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급이 맡던 ‘근로감독관’ 업무, 기피 현상에 9급 신입에 전가

조해람 기자 2023. 5. 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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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9급 인원 4배 늘어
“하위직에 일 몰아주기 탓”
악성 민원에 극단 선택도
이인영 의원 “처우 개선을”

“워라밸 박살 난 채 근로자랑 고용자 사이에 껴서 욕먹는 게 일이다. 7급 공무원들도 다들 근로감독관을 안 하려 하니 9급 신규 잔뜩 뽑아서 숫자만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맞춘다.”

노동절인 지난 1일, 충남의 한 9급 신입 근로감독관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뒤 온라인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다. 숨진 근로감독관이 일한 곳에서 근무해 봤다는 글쓴이는 “편제상 9급은 과에 한두 명 서무 담당으로 배치되는데, 서기보(9급)가 과마다 30%가 넘어간다”며 “신규들이 그만두면 또 뽑으면 된다(는 식)”이라고 했다.

정부가 몇년 사이 근로감독관을 증원하면서 대부분을 신규 9급 공무원으로 채워 논란이 일고 있다. 통상 근로감독관의 핵심 업무는 ‘특별사법경찰관’이다. 수사·증거수집 권한이 부여되는 7급 이상 공무원이 담당한다. 하지만 강도 높은 업무로 기피 현상이 심각해 수사 보조를 주로 담당하던 ‘특별사법경찰리’인 9급 공무원이 일선 근로감독 행정에 대거 투입되고 있다.

29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최근 5년 직급별 근로감독관 정·현원 현황’을 보면, 근로감독관 현원은 2019년 2457명에서 2023년 3월 2874명으로 400여명 늘었다. 2017년(1687명)과 비교하면 1000명 이상 증가했다.

증원 인원 대부분은 9급에 쏠려 있다. 9급 근로감독관 현원은 2019년 109명에서 2023년 3월 400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2023년 3월 기준 정원(99명)의 4배를 넘는다. 반면 7급 현원은 같은 기간 918명에서 1052명으로 느는 데 그쳤다. 2023년 3월 정원(1374명)에는 여전히 미달이다.

9급으로 입직해 근로감독관을 하다가 현재 다른 업무를 하는 30대 중반 A씨는 29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당사자 조사와 보고서 작성, 인허가 업무까지 하다 보면 주말도 없이 1주일에 3일은 최소 오후 9시까지 일했다”며 “동기가 10명이라면 2명은 그만두고, 나머지 4명은 다른 곳으로 업무전환을 한다”고 전했다. A씨는 “절대적인 업무량도 많은데 경험 부족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심하고, 같은 사건이라도 어리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젊은 하위직에 일을 많이 몰아주는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증원 효과로 근로감독관 1인당 신고사건·근로감독 처리 건수가 줄기는 했다. 다만 ‘숫자’를 넘어 업무의 질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원은 “노동자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의 구조적 문제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9급 쏠림은) 근로감독관을 크게 증원하는 과정에서 7급만으로 모든 게 안 되다 보니 일어난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9급이든 7급이든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현장 선배들과 노동부의 도움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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