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값싼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 저출생 해법? 돌봄의 결과는 '사람'

제희원 기자 2023. 5. 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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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배경엔 추락하는 출산율이 있습니다. 외국인 일손을 빌려 일하는 부부의 가사와 돌봄 부담을 줄이고, 아이 더 낳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나라들의 장밋빛 사례가 부쩍 언급됩니다. 당장 고용노동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둘러싼 쟁점을 짚어봤습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한 나라들, 출산율 증가 도움 안 돼



첫 번째 물음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으로 출산율을 정말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홍콩·싱가포르·일본·대만 사례를 볼까요. 관련 연구를 진행한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 경제활동참여율 증가'는 통계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시아 4개국의 출산율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10년대 이후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제도 도입 이후 유의미한 증가세가 있다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으로 출산율 및 여성의 경제 활동 반등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 못 잡았다는 게 먼저 시행해 본 나라들이 주는 교훈입니다.
 

값싼 가사도우미는 환상…각종 인권 문제도


생각해 볼 지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임금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싼 값에 장시간 가사도우미를 쓰는 건 '환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싱가포르의 경우 가사노동자의 임금은 홍콩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보증금을 비롯해 고용안정금과 건강보험, 상해보험과 초과근무수당, 해당 노동자의 항공료 같은 각종 부대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합니다. 2017년부터 국가전략특별구역에서 제도를 시행 중인 일본은 가사노동자를 특정 기업이 고용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가사노동자의 임금은 내국인과 같거나 오히려 높습니다. 이용자에 제한을 둔 나라도 있습니다. 대만은 가족 구성원의 나이에 따라 신청 자격에 차이를 두고 있고, 홍콩은 가구 소득이 월 기준 HKD 15,000을 넘어야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한국에서도 실제 대다수 맞벌이 가정보다 고소득자들을 위한 서비스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용 조건을 두고 또 다른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낮은 임금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와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곱씹어봐야 합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다른 산업과 달리 사적인 공간으로 분류되는 가정이고, 숙식까지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경우 이들을 다각도로 보호할만한 방법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갈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가사노동자 학대 문제가 연이어 터지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비교적 최근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노동인권에 대한 국제 기준을 반영해 입주형을 금지하고, 내국인과의 임금 차별을 금지했다. 내국인 가사노동자의 경우에도 성희롱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소통 쉽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모두 민간이 주도…검증 기관 부족한 현실도 고려해야


앞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한 나라들의 경우 각국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고려해 제도를 각 나라별로 달리 설계했습니다. 한국은 고용노동부 같은 공공 부문이 외국인 노동자 도입을 주도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모두 민간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민간에서 알선과 인력 검증 및 관리를 전담할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른 인증 기관이 필요합니다. 이은영 YWCA 부회장은 "비교적 수익이 높은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인증 기관이 외국 인력 고용 후 노동환경을 지속적으로 사후 관리감독까지 할 수 있는 인증기관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의 이주 노동 안에서도 제조업과 농업 간 격차를 비춰볼 때, 가사 노동자들의 이탈 문제도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소득 수준이 더 높은 제조업으로 가기 위한 경로로 가사 돌봄 노동이 이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이탈을 비롯한 총체적인 관리 대책 마련도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 첫 발 뗀 '가사근로자법'…우리에게 필요한 돌봄은?


사실 한국에서 가사 노동 영역은 지난 70년간 '비공식 영역'이었습니다. 제대로 그 값어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일자리 질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사 노동자에게4대 보험을 보장하고, '가정부'가 아닌 '노동자'로 제대로 대우해 주는 사회적 인식이 이제야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국인 '건강한 시니어'들이 더 많은 돌봄 일자리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데 정책을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돌봄 노동을 단순히 비용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돌봄은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 되는 서비스이자, 대상과 결과가 모두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라며, 그 대상자가 영유아나 노인처럼 취약한 계층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산업과 달리 돌봄은 '사람'에게 이뤄지는 서비스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저렴한 값에 많이 인력을 들여올 수 있다고 만능이 아니라는 겁니다. 특히 아동의 발달에 있어 외국인 노동자의 돌봄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순히 저임금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건 근시안적입니다. 결국 한국의 장시간 노동과 성차별 현실을 외면한 채 '아이를 대신 키워주는' 손쉬운 대책 만으로 출산율 반등은 아득히 멉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제희원 기자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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