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Times 제휴사 칼럼] G7,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때

2023. 5. 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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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G7(주요 7개국), 어서 와 G20(주요 20개국)."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제1회 미국 워싱턴 G20 정상회의를 위와 같은 헤드라인으로 알리며 '기존 질서의 확실한 변화'라고 평했다. 협력적 세계 경제 질서를 향한 희망은 2009년 4월 제2회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정점에 달했으나 오늘날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도 '잘 가 G20, 어서 와 G7' 같은 헤드라인은 찾아볼 수 없다. G7 회원국이 지배한 초창기 세계는 G20 간 협력보다 먼 이야기가 됐다. 글로벌 협력도, 서방 선진국의 패권도 이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듯 보인다. 다음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분열 그리고 무질서가 아닐까.

이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G7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지향했던 바가 아니다. 히로시마 G7 공동선언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부터 군비 축소 및 핵 비확산, 인도·태평양, 세계 경제, 기후변화, 친환경 에너지 등 환경문제, 경제적 회복탄력성과 경제 안보, 무역, 식량 안보, 보건, 노동, 교육, 디지털, 과학기술, 젠더, 인권, 난민, 이주, 민주주의, 테러, 폭력주의, 국제적 조직범죄, 중국·아프가니스탄 및 이란 외교 등을 언급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포괄적이었다.

1만9000여 자 분량에 이르는 해당 성명은 마치 세계 정부의 포부를 나타내는 듯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런던 G20 정상회의 선언문은 3000자를 겨우 넘겼다. 당시 경제위기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비교 자체가 공평하지 않겠다. 그러나 산만한 지향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우선시하면 중요한 건 결국 아무것도 없다.

美 패권과 G7 경제력은 옛말

게다가 미국의 단극 체제와 G7의 경제적 지배력은 이제 옛말이 됐다. 물론 G7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응집력 있는 국가 간 경제 협의체다. 일례로 세계 주요 기축통화는 모두 G7에 속한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23년 사이 G7(구매력 기준)의 글로벌 생산량 비중은 44%에서 30%로 감소하고, 모든 고소득 국가의 생산량 비중 역시 같은 기간 57%에서 41%로 줄었다.

반면 7%에 불과하던 중국 비중은 19%로 증가했다. 오늘날 중국은 경제 강국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G7에는 이미 익숙한) 부실채권을 동반했으나, 이를 통해 중국은 개발도상국의 최대 투자국(채권국)이 됐다. 신흥 경제국과 개도국에 중국은 G7보다도 중요한 경제 파트너다. 그 예로 브라질을 꼽을 수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으나 중국의 압박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G7이 여타 국가로 확대되고 있다. 올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는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호주 그리고 한국이 참석했다. 그러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포괄하는 신흥 경제 5국 '브릭스'에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는 19개국에 달한다. 2001년 짐 오닐 골드만삭스 회장은 브릭스 개념을 최초로 제안하며 해당 국가들이 강력한 경제 협력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필자는 브릭스가 곧 중국과 인도를 뜻한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차원에서 그 예상은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런데도 현재 브릭스는 세계 경제에서 강력한 집단으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미국과 그 동맹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열망이 브릭스 국가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인구 중 10%에 불과한 G7이 언제까지 기존 역할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혹은 언제까지 유지해야 할까?

때로는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자국의 민주주의와 국경을 마땅히 수호하는 것이 정치적 목표였던 G7 시대는 이제 제쳐둬야 한다. 오늘날 이들의 국경 수호 목표는 우크라이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실로 서방세계 싸움이다. 이보다 더욱 시급한 문제와 고민거리가 산적한 전 세계 전쟁이 될 가능성은 없다. 최근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행보는 긍정적이었으나, 오직 서방세계만 우크라이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경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위험할 정도로 허튼소리였던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으로 관점이 변하고 있는 움직임 역시 긍정적이다.

디리스킹이 곧 합리적이고 일관적인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다면 그 영향은 더욱 긍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많은 이의 예상보다 더욱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에너지와 필수 원자재·부품의 공급망은 마땅히 늘려야 한다. 그러나 단적으로 대만이 보유한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단순히 확대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상호협력의 길 다시 찾을 때

세계 경제에 대한 관리 방안은 더욱 중요한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점차 분열하고 있는 세계에서 G7의 패권을 지킬 수호자일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 현안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신규 자원을 어떻게, 언제 구할 것인가? 아울러 중국과 그 동맹국의 체제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그보다는 현실에 순응하고 쿼터(투표권)와 지분율을 조정하고, 세계 경제력의 중대한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중국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채무 조정 협상 참여를 대가로 중국의 발언권을 확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중국의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 또 한 번 논쟁을 시작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디리스킹에 관한 모든 논의는 전쟁과 기후라는 두 가지 최대 현안 대신, 사소한 사안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G7은 여전히 공동 가치와 이해관계를 수호해야 한다. 그러나 G7 명운이 곧 세계 명운을 좌우할지라도 이들 국가는 이제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 상호 협력의 길을 다시 한번 찾아야 할 때다.

※이 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마틴 울프 칼럼 'The G7 must accept that it cannot run the world'를 매일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마틴 울프 FT 수석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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