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만 문제 아니다...구멍 뚫린 고위직 ‘가상자산’ 감시 [법조인싸]

안정훈 기자(esoterica@mk.co.kr) 2023. 5. 2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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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잣돈·자금은닉·로비 등 의혹에
법리 적용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
“정부의 애매한 코인 정책 탓”
처벌 조항 없는 ‘김남국방지법’
예방책 소홀한 국회도 비판소지
김남국 의원. [사진=연합뉴스]
‘코인 투기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이 최근 정치권과 법조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내 ‘코인 광풍’이 시작된 건 지난 2017년.

어언 6년이 지났지만 정치권도 법조계도 이제서야 부랴부랴 관련 제도와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나서는 게 딱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인데요. 코인 투기, 왜 지금껏 막지 못했던 걸까요?

김남국 의원의 3가지 문제
사정당국에서 주목하는 김 의원의 혐의는 대략 3가지입니다.

먼저 ‘종잣돈을 어떻게 마련했느냐’입니다.

최소 수십억에서 최대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굴린 것으로 파악되는 김 의원이 처음에 얼마의 돈을 어떻게 마련해 투자했냐는 것이죠.

김 의원은 “당시 보유 중이던 LG디스플레이 주식 전량을 매도한 대금 9억8000여 만원을 초기 투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입장이지만 재산 공개 내역을 보면 예금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자금 출처가 아직 명확히 소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이 종잣돈을 비트토렌트 코인에 투자해 50억원 가량의 위믹스 코인을 벌었다고 해명합니다.

그러나 김 의원이 거래에 사용한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가 김 의원의 비트토렌트 거래 내역을 살펴보니 실제 관련 수익금은 10억원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출처가 소명되지 않는 코인의 경우 김 의원이 타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이를 제공받아 투자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됩니다.

다음으로 ‘자금 추적, 과세를 피하기 위해 코인을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소명되지 않고 있는 자금을 해외 지갑으로 빼돌리는 방식 등으로 은닉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초기 투자금 자체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불법 자금이었다면 전자지갑에 예치하거나 코인으로 거래한 행위 자체가 범죄수익 은닉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코인 거래에 있어 로비를 받았느냐’도 관건입니다.

코인업체가 코인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에어드롭’, 코인 상장 전 특정인에게 낮은 가격으로 코인을 선매도 하는 ‘프라이빗 세일’ 등을 김 의원이 이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는 현역 의원 신분인 김 의원에게 특혜를 얻을 것을 기대하고 관련 업체 등에서 미리 정보를 준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옵니다.

이런 경우 자본시장법 위반, 뇌물죄 등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추적도 어렵고, 법 적용도 어렵고… 코인, 너 정체가 뭐니?
여러 혐의가 김 의원을 향해 제기되고 있지만, 막상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입을 모읍니다.

가상화폐는 정부에서 인정하는 ‘공식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지위와 관련 법규에 논란이 있는 탓입니다.

기존 법 규정을 끌어와 의율(擬律)하는 것이 현재 코인 관련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이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김 의원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지난 23일 “위믹스 코인의 증권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기 위해선 우선 증권성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에 ‘코인이 증권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코인에 대한 자본시장법 적용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정부가 지난 2017년 처음으로 비트코인 광풍이 일어났을 때 ”가상화폐는 진짜 화폐로 보기 어렵고 금융상품도 아니다”는 입장을 내며 선을 그은 바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거래소에서도 자본시장법 저촉 가능성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코인 상장시 해당 회사에게 “로펌에 가서 ‘자본시장법상 증권이 아니다’라는 법률 검토 의견서를 받아서 제출하라”고 요구한다고 합니다.

국내 로펌들도 혼란을 겪는 여러 투자자들을 상대로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항상 속 시원한 답변을 해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대형 로펌 대표 변호사는 “가상화폐가 정식 화폐는 아니다 보니 주로 어떤 법이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석 문제가 자문의 주를 이룬다”며 “로펌 입장에선 새로운 분야가 생기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명확하지 않은 제도와 관리체계로 인해 많은 해석상의 혼란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에서도 가상자산 관련 자금 추적 등 수사에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블록체인,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P2E(Play to Earn) 등 가상화폐 시장 고유의 기술과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울뿐더러 이를 추적하는 시스템도 미비한 탓입니다.

대검찰청은 최근 ‘김치코인 추적시스템’ 자체 개발에 나서겠다며 사업성 검토를 위한 용역을 올해 하반기 발주할 예정이지만 발주, 개발, 도입을 거쳐 최종적으로 검찰 내부에 정착할 때까지 걸리는 소요시간이 얼마가 될 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김 의원에게 해외지갑 자금 유출 혐의가 제기되는 데서 나타나듯 특히 코인과 관련해선 해외 거래 내역 추적도 중요하지만 이와 관련한 국제 공조 체제 또한 부실합니다.

수도권 지검에 근무하는 한 검찰 관계자는 “솔직히 코인은 구조를 알기 힘들고, 신생 분야라 수사 노하우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최근 관련 수사를 많이 진행한 서울남부지검 말고는 잘 아는 검사가 있을까 싶다”고 밝혔습니다.

정식화폐는 아니지만 세금은 걷겠다…정부의 속마음은?
급기야 현직 국회의원의 코인 투기 논란까지 발생했음에도 아직도 ‘뭘 범죄로 볼 수 있느냐’는 논의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근본적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자국 은행에 비트코인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어느 정도 폭넓게 가상화폐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고, 반면 인도나 중국은 아예 거래 자체도 금지하는 등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지요.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위를 인정하는 방향도 아니지만 과세는 2025년부터 하겠다고 하는 등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이러한 점을 파고들어 이득을 취하는 경제 행위자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정부의 태도 때문에 법조계에선 ‘국가배상책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정부는 그간 “가상화폐 거래는 금융거래가 아니다”라 해놓고 코인 발행규제는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위믹스나 테라·루나 등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코인들이 자본시장법상 증권으로 간주된다면, 정부가 인가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불법 증권이 유통된 것을 정부가 방치한 셈이므로 정부의 감독 책임이 발생한다는 논리입니다.

‘제2의 김남국 막기’ 소극적인 국회
지난 25일 ‘김남국법’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김남국 의원석이 비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김 의원의 코인 투기 논란을 두고 여야 간 공방이 거세지만, 막상 이를 방지한답시고 만든 법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나 봅니다.

코인 등 가상자산까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규정한 이른바 ‘김남국 방지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지만 벌칙 조항이 없어 거래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비판이 벌써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의원들이 위믹스 발행사 위메이드의 입법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도 속 시원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 사무처가 공개한 국회 출입 기록에 따르면 위메이드는 21대 국회 들어 여야 의원실 8곳을 총 14차례 방문했는데 대부분 가상 자산을 담당하는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었고, 시기는 위믹스 상장 폐지가 결정된 지난해 11월 전후에 집중됐다고 합니다.

해당 의원들은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지만, 방문 목적과 머문 시간 등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중입니다.

과연 정부와 정치권은 ‘제2의 김남국’ 막기에 진심일까요?

현재로선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감시가 ‘그렇다’는 답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습니다.

※‘법조 인싸’는 법조계의 ‘인싸’(를 꿈꾸는) 기자들이 법조계 인사들의 ‘인사이트’와 기자들의 관점을 전합니다. 주중 기사에서 팩트 전달에 집중했다면, 주말 코너에서는 법조계를 출입하며 쌓은 나름의 시각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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