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디폴트인 세상[IT칼럼]

입력 2023. 5. 2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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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ijwam Swargiary on Unsplash



1400년대 우편망이 발달하고 인쇄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 인류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정보 폭발과 마주하게 된다. 뉴스레터가 범람했고 신문사는 급증했다. 뉴스와 정보를 담은 수많은 출판물이 쏟아지면서 본격적으로 ‘가짜 정보’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이 죽었다고 보도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무덤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거나 호수에서 용이 승천해 하늘을 휘젓고 다닌다는 얼토당토않은 소식이 인쇄출판물에 실려 대중의 눈과 귀를 어지럽혔다. 오죽하면 “손으로 쓴 편지가 더 믿을 만하다”, “야만의 시대로 퇴보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때마다 당대 기득권층은 규제와 폐쇄로 일관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에선 가짜 정보 유통의 온상으로 지목된 커피하우스를 폐쇄 조치했다. 인쇄기 허가제도 도입했다. 1600년대 일이다. 이 조치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정보 폭발 혹은 과부하는 늘 규제를 불렀고, 이후 자율정화되는 길을 택하게 된다. 기술혁명이 불러낸 정보 과잉의 부작용은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양분을 받아먹으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인류는 또 한 번 급격한 정보 폭발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생성 AI의 등장과 빠른 확산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정보 초과잉 상태다. 다수의 전문가는 2026년이면 온라인 콘텐츠의 90% 이상이 AI가 생성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벌써 합성된 이미지와 영상들이 인터넷 곳곳을 떠돌기 시작했다. 웹사이트 제작부터 허위조작정보 생산까지 오로지 AI에만 의존한 ‘콘텐츠팜’ 50곳이 적발되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형 빅테크들만 개발해왔던 생성 AI 기술의 일부는 이제 오픈소스로 풀려 전 세계 모두의 손에 쥐어질 채비를 마쳤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는 생성 AI의 오픈소스화에 불을 지피고 있다. 가짜와 합성 콘텐츠를 제작할 기술의 접근성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전망이다. 비용 또한 빠르게 하락할 것이다.

곧 90%의 온라인 콘텐츠를 생성 AI로 제작하는 시기가 오면, 가짜와 진짜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진실보다 재미를 선호하는 인류의 심리는 촉매가 돼 ‘가짜 디폴트 시대’를 반길 것이다. 진짜보다 가짜 정보가 더 많이 흘렀던 인쇄 혁명기, 그 당시와 동일한 현상을 인류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기겁하지 않는 태도다. 톰 필립스가 <진실의 흑역사>에서 썼던 것처럼 진실은 늘 위기였다.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인류 역사에서 거짓말의 홍수는 새삼스럽지 않다.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다. 생성 AI가 가져올 정보 초과잉 현상 앞에서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그저 해왔던 대로 진실을 찾는 데 더 많은 애를 쓰고 박수를 보내는 일, 그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거짓과 가짜, 허구와 허위는 인류의 역사에서 진짜와 진실에 우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것부터 우리가 인정하면 된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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