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통치’ 길 닦은 에르도안에…푸틴 “친애하는 친구” 반색

정의길 2023. 5.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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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튀르키예 에르도안 재집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대선 결선투표 다음날인 29일(현지시각) 앙카라 대통령궁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당선 연설을 하고 있다. 앙카라/타스 연합뉴스

“다시 한번 세계적 균형이 재형성될 것이다. 튀르키예는 세계 질서에서 특유의 세력과 강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자정을 막 넘긴 29일(현지시각) 새벽 튀르키예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를 확인한 ‘스트롱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대통령이 수도 앙카라의 대통령궁에 모습을 드러냈다. 광장에 운집한 수만명의 인파가 튀르키예 국기를 흔들며 거센 함성을 질렀다. 에르도안은 결선까지 가는 치열한 대선으로 두 동강 난 민심을 어루만지듯 “8500만 튀르키예인들이 모두 승리를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전략 경쟁과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적 균형이 재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튀르키예가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며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다짐했다. 에르도안은 그동안 10월29일 건국 100주년을 맞는 올해를 ‘새로운 튀르키예의 세기’가 시작되는 해로 불러왔다.

이날 승리 선언에 앞서 아흐메트 예네르 튀르키예 최고선거관리위원회(YSK) 의장은 개표율이 99%를 넘은 28일 밤 10시께 에르도안(정의개발당·득표율 52.16%)이 야권 공동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74·공화인민당·47.84%)에게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튀르키예인들이 연간 80%(지난해 10월 물가상승률)라는 살인적인 물가상승률 등 경제난에도 위대한 튀르키예라는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한 에르도안을 지지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21세기의 술탄’이라 불리는 에르도안이 재집권하면서 그가 추진해온 튀르키예의 대외 정책이 앞으로도 이어지게 됐다. 2003년 집권한 에르도안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면서 ‘이슬람주의’와 ‘튀르키예주의’에 바탕을 둔 독자 외교로 서구와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왔다. 이는 서방과 중·러의 갈등 구도 속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존재감을 키우는 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과도 큰 틀에서 맥이 닿는다. 이에 반해 클르츠다로을루는 친유럽·친우크라이나 정책을 펴겠다고 맞섰다. 이 두 노선 간의 투쟁에서 에르도안이 승리하며 미국 등 서구에는 고통스러운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과 국제질서의 블록화란 현상이 더 분명해지게 됐다.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1923년 건국한 튀르키예는 케말 파샤(1881~1938)의 세속주의와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유럽을 향한 서구화를 지향했다. 이 흐름에 따라 냉전 시대엔 나토 회원국으로서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 구실을 했다.

냉전 해체 이후인 2003년 집권한 에르도안은 유럽연합(EU) 가입으로 상징되는 대외 정책을 접고 중동 내 역할을 확대하고 러시아·중국과 관계 개선을 하는 쪽으로 외교 노선을 전환했다. 튀르키예를 유럽이 아닌 유라시아 국가로 자리매김시켜 과거 제국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포퓰리즘 외교’이자 ‘실용적 등거리 외교’이기도 했다.

2011년 봄 ‘아랍의 봄’ 사태는 이 노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슬람국가(IS) 격퇴 전쟁에 동원된 쿠르드족 무장 세력이 자국 안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미국과 갈등을 벌였다. 또 시리아·리비아 내전에 개입하고, 이란·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확대했다. 2016년 7월 군사 쿠데타를 진압한 뒤엔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 대외적으로는 ‘탈서방·등거리’ 행보를 강화했다. 쿠데타가 미국의 사주로 일어났다고 생각한 그는 중국·러시아·이란과 관계를 확대했다. 2019년엔 나토 회원국이면서 러시아의 S-400 미사일 방공망을 도입해 미국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이 가운데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위상을 한층 더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의 침공 자체는 비판하면서도, 서구가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를 싼값에 사들이면서 우크라이나에도 무기를 파는 등 ‘양다리 걸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흑해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우크라이나와 마주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강점을 살려 개전 초 평화협상을 중재하고, 지난해 7월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 협상이 타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스웨덴이 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족 활동가들을 보호하고 있다며 나토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

만만치 않은 스트롱맨의 재집권이 확정되며, 미국 대외 정책 역시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에르도안이 향후 중·러와 관계 강화에 나서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서쪽에서 큰 구멍이 나게 된다. 사우디와 관계 악화, 이란 핵협정(JCPOA) 복귀 불발 등 중동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거꾸로 러시아는 중국·인도에 이어 튀르키예라는 또 다른 뒷문을 계속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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