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중관계, 지금이 큰 고비다

2023. 5. 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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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전쟁에서 한중 관계가 큰 고비를 맞고 있다. 2016년 사드 배치로 훼손된 한중 관계는 아직 미명(未明)의 단계다. 2022년 20차 공산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의 연임도 확정되었지만, 양국은 아직 '견제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1년 동안 미국, 유럽, 일본 등과 관계 개선에 성공했지만, 한중 관계는 망망대해에 정지한 선박 같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캐서린 타이와 중국 상무부장 왕원타오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만나 양국 경제·무역 정책에서 팽팽히 맞섰으며 한국 통상교섭본부장과 중국 상무부장은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양국 간 온도 차는 완연했다. 중국은 반도체에, 한국은 원·부자재 공급망에 중점을 둔 협상이었다.

미·중 마찰에서 미국이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고 첨단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탈동조화(디커플링)하는 압박을 가하자 중국은 마이크론 반도체 수입 제재로 응수했다. 중국의 마이크론 제품 구매 중단은 한미 간 이간책처럼 보인다. 중국의 제재 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겠다"며 동맹국과 함께 맞서겠다고 했다. 또한, 공개적으로 중국의 제재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빈자리를 채워서는 안 된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상무장관과 일본 경제산업상이 미국에서 미·일이 반도체 분야 기술 협력 로드맵을 만들기로 한 '공동성명'을 거론했다. 로이터통신도 미·일 간 협력은 반도체를 비롯해 양자 컴퓨팅 분야와 인공지능(AI) 및 바이오 등 분야의 논의가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일본은 미·중 대립에서 미국과 한배를 탔고, 한국·대만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에서 전방에 처한 형세다. 혹자는 한국·대만은 중국과 협력하는 부분이 많기에 대중국 봉쇄전략에서 미국의 '완전한 동맹'으로 보기 어렵다는 우려 섞인 말도 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며 한·미·일 협력구조로 북핵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높였다. 북핵 이슈로 인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외교는 대단한 성과를 거뒀으며 국가 위상이 격상된 역사적 장이었다. 지정학·지경학적으로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는 한국 국익 추구의 큰 축이다. 그러나 미국이 대중 카드로 한국을 활용하고 중국도 대미 경쟁에서 한국을 압박한다면 결국 어부지리는 일본의 몫이 될 수 있다. 미·일은 중국발 경제안보 위험을 함께 디리스킹(derisking)하며 반도체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대만 TSMC가 미국과 일본에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다.

이제 한국은 한미동맹과 한·중·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한반도 안보 이슈와 더불어 국익을 위한 경제안보에 집중해야 한다. 이에 한중 관계의 건설적 회복을 통한 한반도 평화 이슈에 중국도 참여하게 해야 한다. '덕이 있으면 친구가 있다(德必有隣)'라는 태도로 이웃을 대하면 그 품성이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도 소프트 파워이자 국격(國格)이 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심성(心性)이 될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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