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문제는 ‘흑인 인어공주’가 아니었다
‘정치적 올바름’ 논쟁까지 촉발
디즈니가 기획한 마케팅 전략
거대자본의 문화적 폭력 거둬야
애초에 ‘인어공주’를 보러 갈 생각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통틀어 ‘공주 판타지’ 같은 것은 없었다. 노스탤지어 마케팅에 현혹될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동화책 없이 자랐기에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됐다는 얘기도 나이 들어 철 지난 풍문처럼 알게 됐다. 안데르센의 고약함을 존경하며 동화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이 빛날 수 있음에 감격했다. 1989년 ‘디즈니 인어공주’가 나왔을 때, 주인공 ‘에리얼’이 적극적인 캐릭터로 변모했다는 얘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결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적극성인가,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 사랑과 결혼의 통상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는 것이 적극성 아닌가.
‘2023 인어공주’는 ‘1989 인어공주’ 유산을 수정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선한 의도는 함부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선한 의도를 달성하는 것은 더 큰 목적을 갖는다. ‘반성하는 디즈니’라는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은 다시 돈으로 환원된다. 리메이크는 돈이고, PC를 가미한 원작 리메이크는 환산가치를 더 가산한다.
흑인 인어공주로 흑인 어린이의 자존감을 높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인종 갈등이다. 백인이 백인이라서 우월의식을 갖는 것이 이상 증상이라면, 흑인이 흑인이라서 자존감을 갖는 것도 이상 증상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인종이 정체성화하는 것을 지양하는 태도다.
‘인어공주’에는 과연 치트키 장면도 있다. 한 숏에 담긴 남녀노소 다인종 인어의 롱테이크 패닝 장면이다. 이 숏은 빌드업 된 장면이 아니다. 뜬금없기에 작위적이다. 갑작스러운 이 숏은 관객에게 인류애를 강요한다. 환하게 웃고 있는 남녀노소 인어와 귀엽게 분장한 어린이 인어. 그 장면은 ‘인종 전시장’처럼 보인다. 이 유토피아적 비전을 비판한다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증거일까.
‘1989 인어공주’는 단지 남녀가 결혼하지만, ‘2023 인어공주’는 그 결혼으로 전 세계가 화해한다. 결혼으로 전 세계가 화해한다는 설정은 신냉전·신자유주의 시대 갈등과 양극화를 은폐한다. 전 세계가 하나라는 환상이 갈등과 냉전과 이해관계를 단순화한다. 한자리에 모인 다인종 인어는 갈등을 모르는 세계시민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인어가 환상이 아니라, 갈등이 없는 것처럼 웃고 있는 그 태도가 환상이다.
수많은 인어가 ‘인종 전시장’에 나열된 풍경으로 소비되고 사라지는 것처럼, 디즈니는 PC주의와 인류애로 ‘인어공주’를 포장해 판매하고, 관객을 소비자로 소모한다. 인류애 롱테이크 속 다양한 인종의 인어가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은 돈을 내고 콘텐츠를 소비할 다양한 인종의 수많은 관객이다. ‘2023 인어공주’가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영화 상영에서 남은 또 다른 이슈와 이미지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으로 이동되고, 이어지는 디즈니 콘텐츠로 리부트될 것이다. 또 다른 인종의 ‘인어공주’ 스핀오프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양한 인종의 바비 인형처럼 에리얼의 인종은 쉽게 바꿀 수 있다. 거기서 나오는 대중의 비판은 다시 마케팅으로 재활용될 것이다.
PC 논란은 거대자본 디즈니가 미리 기획해 놓은 연쇄 마케팅 전략일 수 있다. 그 논란으로 ‘인어공주’를 소비하는 것은 거대자본이 기획해 놓은 프레임에 갇히는 셈이 된다. 에리얼의 외모나 인종을 들어 ‘나의 꿈’, ‘나의 에리얼’ 운운하는 비판은 결국 자본의 권력에 포획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투쟁은 거대자본이 기획한 마케팅으로 재수렴될 뿐이다. PC에 대한 과잉 담론이 정작 있어야 할 비평 담론을 봉쇄해 버린다.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은 ‘나’의 환상을 뺏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거대자본의 문화적 폭력을 거두라는 의미로 전이돼야 한다.
전 세계 어린이는 세 부류로 나뉜다. 에리얼을 ‘디즈니 인어공주’로만 아는 어린이와 ‘안데르센 인어공주’를 읽고 상처받은 어린이. 그 상처는 사랑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문제 제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인어공주를 모르는 어린이가 있다. ‘디즈니 인어공주’는 ‘인어공주’를 모르는 어린이가 있다는 진실을 은폐한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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