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행복 속에 감춰진 불행···자매의 '삶의 조건'

박민주 기자 2023. 5. 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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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라킨의 시 '나날들'이 병실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극단적인 시도 끝에 병원에 입원한 언니 '엘프(사라 가던 분)'가 자신을 찾아온 메노나이트 종파 교인을 향해 옷을 벗으며 응수한 시의 구절이다.

그러나 동생 '욜리(앨리슨 필 분)'은 결국 엘프의 마음은 살아가는 나날들이 아닌, 죽음을 향해 있다는 무력감에 젖어든다.

그럼에도 엘프는 욜리에게 존엄사가 시행 중인 스위스로 데려달라는 부탁을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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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사소한 슬픔'
행복하게 보였던 언니 극단 시도
불행한 인생에 힘든 동생이 만류
죽음 바라보는 엇갈린 자세 그려
영화 '나의 사소한 슬픔'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에이드
[서울경제]

“나날들은 왜 있을까? 나날들은 우리가 사는 곳, 그곳은 오고 우리를 깨우지···”

필립 라킨의 시 ‘나날들’이 병실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극단적인 시도 끝에 병원에 입원한 언니 ‘엘프(사라 가던 분)’가 자신을 찾아온 메노나이트 종파 교인을 향해 옷을 벗으며 응수한 시의 구절이다. 자매는 메노나이트 종파로 인해 엄격하게 양육돼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그러나 동생 ‘욜리(앨리슨 필 분)’은 결국 엘프의 마음은 살아가는 나날들이 아닌, 죽음을 향해 있다는 무력감에 젖어든다.

마이클 맥고완 감독의 영화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은 영화 ‘우먼 토킹’의 원작자 미리엄 토우스의 동명의 소설을 토대로 한다. 영화의 제목은 시인 새뮤얼 콜리지의 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자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가 다르다. 엘프는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다. 다정한 남편과 함께 잘 관리된 근사한 집에서 산다. 반면 욜리는 험난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작가지만 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에도 고통을 느낀다. 개인적인 삶도 제대로 풀리는 게 없다. 남편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재촉 중이다. 욜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남자들과의 가벼운 만남을 이어간다.

영화 '나의 사소한 슬픔' 스틸컷. 사진 제공=스튜디오 에이드

삶의 조건만 놓고 봤을 때 엘프는 죽음을 꿈꿀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엘프는 늘 마음 속에 ‘유리로 된 피아노’가 놓여 있어 괴롭다고 토로한다. 언니의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온 욜리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의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엘프에게 제발 살아달라고 애원한다. 그럼에도 엘프는 욜리에게 존엄사가 시행 중인 스위스로 데려달라는 부탁을 건넬 뿐이다.

엘프는 욜리의 삶에 짙은 비애를 드리운다. 하지만 인생을 가득 채운 욜리의 슬픔들은 슬픔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씩씩하게 주변인들의 죽음을 이겨내는 어머니를 닮은 그의 유머와 해학이 간간이 엿보인다. 앨리슨 필은 사랑하는 언니와의 이별을 직감하는 동생의 절망을 호소력 있게 그려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서 만삭의 선생님으로 분하기도 했다. 드라마 ‘빨간 머리 앤’으로 알려진 배우 에이미 베스 맥널티도 반가운 얼굴을 비춘다.

영화는 지난 2021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후 이듬해 밴쿠버 영화 비평가 협회 최고의 캐나다 영화·각본·여우주연·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겨울이 담긴 영화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노스베이에서 촬영됐다. 다음달 14일 개봉. 102분.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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