개최에 극적으로 합의한 것. 

이 대표는 26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나라 살림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국민의 삶을 어떻게 더 보듬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방식을 개의치 않고 대화하겠다”며 “공개적인 정책 대화는 언제든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밥 먹고 술 먹는 것도 좋은데 그것보다는 우리 국민들의 삶에 관한 민생에 관한 정책 대화를 공개적으로 해보자, 어떻게 하면 더 국민들의 나은 삶을 만들고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지 토론을, 논쟁을 아니면 대화를 합시다, 했더니 그건 또 거절하셨다”며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말씀드린다. 밥 먹고 술 먹는 거는 친구분들하고 하라”고 말했다. 

‘식사 시그널’ 사진이 여의도에 퍼진 다음 날 김 대표가 제안한 식사 회동은 재차 거절하면서 공개적인 정책 대화를 역제안한 것. 

그러자 김 대표는 “저는 이 대표가 친구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수락했다. 김 대표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아주 가까운 친구로서 흉, 허물없이 얘기할 수 있어야 국회가 협치와 대화 잘되는 것 아니겠나”라며 “저는 이 대표가 상대방이나 혹은 서로 간에 멀리해야 할 관계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정책 대화 제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어느 정책이 국민을 위한 것이고 나라를 위한 것인지 TV토론에서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전개해나가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 대표와의 ‘식사 회동’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 앞에 대놓고 회담하는 경우가 전 세계에 어디 있나. 흉, 허물없이 서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는 회담은 별도로 필요할 것”이라고 비공개 일대일 회동 역시 제안했다. 

양당은 즉각 두 대표의 정책 TV토론 성사에 환영의 뜻을 밝혔고 정책위의장과 비서실장을 주축으로 한 실무협의단을 꾸렸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2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합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장면 셋

‘식사시그널’ 이후 회동에 합의한 양당 대표는 부처님오신날에 함께 합장했다.

김 대표, 이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2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삼귀 의례를 하며 합장한 것.

두 사람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의 불교 용어인 자타불이(自他不二)를 강조하며 통합에 정진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국민의힘은 부처님의 자타불이 가르침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겠다”며 “온 국민이 화합하는 상생의 길을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각자도생이 아닌 공존 상생으로 나아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겠다”며 “화쟁(和諍)과 자타불이의 정신으로 힘을 모으면 나라의 위기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장면은?

그러나 김 대표와 이 대표의 식사 시그널 화살표가 서로를 가리키는 데까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TV토론의 구체적인 일정과 방식에 대해 여야 간 입장차가 큰데 실무협의단 논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다.

가장 큰 난관은 비공개 1대1 회담 성사 여부다. 김 대표는 TV 토론과 함께 비공개 1대1 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표와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통해 협치의 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의중으로 분석된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29일 SBS라디오에서 “TV토론으로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정책에 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 형식적이고 선언적인 의미로 그칠 수밖에 없다”며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고 의회 정치를 복원하는 계기가 되려면 비공개 정책회담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비공개 회동에 대해선 아직까진 뜨뜻미지근한 분위기다. 이 대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윤석열정부의 실정을 지적하고 대여 공세를 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29일 SBS라디오에서 “이 대표는 정책 대화를 통해서 국민들께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라며 “밥 먹고 술 먹고 그것은 국민들께서 평가할 방법이 없으니 공개적으로 얘기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토론 주제를 놓고 여야 간 입장차가 감지된다. 여당은 ‘자유주제’를 선호하지만,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정책 현안뿐 아니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보유 의혹 등에 대한 이 대표 답변을 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다. 

양당 모두 6월 초에 TV토론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무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시점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양당 정책위의장과 당대표 비서실장 등은 이번 주 초 회동을 갖고 사전 조율에 나설 예정이다. 다음 주쯤엔 김 대표와 이 대표의 ‘사랑의 작대기’가 서로를 향하고 식사 시그널에 하트 하나가 더 표시될 수 있을까. 

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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