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격 앞두고...“아빠! 꼭 돌아와” 키이우선 하루 1000명 이별

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2023. 5.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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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수도원 추모의 벽엔 전사자 사진 230m 늘어서

“타투! 포베르타이샤!(아빠! 꼭 돌아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중앙역 1번 승강장. 군복을 입은 아빠의 오른팔에 안긴 여자 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던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꼭 안았다. 곁에서 애써 웃고 있던 엄마는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아빠는 한참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나서, 회색 배낭을 메고 손을 흔들며 열차 안으로 사라졌다. 열차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1년 넘게 격전이 벌어지는 동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걱정마, 다시 돌아올거야 - 지난 18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중앙역에서 전선으로 떠나는 군인을 가족들이 배웅하고 있다. /정철환 특파원

우크라이나의 ‘여름 대반격’을 앞둔 지난 18일(현지 시각) 오전 키이우 중앙역엔 전선(戰線)으로 떠나는 군인과 이들을 배웅하는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오전에만 1000여 명의 군인이 동부 돈바스와 남부 헤르손, 자포리자 등을 향해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승강장엔 남편과 아들·딸을 치열한 전장으로 보내는 가족들이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참지 못해 흐르는 눈물과 승리와 건강을 기원하는 격려가 엇갈렸다. 이날 전쟁터로 떠나는 둘째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는 야키우(59)씨는 “이 전쟁의 승리, 아들의 무사 귀환을 매일 기도한다”며 정교회식 성호를 그었다.

애타는 기도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청년은 늘어만 가고 있다. 20일 오전 키이우의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에선 동부 전선에서 목숨을 잃은 스물세 살 병사의 장례식이 열렸다. 신부의 뒤를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전우들이 좇았다. 그 뒤로 친구와 가족이 걸었고, 국기가 덮은 전사자(戰死者)의 관은 그 뒤를 따랐다. 성당 앞을 지나던 행인들은 젊은 병사의 관을 보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테오도르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울었다. “내 아들은 우리의 자유를 위해 죽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없는 우리 부부의 삶은 이제 감옥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날 키이우 번화가 ‘마이단 광장’ 앞 잔디밭에는 3000여 개의 작은 우크라이나 깃발이 꽂혀 있었다. 드문드문 미국과 영국, 폴란드 국기도 보였다. 깃발 하나하나는 전장에서 숨진 젊은이를 상징한다. 병사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하던 미로슬라바(30)씨는 “지난해 이맘때 깃발 몇 백 개로 이 광장에서 추모가 시작됐다. 어느새 빼곡할 정도로 늘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군 사상자 규모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다만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1만6000~2만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키이우 중심가 마이단(혁명) 광장 앞에서 꽃혀있는 작은 우크라이나 국기들. 국기 하나하나가 전사자 수를 상징한다. 외국인 국제여단 희생자 수만큼 다른 나라 국기도 꽃혀 있다. /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키이우의 상징인 ‘황금색 돔’으로 유명한 성 미하일 수도원. 이 수도원을 둘러싼 벽은 언젠가부터 ‘추모의 벽’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본래 이곳엔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친러 분리주의자와 내전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사진이 100여m에 걸쳐 가지런히 붙어 있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새로 희생된 병사들의 사진이 붙기 시작했다. 새로 붙은 사진이 어느새 훨씬 더 많아졌다. 5월 현재 이 ‘추모의 벽’ 길이는 기존의 2배 수준을 넘어 끝이 보이지 않는 230여m의 애도 공간이 됐다.

추모의 벽 길이는 지금도 계속 길어지는 중이다. 벽의 끝에는 전장에서 스러진 젊은이들의 사진이 미처 정돈되지 못한 채, 스카치 테이프로 부착돼 있었다. 벽 앞에는 가족들이 갖다 놓은 수많은 꽃과 화환, 그리고 편지들이 놓여 있다. 추모의 벽 앞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흐리스티나씨는 “꽃을 놓고, 기도를 하고, 사진을 어루만지고 가는 전사자 가족들이 매일같이 늘어난다. 몇 십 분씩 꼼짝도 않고 서서 울음을 삼키는 이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이날도 아들을 잃은 노인, 형제를 잃은 청년, 남편을 잃은 아내가 이 벽을 찾았다. 비탈리씨는 “지난해 마리우폴 근처에서 전사한 큰형의 기일”이라고 했다. 남편을 잃은 형수와 정성스럽게 꽃을 붙였다. 동부 도네츠크주 출신의 한 40대 여성은 벽의 사진을 가리키며 “8년 전에 친러시아 민병대에게 살해당한 큰오빠”라고 했다. 그는 “남편은 지금 참전 중이고, 아들은 곧 입대 연령(18세)이 된다”며 “하루빨리 러시아군이 물러나 더 이상의 희생이 없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도네츠크주는 러시아의 전쟁 명분 중 하나였던 친러 분리주의 지역으로, 현재 러시아군이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아동자선기금 ‘칠드런오브히어로스’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이후 1만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전쟁으로 부모 중 한 사람 이상을 잃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형태 주(駐)우크라이나 대사는 “지난 12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평화’를 주제로 한 미술 대회를 했는데, 입상자인 10세 소녀가 ‘며칠 전에 아버지가 전사했다’고 해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며 “전쟁으로 부모를 떠나보낸 어린이들이 이곳엔 너무나 많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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