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현실을 반영한다…21세기 리얼리즘 미술의 최전선

노형석 2023. 5. 2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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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왜 그렸을까.

임 작가의 이 풍경화는 지난달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의 특별전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출품작 가운데 하나다.

그는 통상적인 정물과 풍경화의 대상적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캔버스와 캔버스롤 같은 그림 도구를 주시하거나 화실을 뜯어보는 작품들을 통해 그리는 주체로서의 자기 내면을 투영한 리얼리즘 회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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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전
임노식 작가의 유화 <작업실>(2019). 노형석 기자

이 그림은 왜 그렸을까. 그린 대상에 대한 흥미 때문일까.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햇빛 쏟아지는 2019년 어느 날, 한국화를 전공한 임노식(34) 작가가 그린 작업실 풍경화는 이런 의문을 피워 올리게 한다. 화폭 정면에는 8개의 격자로 구분된 화실의 큰 유리창이 있다. 여기에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들어 측면의 벽에 투영된다. 창문 아래 벽체와 바닥면 사이에는 다소 어두운 톤으로 고요함을 묘사한 내부의 화실 공간이 나타나는데, 붓과 물감, 안료통 등이 놓인 테이블과 화구통이 있다. <작업실>이란 제목이 붙은 이 유화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거장 얀 페르메이르(1632~1675)가 그린 고즈넉한 실내 정경의 그림들을 언뜻 떠올리게 한다. 그림의 정물과 풍경은 지극히 단순하고 무미건조하고 작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존재의 그늘을 드리운 작가의 시선, 거기서 비롯된 존재의 심연과 무게감을 전해주는 듯하다.

임 작가의 이 풍경화는 지난달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의 특별전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출품작 가운데 하나다. 그는 통상적인 정물과 풍경화의 대상적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캔버스와 캔버스롤 같은 그림 도구를 주시하거나 화실을 뜯어보는 작품들을 통해 그리는 주체로서의 자기 내면을 투영한 리얼리즘 회화를 보여준다. 이 전시는 그의 시선처럼, 20세기 초 근대미술, 해방공간의 풍경이나 1980년대 민중미술의 역사적 풍경화의 연장선상 혹은 아류로 생각하는 한국 리얼리즘 미술이 21세기 이런 선입관을 벗어나 어떤 모습으로 동시대성을 반영하면서 생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색다른 기획전이다.

기획진은 리얼리즘을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태도로 작가에 의해 성립하는 세계 인식, 표현의 방식으로 정의하면서 세상과 일상의 이미지들을 예민한 감각과 상상력으로 바라보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업해온 중견 소장 작가 13명의 다기한 리얼리즘 회화들을 골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새롭게 다가오는 건 임 작가처럼 차원이 다른 시선과 감각을 지닌 채 21세기의 변모된 시각 문화와 문명적 양상을 투시한 젊은 작가들의 환각적 리얼리즘 작업들이다.

명동 신세계 백화점 외벽이나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2호선 열차의 내부를 점묘화적 양상의 팝아트 그림으로 풀어낸 김혜원 작가나 금속성의 표면 효과를 강조하면서 부츠나 미니멀리스트 도널드 저드의 선반 등을 묘사한 조효리 작가, 반복되는 선풍기와 레미콘의 율동 이미지를 화면에 연속적으로 포착하면서 시간성과 정지된 풍경의 공존과 융합을 시도한 손현선의 소품 그림들은 참신하고 강렬하다.

신경질적이라고 할 정도로 민감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중견 리얼리스트 작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두루 보는 재미도 있다. 무속과 선적인 상상력을 바탕에 깔고 몸과 얼굴과 세상이 녹아내리는 도상을 내놓은 이수경 작가의 상상화들과 이질적인 색면과 일상의 장면들을 중첩시키면서 시대의 불안과 갈등을 화폭에 풀어낸 최진욱 작가의 풍경 그림, 1982년 작 청년 시절 자화상이 그런 부류의 작품들이다. 전시장을 휘젓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어떤 맥락에서 도상적, 감각적 계승과 연결이 이뤄지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걸린다. 다음달 25일까지.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김혜원 작가의 구아슈·아크릴 그림 <명동 신세계 백화점 외벽>(2022).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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