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개혁·강권 오가며 20년간 ‘무소불위’

박은하 기자 2023. 5. 2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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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와 종교를 분리한 세속주의 공화국 튀르키예에서 정치적 소수파인 무슬림 세력을 대변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20년간의 통치 끝에 ‘역사의 전환’을 말하는 지도자가 됐다. 지난 20년은 세계사에서 튀르키예의 역할을 변모시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3세 때 가족들과 함께 이스탄불로 이주해 빈곤층 거주지에서 자랐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과 아랍어 과정이 커리큘럼에 포함된 종교 지도자 양성학교를 다녔다. 이 학교 재학 시절 좌파 운동에 맞서기 위해 보수적 청년 집단을 키우려는 민족주의 학생 그룹에 발탁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4년 무슬림 복지당 소속으로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됐다. 시장 재직 기간 낙후된 상수도, 쓰레기 처리시설, 대중교통의 현대화를 추진해 물 부족 및 대기오염, 교통혼잡 문제를 크게 개선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7년 종교적 내용이 담긴 시를 낭송했다가 증오를 선동한 혐의로 기소됐다. 1999년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시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2001년 종교 학교 출신들과 함께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했다. 2003년 의원내각제였던 튀르키예에서 총선 승리로 총리가 됐다. 에르도안 정부는 형법을 개정해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2013년 이스탄불의 도시 개발에 반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시위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노선을 바꾼 결정적 계기 중 하나로 평가된다. 에르도안 정권은 반정부 시위에 강경진압으로 대응했다. 에르도안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해 성공했고 2014년 개헌 이후 첫 직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2016년 7월 군사쿠데타가 발생했으나 실패로 그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은 더욱 강화됐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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