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양회동, 윤석열, 김남국, 심상정

기자 2023. 5. 3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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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살에도 여전히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나이 듦에 대해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와 역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이 땅에서 최소한 세 가지만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최소주의적’ 생각을 한다. ‘고문’ ‘산업재해 사망’ ‘열사’가 그것이다. 반인류적 범죄인 고문은 이 땅에선 사라진 것 같다. 먹고살기 위해 출근했다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를 ‘자랑’하는 산재사망은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제는 ‘열사’다. 일반적으로 약자들이 절망에 빠지고 출구가 없으면 많은 경우 무장투쟁으로 나간다. 우리는 극단적 반공주의와 분단체제 아래에서 폭력 저항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던지는 ‘자기희생’을 택해왔다. 특히 전태일 열사를 시작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강고하고 야만적인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 절망해 목숨을 던졌다. 민주화가 35년 됐으면 이제 사라질 만한데, 또 노동열사가 생겨났다. 양회동 열사다. 15년 철근노동자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 노가다가 아닌 ‘건설노동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노동운동도 열심히 하던 그가 분신을 했다. 영안실 양 열사 영정 앞에서 추모의 묵념을 하고 있자 윤석열 대통령, 김남국·심상정 의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현대사는 노동탄압사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 한국 현대사는 ‘노동열사 양산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군사독재 정권도 노동운동을 빨갱이로 몰았지, 윤석열 정부처럼 조폭과 파렴치범으로 몰지는 않았다. 윤 대통령은 ‘건폭’(건설 조폭)이란 말로 노동운동을 공격했다. 노조 고용소개소처럼 일용직이라는 건설노동자 특성상 많은 나라에서 관행이 된 조합원 고용 요구를 ‘협박’으로, 노사 합의에 의한 전임비를 ‘갈취’로 몰아갔다. 양 열사도 건설사 대표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 불원서를 제출하고, 경찰에 “강요가 없었다고 말했는데 왜 갈취라고 기재했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양 열사는 죽음으로 항의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기획되고 조작된 무리한 수사가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양 열사의 죽음은 윤석열 정권이 공권력을 남용해 저지른 살인이다. 기가 막힌 것은 조선일보가 이 비극을 ‘제2의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몰고 가기 위해 민주노총이 분신을 방조했다는 가짜뉴스를 대서특필하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서대필 조작의 비극을 보고도 이러다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짓들이다.

최근 코인 투기로 더불어민주당을 ‘위장 탈당’한 김남국 의원도 떠올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이자 ‘강경파’를 대표하는 그는 윤석열 정부의 공권력을 상징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 저격수로 참석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이모 교수를 한 장관 딸의 이모로 착각해 국민적 코미디를 연출한 바 있는데, 그가 청문회 도중 코인 투기를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민주당이 촛불항쟁을 5년 만에 말아먹고, 윤석열에게 칼을 쥐여줬을 뿐 아니라 양 열사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 민중운동 탄압을 견제해야 하는 임무를 얼마나 철저하게 방기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동료 의원과 지지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 버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하며 오히려 지나친 도덕주의가 문제라니, 할 말이 없다. 하긴 노동자 보호는 ‘서민정당 코스프레용’일 뿐, 이 대표의 방탄과 자기들 지갑 두께가 중요하지, 하찮은 노동자의 목숨이 대수겠는가?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진보정당’의 상징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다. 주목할 것은 윤석열 정부가 굴욕적인 대일외교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노동운동과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나섰고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노동탄압이 ‘지지율 상승 전략’이 될 정도로 보수층만이 아니라 많은 대중에게 노동운동은 ‘혐오 대상’이 됐다. 정부와 보수언론 등의 ‘노동운동 악마화’가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등 ‘진보진영’은 노동운동 혐오에 대해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양 열사의 한을 풀어주고,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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