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정치질, 정치세력화[오늘을 생각한다]

2023. 5. 2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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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먼 사람들이 ‘진보’나 ‘정치인’을 자처하자, 그 의미도 붕괴했다. 코인 투기를 통한 사익추구에 몰두하는 정치인, 위성정당을 통해 여의도에 입성한 후 반성 없이 기생 전략을 지속하는 정치인, 걸핏하면 소리나 지를 뿐 부자들의 이익에만 관심 있는 정치인 등이 우리 시대 ‘정치인’의 표상이다. 최근 급증한 무당층 여론이 여느 때보다 이해되는 요즘이다.

‘진보’의 표상 역시 사모펀드에 투기하는 56억원 자산가나 코인 투자에 심취한 정치 인플루언서들이 거머쥔 듯하다. 이들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실력을 검증받는 것이 아니라 관심경제에서 ‘좋아요’를 받고 주목받는 일에 단련돼 있다. 거칠게 말할수록 “용기 있다”고 칭송받는 일에만 심취할 뿐, 우리 사회가 넘어서야 할 통념과 난제, 평범한 사람들의 힘겨운 현실을 바꾸는 일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과학적 근거 없이 음모론에 집착하거나 ‘내로남불’ 논리를 설파할 뿐이다.

정치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다. 막스 베버는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 했고, 이스턴은 “권위 있는 가치 배분 행위”라고 폭넓게 가리켰다. 최근 들어 많이 인용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칼 슈미트의 말이다. 서바이벌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치질’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출연자들은 그런 의미를 가장 노골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하긴 정치인 명함을 단 이들을 보고, ‘정치질’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다. 문제는 ‘정치질’을 의심 없이 체현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사회’를 향한 공격이 거리낌 없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어차피 세상이 승자독식과 권모술수로 가득한 ‘정치질’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면, 흔쾌히 자신도 그걸 피하지 않겠다는 현실순응의 논리가 내재해 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오진 않았다. 좁고 오래된 길도 있다. ‘내로남불’을 택한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은 시민사회운동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영혼마저 갈아넣으며 싸우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 없고 배경 없는 노동자들에게 ‘권력’이 필요하다고 여겨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삶을 바쳤다. 최근 그 활동가들이 잃어버린 ‘정치세력화’의 길을 고민하고 논쟁 중이다. 정치가 이렇게 엉망인데, 뭘 어떻게 세력화한다는 걸까? 준비도 안 된 소수정당들을 억지로 합친다고 해결될까? 제3지대에서 엘리트들을 모은다고 가능할까? 그럴 것 같진 않다.

결국 정치세력화는 기성 정치인들의 ‘정치질’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어야 한다. 일단 그것은 부익부 빈익빈 사회를 바꾸기 위한 구체적 행동의 여정에서 시작해야 한다.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 오직 몸뚱이 하나로 일하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깡통전세’로 고통받는 피해자들, 장시간 노동과 실업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권리를 회복하고, 함께 잘살기 위한 크고 작은 행동의 연합이다. 이제 비관과 냉소는 질린다. 거대 양당의 이전투구에 이입하고 싶지도, 내 삶에서 ‘정치질’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내 삶에서부터 ‘정치세력화’를 시작하자.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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