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난사 우리도 이해 못 해… 규제 강화해도 범죄 못 막아” [세계는 지금]

박영준 2023. 5. 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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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미총기협회’ 본부 찾아보니
美 2023년 232건 총기 난사로 302명 사망
NRA “총기 탓이 아닌 정신이상자 때문”
‘총격범 25%만 정신질환자’ 통계와 배치
총기 옹호론자 “총 존중 문화 사라진 탓
총 나쁘다는 바이든 같은 사람만 많아”
자동소총 규제에도 “다르지 않다” 반대
현직 경찰 “범죄자 총 쉽게 구하는 상황
국민에게서 총 뺏는 건 간단한 문제 아냐”
총 소지율 높은 州 사고 빈발 설명 못해

18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위치한 전미총기협회(NRA) 본부를 찾았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총기 로비 단체이자 이익 단체로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의회의 총기 규제 강화 시도를 번번이 가로막는 NRA를 찾아 총기 난사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묻고 싶어서였다.

워싱턴에서 약 35㎞ 떨어진 NRA 본부에는 이 단체가 미국에 만들어 놓은 3곳의 총기박물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국립총기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안내하는 팸플릿은 첫머리에 ‘자유의 문으로 가는 관문’(Your gateway to freedom’s doorway)이라고 쓰였다. “총기가 곧 자유”라는 의미 같았다.

1388㎡ 규모의 박물관에는 3000정의 총기가 전시돼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과거 서부영화에서 보던 총기들부터 제1, 2차 세계대전,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사용된 총기, 역대 미국 대통령이 사용한 총기와 영화 촬영에서 쓰인 총기 등이 끝없이 보였다.

◆“총기 난사 우리도 이해 못 해”

기자를 안내한 큐레이터 어니 라일리는 총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포츠를 위해, 사냥을 위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라일리는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는 거의 모든 남자가 사슴이나 곰을 사냥한다”면서 “사냥 시즌이 시작되면 학교도 문을 닫는다”고 강조했다.

라일리는 과거 총포사와 사격장을 운영했고, 총기를 수집한다고 했다. 총기를 몇 정이나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략 200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제 무기조사 기관인 스몰암스서베이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미국에선 총기 3억9000만정이 유통됐고, 인구 100명당 총기 소지 비율은 120.5%로 압도적 세계 1위다. 내전이 진행 중인 2위 예멘(52.8%)보다 두 배 높은 비율이다.
영국 BBC는 2019년 1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미국에서 750만명이 처음으로 총기 소유자가 됐다고 보도했고,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총기 판매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된다. 또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22일까지 미국 전역에서 232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302명이 숨지고 910명이 다쳤다.
라일리는 미국에서 올해 들어서만 200건이 넘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는 말에 “우리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총기 탓이 아니다. ‘정신이상자’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는 꼭 총이 필요하지 않다”면서 “철물점에 가서 폭탄을 만들어서 쉽게 날려버릴 수 있고, 차를 몰고 인도를 덮칠 수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총기 난사 사건이 정신 질환 때문이 아니라는 연구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총격범을 분석한 결과 정신질환이 있는 총격범은 4명에 1명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위치한 전미총기협회(NRA) 국립총기박물관에서 18일(현지시간) 관람객이 전시된 총기를 둘러보고 있다. 페어팩스=박영준 특파원
◆“바이든은 총이 나쁘다고만 말한다”

NRA 티셔츠를 입고 산탄총 코너에서 총기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관찰하는 빌과 대화했다. 위스콘신주에서 살며 워싱턴에 사는 아들 집에 들렀다는 그는 이번이 세 번째 박물관 방문이라고 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물려받은 총기까지 20정의 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그는 20대부터 35년째 NRA 회원이고, 산탄총 강사 자격증이 있다고도 했다. NRA 회원이 되려면 1년에 단돈 45달러(약 6만원)만 내면 된다고도 알려주었다.

빌은 총기 난사 사건이 빈발하는 이유에 대해 “1950년대 1960년대에는 총기가 더 많았지만 총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사고가 적었다”면서 “총을 존중하는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총기 수가 적을수록 더 안전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빌은 “무조건 총은 나쁘다고 말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 총이 왜 나쁜지 총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격(돌격)용 자동소총인 AR-15 총기 앞에 빌과 함께 섰다. 빌은 AR-15이라도 금지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AR-15이나 다른 총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겉모습만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NRA는 AR-15을 ‘미국의 소총’이라고 부른다. 탄창에 총알 30발이 장전되는 AR-15은 위력이 좋고 구매가 쉬워 총기 옹호론자들이 선호하는 총기다. 400달러(53만원)면 구매가 가능하다.
총기 난사 사건에 자주 등장하는 무기도 AR-15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AR-15과 같은 공격용 소총 판매를 금지했다가 2004년 법안이 만료돼 판매가 재개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공격용 소총 판매가 금지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총기 난사 사건과 희생자 수는 1984년부터 1994년, 2004년부터 2014년까지와 비교해 총기 난사 사건은 소폭 감소하고 희생자 수는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 강화해도 범죄 막지 못할 것”

미국 독립전쟁 관련 총기를 관람하던 중년 남성은 총기와 관련한 질문이 이어지자 지갑을 꺼내 경찰 배지를 보여줬다. 텍사스주 국경에서 기마 순찰대로 근무하고 있다는 그는 총기 규제 문제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는 “멕시코뿐 아니라 러시아,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넘어오는 사람들로 국경이 엉망진창”이라며 “그들이 어떤 질병을 가졌는지, 범죄자인지 아닌지, 법을 준수하는 시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범죄자들이 총기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국민에게서 총기를 빼앗는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총기 규제가 엄격해져도 범죄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총기를 구할 것이고 범죄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총기 사고를 줄일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나는 세 자녀가 있고 아이들은 8살, 9살 때부터 총을 다뤘다. 총기 안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 “총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하는 국민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미국 수정 헌법 2호를 이야기하며 “모두가 총을 가지고 있다면 총기 난사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총기로 무장한 국민이 총기로 공격하는 사람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미국에서 총기 사고 사망자는 4만8645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수별로는 텍사스주가 4613명으로 가장 많았다. 텍사스는 미국에서도 총기가 가장 많은 주 중 하나다. 서부 개척시대 때 확장하는 백인 세력의 주요 거점 지역이었던 터라 자유로운 총기 무장 문화를 지닌 곳이라 그렇다는 말도 있다. 현재도 텍사스는 가장 총기 문제에 관대한 주로 꼽힌다. 총이 많은 곳에서 총기 사고가 줄기는커녕 반대 결과를 낸 것이다. 최근 한인 일가족 3명을 포함해 8명이 숨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곳도 텍사스였다.

페어팩스=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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