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괌옥’
지난 23일 오후만 해도 적도 위 서태평양의 괌(Guam)은 평온했다. 사람들은 해변에서 낙조를 즐겼다. 태풍 ‘마와르’의 접근 소식을 들었지만 그동안 섬을 거쳐간 숱한 태풍들처럼 그저 그렇게 지나가려니 했다. 하지만 다음날 초속 50m의 강한 비바람에 나무가 뽑히고 집 지붕이 뜯겨 나갔다. 호텔이 침수되고 전기와 수도, 인터넷이 끊겼다. 태풍 마와르는 시속 10㎞의 속도로 더디게 이동하며 섬 전체를 할퀴었다. 바람은 25일부터 잦아들었지만 폐허가 된 공항에선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없었다. 휴양지에서 안식을 즐기던 여행객들은 발이 묶였다. 괌 휴양지가 ‘괌옥(Guam獄)’이 됐다.
여행을 하다보면 돌출 변수가 생겨 계획이 엉클어지는 경우가 있다. 당시엔 당혹스럽지만 이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는 점도 있다. 여행의 묘미이다. 하지만 태풍에 갇혀 괌에서 최악의 경험을 한 3400명의 한국 관광객들에게 적용될 만한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섬 전체가 재난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했고, 여행객들은 극한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29일 가까스로 하늘길이 열리자 국적기들이 대거 괌으로 출발해 관광객 ‘구조’에 나섰다.
적도 위 서태평양에 자리 잡은 괌은 원래 태풍이 많은 곳이지만 우기인 8~10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건기인 5월에 4등급의 강력한 태풍이 강타한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괌뿐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이상 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한여름도 아닌데 북반구 곳곳이 펄펄 끓고 있다. 태국 북서부는 지난달 14일 최고기온 45.4도를 기록했고, 미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등도 이상 고온을 겪었다. 적도 부근 소말리아에서는 40년 만의 최악 가뭄과 홍수가 발생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기후변화 등으로 향후 5년간 기록적인 고온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동태평양 열대 해수면 온도가 0.5도 이상 올라가는 ‘슈퍼 엘니뇨’도 올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더운 바닷물로 대기 수증기량이 증가하면 초강력 태풍과 폭우, 폭염, 극단적 가뭄 등이 발생한다. 이제 지구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 기상 이변으로 여행지에서 고립돼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빈발할 것이다. 앞으로는 여행 때 만약을 대비하는 ‘생존배낭’을 챙겨야 할 듯하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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