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골’ 넣을 현대차의 기회[할 말 있습니다](32)

2023. 5. 29. 08: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현대차그룹의 합산 이익이 6조원을 넘었다. 현대차는 9.5%, 기아는 12.1%의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토요타보다 영업이익률이 높았다. 단순히 가성비 좋은 차라는 인식을 넘어선 듯하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684만대를 팔아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순위에서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라섰다. 국내 한 증권사는 현대차그룹이 2026년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내놓았다. 현대차그룹이 그러나 지금처럼 내연차 생산에 집착하면, 이런 장밋빛 전망은 신기루로 끝날 수도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2021년 9월 8일 수소차 개발에 한눈을 파느라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인 현대차를 비판하는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서울 한강변 상공에 달팽이 모양의 풍선을 띄웠다. / 그린피스 제공



IEA 사무총장 “전기차발 역사적 변혁 일어날 것”

지금 자동차 시장의 대세는 전기차로 빠르게 기울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판매된 8063만대의 차량 중 802만대가 배터리 전기차였다. 10대 중 1대꼴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지난 2월 발간한 <2022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실적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배터리 전기차 판매 비중은 2020년 2.9%에서 2021년 5.9%로 오르더니, 2022년에는 9.9%로 높아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시장에서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포함) 판매 비중이 1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전기차가 전 세계 자동차산업에 역사적인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세기 넘도록 내연차 강자로 군림해온 자동차업체들로선 내연차를 손절하기에 아직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해가 뜰 무렵 언덕 너머 보이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자신하기 어려운, 즉 전기차 전환 드라이브를 얼마나 세게 밟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날이 밝아올수록 건너편의 상대(전기차 시장)는 변화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전기승용차는 제1의 물결이고, 전기버스, 전기트럭이 뒤를 이을 것”이라며, 전기차 물결이 점점 거세지리라고 예상한다.

그린피스 액티비스트들이 2015년 11월 15일 배기가스 조작 혐의가 드러난 폭스바겐의 아르헨티나 공장 밖에서 폭스바겐 차량의 배기가스를 풍선에 집어넣은 뒤 공장으로 돌려보내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그린피스 제공



기후변화 속 내연차 수명 얼마 남지 않아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내연차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최근에 지구온도 상승폭이 산업화 이후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려면 앞으로 4000억t 이상의 탄소를 배출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이 가운데 자동차 부문에 할당된 탄소 배출 한계치는 529억t이다. 내연차 판매량으로 환산하면 3억1500만대다. 토요타, 폭스바겐, 현대차, 기아, GM 등이 지금 계획대로 자동차를 생산하면, 이 한계치의 2.5배를 넘는다. 각국 정부에서 내연차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내다본 미국은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전기차 생산 거점을 자국으로 유치하는 데 적극 나섰고, 지난 4월에는 2032년까지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을 67% 이상으로 높이겠다며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유럽연합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부터 내연차 신규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린피스 액티비스트들이 2021년 9월 7일 독일 뮌헨 국제모터쇼장 앞 연못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를 비판하며,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그린피스 제공



1분기 현대차그룹 전기차 비중 7.56% 그쳐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내연차 판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1분기 성적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 기간에 현대차그룹이 판매한 자동차는 총 178만9000여대로, 이 가운데 전기차는 13만5000여대에 그쳤다. 전기차 판매 비율이 7.56%에 불과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SNE 리서치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시장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2022년 1분기 전기차 판매량(11만9000대)은 조사대상 10개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2021년 1분기(12만1000대)에 비해 1.8% 감소했다. 테슬라는 41.7%, 비야디(BYD)는 35%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린피스는 최근 내연차 및 전기차 생산시설 현황과 증설 계획 등을 토대로 중국 내 11개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2030년 중국시장 점유율 예측치 등을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은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고, 전기차 생산 계획 등 공개된 자료가 부족해 조사 대상에 들지도 못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합산으로 2016년 179만대를 팔았으나, 지난해 판매량이 33만9000대로 줄어 점유율이 1.3% 수준까지 떨어졌다.

급변하는 중국시장, 내연차 강자들 위기

그린피스의 이번 조사 결과 2030년 중국에서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신에너지차 판매 비중이 40%에 이를 경우 내연기관차 생산과 판매에 중점을 둔 업체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분석됐다. 신에너지차 비중이 70%에 이를 경우 혼다의 점유율은 7.7%에서 3.4%로 반 토막 날 것으로 예측됐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GM, 토요타, 폭스바겐 등 나머지 외국계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점유율이 40% 이상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 인해 GM의 중국 공장 가동률은 26.2%로 추락해 277만대의 생산설비가 가동을 멈추고, 폭스바겐도 공장가동률이 33.5%에 그쳐 287만대의 생산설비가 좌초자산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테슬라처럼 100% 전기차 생산으로 전환한 중국의 토종 자동차업체 BYD의 점유율은 196% 높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차그룹은 혼다, 폭스바겐, GM, 토요타 등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중국시장에서 현대차가 내연차 편중 정책을 지속할 경우 지금도 위태로운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는 지난해 중국에서 507만대가 팔려,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802만대 중 63%를 차지했다. 중국을 빼고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상위권에 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 ‘글로벌 톱3 자동차회사 진입’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다행히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현대차그룹은 중국 토종업체들과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승부를 겨룰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더 이상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내연차가 아닌 전기차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린피스 액티비스트들이 2019년 9월 15일 서울 현대차 본사 앞에 있는 현대차 광고판에 현대차의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스티커를 붙였다. / 그린피스 제공



2030년 전 세계 내연차 판매 중단을 

그 첫걸음으로 내연차 판매 중단 및 전기차 100% 전환 목표부터 앞당겨야 한다. 현대차는 유럽에서는 2035년, 한국·미국·중국 등 주요국에서는 2040년을 내연차 판매 중단 목표연도로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인도와 동남아 등 신흥시장에서는 아무런 목표도 설정하지 않았다. 전기차 전환에 이미 가속도가 붙은 중국과 미국에서 2040년에 전기차로 전면 전환하겠다는 목표만 가지고선 후발주자밖에 될 수 없다. 지난해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에 비해 세 배 이상 뛰었고, 태국에서도 두 배 이상 늘었다. 현대차 판매량의 30%를 차지하고 전기차 전환이 속도를 내고 있는 신흥국 시장에 대한 차별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린피스는 현대차그룹이 2030년 이전에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는 결단을 내리고, 전기차 판매를 늘리는 데 공력을 집중하기를 바란다. 한발 더 나아가 배터리와 철강 등 공급망을 탈탄소화하고,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세기의 골’ 캠페인을 전개해 열띤 호응을 얻었다. 현대차그룹이 캠페인에 머물지 않고 정말 세기의 골을 넣을 수 있을지는 역사적인 변혁의 시기인 지금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은서 그린피스 캠페이너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