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 왔는데 ‘온라인 공연’은 계속될까

허진무 기자 2023. 5. 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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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가 올해 백산연극상 수상을 기념해 오는 6월2~5일 네이버 공연 채널을 통해 온라인 상영하는 연극 <당선자 없음>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공연예술 실황을 영상에 담아 상영하는 ‘온라인 공연’은 코로나19 엔데믹 분위기에도 계속될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공연장에 갈 수 없는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시작된 온라인 공연은 유료화를 시도하며 미래 시장의 싹을 틔우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문화 소외 계층·지역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낮은 수익성과 저작권 문제는 걸림돌이다.

국·공립 단체 주도에 ‘승자독식’ 우려

현재 온라인 공연은 국·공립 예술단체가 주도한다. 두산아트센터가 연극 <당선자 없음>의 백상연극상 수상 기념으로 오는 6월2~5일 네이버를 통해 녹화 영상을 무료 상영하는 등 민간 예술단체의 온라인 공연도 있지만 통상 일회성에 그친다. 민간 예술단체는 전문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KBS교향악단은 지난 2월 클래식 공연을 스마트폰으로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K-Hall’ 모바일 버전을 내놨다. 지난해 9월 인터넷 웹사이트 버전을 먼저 출시했다.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 연주자 인터뷰 등의 약 500개 영상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모든 연주 영상은 작곡가, 지휘자, 협연자, 시대, 장르별로 구분해 검색이 가능하다.

국립극단은 2021년 11월 시작한 ‘온라인 극장’에 대표작인 <만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스카팽> 등을 올렸다. 일부 작품은 장애인 관객을 위한 수어 통역이나 화면해설을 제공하는 ‘배리어 프리’ 버전도 있다. 김광보 단장이 연출해 이달 막을 내린 안톤 체호프 희곡 <벚꽃 동산>도 조만간 온라인 공개할 계획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국립극단 ‘온라인 극장’, KBS교향악단 ‘디지털 K-Hall’, 예술의전당 ‘싹 온 스크린’, 국립오페라단 ‘크노마이오페라’.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국립오페라단은 2021년 2월 시작한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크노마이오페라’를 강화한다. 일단 올해 무대에 올리는 <맥베스>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나부코>를 모두 실황 중계한다. 지역 10곳 문예회관에 동시 송출하는 계획도 세웠다. 지난해 작품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등은 주문형 비디오(VOD)로 볼 수 있다. 최상호 단장은 지난달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에서만 모든 공연이 이뤄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더 좋은 영상으로 지방에 있는 분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은 2013년부터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을 시작해 현재 유튜브 채널로 공연 영상을 유통한다. 지난해 5월 공연영상 실황중계 전문 스튜디오 ‘실감’을 개관했다. 가로 17m, 세로 13m, 높이 5m 규모의 종합 촬영장으로 풀프레임 4K 카메라를 비롯한 첨단 영상 장비를 갖췄다. 장형준 사장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제작한 공연 영상을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클래식 미디어 채널과 협업해 K-클래식 전파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은 2020년 8월 정책리포트 <포스트코로나 시대 비대면 공연예술의 전망과 과제>에서 “볼만한 온라인 콘텐츠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많은 재원이 필요해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좋은 영상장비와 편집 기술, 연출력 등을 동원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제작사와 경쟁해야 하는 소극장이나 예술가들은 승자독식 구조를 우려한다”고 적었다.

수익성은 ‘공익 사업’ 수준
서울 온라인 공연이 지역 잠식 우려도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 현장의 감동을 얼마나 재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초고화질 카메라와 고품질 음향 기기에다 전문적인 촬영·편집 인력이 필요하다. 공연예술은 현장성이 본질인 만큼 온라인 공연은 공연이 아니라 영화에 가깝다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공연장에서 관람하지 않으면 공연예술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공연예술이 변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 A씨는 “온라인 공연은 현장에서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지 않아 일방향이라는 한계가 확실하다”면서도 “연극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장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저도 무관중 연극을 촬영하면서 허공에 대고 연기할 때는 ‘물 밖에서 수영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도 관객 입장에선 티켓 가격이 비쌀 수도 있고, 극장이 멀 수도 있으니까 집안에서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좋다고 봐요.”

그는 지역 예술가 입장에서 서울 작품의 온라인 공연이 지역 작품의 관객을 잠식하는 것을 걱정했다. “서울 대학로 무대와 로컬 무대는 정말 결이 달라요. 대학로 공연은 전국에서 찾아가지만, 지방에서의 예술활동은 그 지방 시민들이 향유하는 작품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서울 작품을 지방에서 온라인 상영한다면 지방 예술가는 지방 관객이 자신을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게 돼요.”

유료 온라인 공연이 활성화되면 무대에 설 기회가 적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한다. “관객이 돈을 내면 배우에게도 정당한 배분이 있어야 좋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시기 우리 지역에서도 온라인 공연을 했지만 무료니까 오히려 관객이 많이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무료니까 언제든 볼 수 있고, 안 봐도 되는 공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술의전당이 지난해 5월 개관한 공연영상 실황중계 전문 스튜디오 ‘실감’. 예술의전당 제공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8년 공연 실황 중계 영상을 제공하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월 14.9유로(약 2만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매년 40편 이상의 공연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아카이브에는 각종 영상 약 600편을 갖췄다. 베를린 필은 영상을 전문적으로 제작·관리하는 자회사 ‘베를린 필 미디어(GMBH)’를 설립하고 25명 규모의 전문 인력을 투입했다. 유료 회원은 2019년 기준 약 4만명에 달한다.

한국 온라인 공연의 수익은 ‘공익 사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투자하는 비용 대비 수익이 낮다. 정부 지원금을 일부 받아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기 어렵다. 공연 영상은 편당 제작비가 평균 1억원 수준이고, 대규모 공연은 3억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 계산하면 관람료를 편당 1만원씩 받아도 ‘1만 온라인 관객’을 돌파해야 손해를 면한다.

한 예술단체 관계자 B씨는 “온라인 공연은 더 많은 관객에게 예술을 보여드리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끝난 분위기지만 여전히 영상 관객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온라인 공연으로 이익을 내는 단계는 아니에요. 사실 정부 지원금만으로 영상 제작비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요.”

아직은 낯선 ‘온라인 공연’ 계약

국립극단은 2020년 연극 <페스트>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1945> <실수연발> 영상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상영하기 전에 창작진과 배우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다. 영상 자체는 국립극단이 기록용으로 촬영했지만, 계약서에 ‘공연 영상화’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계약서에 ‘공연 영상화’를 명시하고 별도 합의서도 작성한다. 공연 종료일 이후 3년을 기한으로 영상을 ‘온라인 극장’에 올린다. 대면공연 사례비의 10%를 영상 저작권 사례비로 지급한다.

공연예술인에게 ‘온라인 공연’은 아직 낯설다. 계약서상 공연 영상화 조항을 뒤늦게 알고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저작권법에는 영상저작물 특례조항(제99조)이 있다. 저작권자가 저작물의 영상화를 허락한 경우 특약이 없다면 영상의 각색, 공개상영, 방송, 전송, 복제 등을 허락하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이철남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0년 11월 논문 <온라인 공연·영상화의 법적 쟁점에 관한 연구>에서 “창작자들이나 실연자들의 경우 통상 공연 자체가 계약의 주된 대상이 되며, 영상화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며 “특약 없이 제99조가 적용된다면 해당 영상물의 공개상영, 방송, 전송 등이 가능하게 되며 창작자 등은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적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디지털 콘서트홀’.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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