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명관광지 ‘정방폭포’에 숨어있는 슬픈 4·3 이야기
4·3 당시 남녀노소 수백명 집단총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인 제주 정방폭포. 화려한 관광지 이면에는 제주4·3사건 당시 주민 수백여명이 집단 총살당한 학살지라는 참혹한 사연이 숨겨져있다. 75년만에 이 곳에 한 맺힌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공간이 생겼다.
제주도는 29일 오전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일원(동홍동 298-1번지)에서 ‘정방4·3희생자 위령공간’을 마련하고 제막식을 열었다.
정방폭포는 폭포수가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로,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이다. 하지만 정방폭포 일원은 4·3 당시 3살 아이부터 여성, 노인까지 주민 수백여명이 억울하게 즉결 처분당한 산남 지역(한라산 이남지역) 4·3 최대 학살터다.
제주4·3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보면 군경 토벌대는 1948년 11월부터 초토화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도피하거나 혐의자로 분류된 주민을 잡아들였다. 서귀포에서는 서귀면사무소 옆 건물인 농회창고에서 군부대 정보과가 잡아들인 주민을 취소했다. 이곳은 특히 혹독한 구타와 고문은 물론 즉결처형자로 분류해 처형하는 곳으로 악명 높았다.
즉결처형 대상자들은 해안 절벽 곳곳에서 총살됐다. 특히 정방폭포와 인근 ‘소남머리’ 일대에서 확인된 희생자수만 250여명에 달한다. 특히 1949년 1월22일 정방폭포에서 이뤄진 학살은 대상 대부분이 여자와 아이, 노인이었다는 점, 공개총살로 80여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학살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정방폭포에서는 인근 주민 뿐 아니라 남원, 안덕, 대정, 표선 지역 주민까지 끌려와 죽었다. 마을이 불태워져 어쩔 수 없이 동굴인 큰넓궤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도 이곳에서 집단총살당했다.
토벌대는 학살 직후 유족들의 시신 수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상당 시간 지난 후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할 때는 엄청나게 쌓인 시신이 썩어 구별할 수 없게 돼 많은 희생자가 행방불명 처리됐다. 일부 유족은 시신 없는 묘인 헛묘를 조성해 넋을 기리기도 했다.
2019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기였던 남동생까지 정방폭포에서 학살당한 사연을 밝혔던 김연옥 할머니(안덕면 동광리)도 이날 위령공간 제막식에 참석해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일곱살이었던 김 할머니는 마을이 불타자 어쩔 수 없이 이굴 저굴 도망 다니던 중 토벌대에 붙잡혔고, 기절한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총살됐다. 김 할머니는 가족들이 바다에서 물고기에게 뜯겨 먹이가 됐을까봐 평생 생선을 먹지 않았고, 시신 없는 가족들의 헛묘를 만들어 제를 지내고 벌초하고 있다.
이처럼 수백명이 학살당했지만 변변한 위령비 하나 없던 정방폭포 일대에 75년만에 위령공간이 조성됐다. 이날 제막식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비롯해 위성곤 국회의원, 김창범 4·3유족회장, 유족 등이 참석했다. 오 지사는 이날 “제주4·3의 비극은 섬 곳곳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은 아직 부족해 마음이 참 아팠다”면서 “오늘 제막식을 통해 정방폭포에 서린 슬픔과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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