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외치며 집회 자유 때리는 윤석열, ‘박정희 집회억제법’ 회귀?

전광준 2023. 5. 29. 10: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노조탄압]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가 윤석열 정부 들어 위협받고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악’을 추진하는 당정 때문이다. 집시법 자체가 ‘박정희 군부’ 때 집회 억제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라 정당성을 의심받는 데다 최근 ‘집회 자격제’ 도입을 시도하면서 ‘반헌법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윤 대통령 한 마디에…달라진 집회 대응

“그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

지난 23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이 달라졌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1박2일 서울 도심 상경집회를 계기로 당정은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제한·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건설노조 집회에 “폭력 행사나 기물 파손 등 법 위반 사항은 없었다”던 경찰도 태도를 바꿔 건설노조 1박2일 집회는 불법집회라며 집행부 수사에 나섰다.

집회 대응도 달라졌다. ‘불법 집회의 소지가 있다’는 자의적 판단으로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문화제를 원천 봉쇄했고, 이를 막으려던 참가자들을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폭력성 없는 집회를 강제 해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에도 아랑곳 없이, 경찰은 비정규직 이날 밤 9시께부터 노동자들을 강제 해산했다.

나아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글을 올리고 국민을 ‘갑-을’로 나눠 갈라치기를 시작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이 31일 대규모 도심 집회를 예고한데 대해 “거대 귀족 노조는 더 이상 우리사회의 을이 아니라 ‘슈퍼 갑’이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오·남용하면서 선량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도 되는 특권은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며 “진짜 을은 슈퍼갑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받으면서도 말도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는 소상공인들과 서민들이다. (집회·시위) 개혁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개혁은 중단될 수 없다”고 밝혔다.

■ 국가재건최고회의서 제정된 집시법…다시 퇴행하나?

신고제인 집회·시위를 ‘허가제’처럼 운영하겠다는 정부의 행태에 “권위주의 정부로의 퇴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 집시법은 태생 자체가 집회 자유 보장이 아닌 억제·통제에 집중해 만들어진 법이고, 이후 국회 개정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회복해 왔는데, 자의적 해석을 통해 다시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집시법 제정 과정을 보면, 박정희 군부가 세운 최고통치기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2년 12월 최초의 집시법을 제정했다. 공식적인 법 제정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제한’이다.

그러나 학계는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무질서한 상황 속에서 실효적인 집회 억제’ 목적으로 제정됐다고 분석한다. 당시 집시법에는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거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하는 집회의 절대금지’ 조항도 있었다. 국회의사당이나 법원, 대통령 관저에 더해 역 주변 2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기도 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성격을 들어 집시법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비상입법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회를 해산한 뒤 자체적인 입법권을 행사해 집시법 등을 제정했다.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시법은) 제정 뒤 국회에서 몇 차례 개정됐지만, 애당초 국회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법률이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해 헌법 제40조(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에 위반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며 “국회에서 현행 집시법을 폐지하고 새롭게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헌재 “집회 금지는 최종적 수단”

집시법의 정당성을 떠나 당정의 집시법 개정 주장 내용이 반헌법적이라는 지적은 계속 나온다. 특히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 불허’ 내용은 집회 허가를 금지한 헌법에 정면으로 반한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에 불법집회에 대한 책임은 단체가 아니라 개인이 지는 것”이라며 “불법집회 전력이 있다고 집회를 금지하는 건 일종의 허가제이자 ‘집회 자격제’ 도입이라 위헌 소지가 굉장히 크다”고 지적했다.

야간집회 금지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2014년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바 있다. 2003년에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근본요소”라 “집회의 금지는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뒤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 수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