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 아까시나무, 7~8월 쉬나무…밀원숲엔 매달 꽃이 핀다

주영재 기자 2023. 5. 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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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등 꿀벌 먹이 제공할 나무로 밀원숲 조성
국내 숲 66% 사유림… 밀원수직불제 도입 등 논의

[주간경향]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청량하다.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이따금 어울릴 뿐, 숲은 고즈넉하다. 이곳은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에 있는 한 시유림이다. 제천시는 이곳에서 2020년부터 밀원숲(꿀벌 먹이 숲)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5월 24일 산림청과 제천시, 충북의 관계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차를 타고 거친 임도를 5분 정도 오르자 조림사업 첫해 심은 아까시나무들이 있는 곳에 닿았다. 차에서 내리자 숲 가득한 시원한 기운이 확 느껴졌다.

“대프리카, 제베리아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만큼 제천은 다른 곳보다 시원하죠. 그래서 5월 말인데도 아까시나무 꽃을 볼 수 있어요.” 이동교 산림청 산림자원과 주무관이 설명했다. 활짝 핀 하얀 꽃은 풍성하고 탐스러웠지만, 이렇게 꽃을 달고 있는 나무가 많진 않았다. 심은 지 4년 된, 아직 꽃을 피우기엔 어린나무라서다. 옆에 있던 함종선 제천시 삼림공원과 시유림경영팀장은 “5년차, 6년차가 되면 숲의 아까시나무가 전체적으로 꽃을 피울 것 같다”고 말했다.

계곡 서쪽 사면을 타고 아까시나무가 빼곡히 서 있다. 중간의 큰 바위 아래 움푹 파인 곳에는 벌통이 하나 놓여 있다. 토종벌 양봉 농가가 설치한 것이다. 서양꿀벌 양봉에 쓰는 네모 난 상자가 아니다. 통나무 속을 비워내 그 안에 그물망을 설치하고, 위를 진흙으로 막아 놓으면 벌들이 집을 삼는다고 한다. 통나무 중간에 벌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 3개가 보였다.

5월 24일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 밀원숲에 있는 꽃아까시에 분홍색 꽃이 달려 있다. 주영재 기자
벌들의 일터 될 밀원숲

제천시는 이곳에 2024년까지 10억4000만원을 들여 지역특화조림 사업을 진행한다. 58㏊ 이상의 땅에 헝가리아까시와 꽃아까시 등 아까시나무 14만7200그루, 헛개나무 8만4200그루, 쉬나무 1만그루를 심는 게 목표다. 첫해 아까시나무 5만그루와 쉬나무 1만그루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대부분 식재를 마쳤다. 오는 10월 추가로 벌채한 곳에 아까시나무 1만5000그루를 심으면 완성된다. 함종선 팀장은 “산림녹화 차원을 넘어 양봉을 통한 지역주민 소득원 창출과 산림휴양 기반 조성으로 산림의 가치 향상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밀원수로서만이 아니라 목재로서의 가치도 높은 아까시나무를 규모 있게 조림해 지역의 특화수종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숲의 다른 한쪽에도 바위 아래 토종벌통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심은 지 2년 된 아까시나무와 헛개나무가 있는 곳이다. 아까시나무는 5~6월에 꽃이 핀다. 헛개나무는 9~10월에 꽃이 핀다. 쉬나무 개화 시기는 7~8월이라 아까시나무와 헛개나무 사이의 빈틈을 채울 수 있다. 꿀벌의 채밀 기간을 늘릴수록 꿀벌의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개화 시기가 다른 나무들로 밀원숲을 조성한다.

같은 수령인데도 아까시나무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심었을 때 크기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나무도 있지만, 어른 키만큼 자란 나무도 있다. 나무를 식재한 곳의 토질에 따라 성장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나무는 경사가 급한 비탈에도 촘촘하게 들어섰다. 조림사업에 참여한 이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굴러떨어지면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경사가 급해 보였다.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었다. 작업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산 여기저기 크고 작은 바위가 많았다. 돌도 많이 보였다. 나무가 자라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 싶었다. 그럼에도 식재한 아까시나무 주변으로 사람이 심지 않은 어린 아까시나무가 자연적으로 많이 생겼다. 식재한 아까시나무의 뿌리에서 새로 돋아난 것이다. 함 팀장은 “이곳 산은 전부 바위인데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사는 게 아까시나무다. 헛개나무와 쉬나무도 심었는데 아까시나무만큼 그렇게 잘 자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까시나무는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토를 푸르게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땅에 정착하는 ‘활착력’이 강해서다. 이동교 주무관은 “강원도와 경상도의 산불 피해지를 가면 자연적으로 두는 곳에서 제일 먼저 올라오는 게 싸리나무와 아까시나무”라면서 “그만큼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 과거에 치산녹화를 하는 시기에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설명했다.

충북 제천시가 조성한 밀원숲에 토종벌통이 놓여 있다. 주영재 기자

직접 본 꽃아까시나무 꽃은 벚꽃보다 진한 분홍색이었다. 꽃이 여럿 줄지어 피는 보통의 아까시나무와 달리 서너 개 정도가 달려 있는 형태였다. 꽃이 예뻐 관상용으로도 좋아보인다. 이곳에는 헝가리아까시도 2021년부터 2년간 2만그루 가까이 심었다. 헝가리아까시는 꿀양이 토종 아까시나무보다 많다고 한다. 아까시나무는 고급 가구의 무늬목으로 많이 사용된다. 헝가리아까시는 목재로서의 가치가 크다. 이동교 주무관은 “헝가리에선 아까시나무가 우리나라의 소나무, 낙엽송처럼 거의 전 지역에 퍼져 있다”면서 “우리나라 아까시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퍼지는 형태인데 헝가리아까시는 직립성이 강해 위로 올라가는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2년 후 아까시나무 꽃이 만발하고, 그 향기가 진하게 풍길 숲을 떠올려봤다. 기후변화와 살충제, 밀원숲 감소로 생존을 위협받는 꿀벌의 일터이자 안식처가 될 모습을 상상했다. 여태까지 아까시나무가 이렇게 한군데 빼곡히 모여 있는 곳은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데 모아 심을 만큼 산주들한테 인기 있는 나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천덕구니 취급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뿌리가 잘 뻗는 특성 때문인지 농촌에선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 묘지의 관을 휘감는다고 생각해 베어내기도 한다.

밀원수 늘려 꿀벌 지키자

이렇게 부정적인 시선 탓에 우리 산이 경제림(목재생산을 위한 우량목을 공급할 수 있는 숲)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많이 벌채됐다. 1980년대까지 32만㏊에 걸쳐 분포하던 아까시나무가 현재는 3만6000㏊ 정도만 남았다. 도로변이나 공한지 등 산림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곳에 있는 경우도 많아 아까시나무의 수가 걱정할 정도로 줄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감소한 건 사실이다. 2000년대 이후 아까시나무가 밀원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관리 보호에 힘을 쓰는 중이다. 제천시처럼 지역특화조림 사업에서 아까시나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충북의 경우 올해부터 4년간 121㏊의 면적에 아까시나무를 중심으로 한 밀원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공유림을 활용한 밀원단지 조성은 도지사의 공약 사업”이라면서 “산림경관을 창출하고, 밀원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어려움을 겪는 양봉농가 지원을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벌의 화분매개로 열매를 맺는 사과와 포도, 복숭아 등을 많이 재배하는 곳이라 밀원단지를 조성하면 양봉농가와 과수농가가 득을 볼 수 있고, 아까시나무 꽃과 향기는 휴양·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천연꿀의 70%가 아까시나무에 의존한다. 아까시나무가 줄어들면, 벌의 먹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밀원식물 감소는 그러나 비단 아까시나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2022)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밀원 면적은 1970~1980년대 대비 약 70%(47.8만→14.6만㏊)가 줄었다. 여의도 면적(290㏊)의 약 1145배, 제주도 면적(18만4900㏊)의 약 1.8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충북 제천시가 조성한 밀원숲에 아까시나무 꽃이 피어 있다. 주영재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월동 시기를 거치면서 꿀벌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사례가 늘자 정부 차원에서 밀원숲 확대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7월 농가 경영 안정과 산업발전기반 확충을 위해 양봉산업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밀원을 매년 3000㏊씩 심고, 꿀벌의 연중(3~10월) 채밀이 가능한 다층형 복합 밀원숲을 조성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산림청은 매년 국유림에 밀원숲 150㏊를 심고 있다. 사유림과 합하면 연간 3800㏊에 달한다.

이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게 학계의 견해다. 최근 그린피스와 함께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이라는 보고서를 집필한 정철의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는 국내 꿀벌 생태계의 안정적인 조성을 위해서는 최소한 30만㏊ 이상의 밀원수 재배면적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주요 밀원의 벌꿀 생산 잠재력은 평균적으로 1㏊당 300㎏ 정도이고, 연중 벌통 하나에서 생산되는 꿀벌이 15만마리 정도가 된다. 이 꿀벌들이 소모하는 꿀은 약 60㎏ 정도 되기에, 국내에 있는 250만군 이상의 양봉꿀벌과 3~10만군의 재래꿀벌, 야생벌 등을 감안하면 최소 30만㏊의 밀원식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밀원수직불제 등 제도 마련 논의

꿀벌의 집단실종은 꿀벌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으로 불린다. 해외의 일로만 여기다 국내에서도 2021년 겨울 78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지면서 큰 문제가 됐다. 2022년 9~11월 사이 100억마리, 올해 초에도 약 14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양봉 산업의 명맥을 뿌리째 흔드는 꿀벌의 떼죽음은 기생성 해충인 응애류와 또 다른 해충인 말벌로 인한 피해의 증가, 기후의 변동성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꿀벌응애가 방제약에 저항성을 갖게 되자 약재 사용 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꿀벌 피해가 커지기도 했다.

응애와 기후변화를 이겨내려면 좋은 야생의 꿀과 꽃가루를 먹어서 면역력을 갖추게 해줘야 하는데, 개화 시기가 짧아지고 설탕과 사료 등 인공 화분에 의존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건강이 나빠진 것도 주요 원인이다. 정 교수는 꿀벌 월동 폐사의 원인을 ‘불일치’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올해 3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져 사과 등 과일나무의 꽃 피는 시기가 빨라졌는데, 꽃이 피었을 때 벌이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간적 불일치’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사과 재배지는 북상하지만, 땅속에 집을 짓는 야생벌들이 북상하지 못하면 이는 ‘공간적 불일치’로 설명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시간적 불일치는 양봉꿀벌에도 해당하지만, 토양에서 겨울잠을 자고 봄에 깨어나는 야생벌에 더 큰 영향을 준다”면서 “대기 중에 온도가 높아지면 봄꽃이 빨리 피는데, 토양 속 온도 변화는 느리기 때문에 야생벌이 깨어나는 시기는 (개화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을 수 있다”고 말했다.

꿀벌과 야생벌 팩트시트. 그린피스
꿀 속 DNA 분석을 통해 밝혀낸 두 종 꿀벌의 주요 밀원 분포. 공통 밀원과 배타적 밀원. 그린피스

국내 양봉꿀벌의 사육 밀도는 26.7봉군/㎢으로 미국보다 약 80배 높은 세계 1위다. 반면 밀원은 줄어들고 있으니 먹이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다. 벌이 충분한 영양분을 확보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결국 양봉군의 숫자를 적절히 조절함과 동시에 밀원숲을 확대해야 한다. 밀원숲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내 숲의 66%를 차지하는 사유림 산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들이 밀원수를 심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지원책으로 밀원수직불제가 논의되고 있다. 산주가 본인의 산에 밀원수를 심거나 서식지를 보전하는 등의 활동을 할 경우 정부에서 직불금을 지급해 밀원수 확보를 활성화하는 제도다. 관련해 지난 4월 25일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 양봉직불제 제정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벌은 밀원식물에서 화분(꽃가루)과 화밀(꽃꿀)을 얻어 생존에 필요한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얻는다. 반찬을 고루 먹을수록 건강해지듯, 벌도 다양한 꽃에서 화분과 화밀을 얻어야 더 건강하다. 개화 시기가 다양해지는 만큼 채밀 기간도 길어져 월동을 위한 충분한 꿀을 비축할 수 있다. 특히 토종꿀벌인 재래꿀벌은 양봉꿀벌보다 크기가 작고, 혀 길이도 짧다. 그래서 먹이로 삼는 꽃도 차이가 나는데, 꽃의 화관의 길이가 긴 아까시나무 꽃은 토종꿀벌이 밀원으로 삼을 수 없다.

따라서 밀원숲을 조성한다면, 제2의 아까시나무를 선정해 이를 전국에 보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밀원식물을 지역별로 특화해 심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정철의 교수는 “1960~1980년대엔 우리 산이 헐벗고 척박해 아까시나무와 같은 초기 정착 식물이 많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일부 대형 산불이 났던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미 산에 충분한 양분이 축적이 돼 있기 때문에 이제는 생산성이 높고 산불에도 잘 견디고, 과일을 만들어내면서 목재로서의 경제성도 있는 나무를 지역적으로 골라서 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음나무나 피나무 같은 경우는 강원도와 같은 한랭한 지역에 잘 적응할 수 있고, 때죽나무 같은 경우는 조금 더 따뜻한 지역에 적응이 돼 있는 나무들이다. 이렇게 지역별로 특화된 수종을 택하면 꿀맛도 지역별로 달라지고, 지역 특산물로 만들 수 있다. 제주도의 유채꿀, 밀감꿀이 좋은 선례다.

밀원수종에 대한 과학적 분석도 필요하다. 양봉산업법 시행규칙에 25가지 밀원수종이 나열돼 있지만, 이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선정됐다기보다 양봉협회와 한봉협회를 통해 벌을 키우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얻은 결과다. 최형규 산림청 산림자원과 사무관은 “밀원에 유리당이 얼마나 포함돼 있고, 나무 식재 간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1㏊당 꿀 생산량은 어떤 수종이 좋은지 등을 산림과학원에서 분석 중”이라면서 “25가지 밀원수종과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밀원수종에 대한 연구까지 포함해 내년에 연구를 마친 후 내후년 시행규칙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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