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광합성에도 한계가 있다? 작물과의 '햇빛 나누기' 영농형 태양광

박상욱 기자 2023. 5. 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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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85)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에너지전환의 열쇠 (상)
햇빛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당장 지구가 '따뜻한 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태양 덕분입니다. 우리 몸은 햇빛을 통해 비타민D를 합성해내죠. 식물 또한 광합성을 통해 자라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러하듯 '과유불급'. 지나치면 좋지 않습니다. 비타민D는 우리 피부 속 세포가 햇빛, 그중에서도 자외선을 이용해 만들어냅니다. 적절한 햇빛은 비타민D 합성에 도움을 주지만, 지나친 햇빛은 과도한 자외선으로 문제를 일으키죠. 식물도 그렇습니다. 마냥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광합성을 하는 것이 아닌 겁니다.

작물마다 소화할 수 있는 빛의 정도는 서로 다릅니다. 어둠에서 점차 밝아질수록 점차 광합성량은 늘어나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한계에 부딪힙니다. 작물 종류에 따라선 한계를 넘어서면 도리어 생육이 나빠지기도 하죠. 이처럼 각 작물이 가장 많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한계점을 '광포화점'이라 부릅니다.

이는 엽록체의 광정위운동 때문입니다. 엽록체는 잎 표면을 따라 넓은 표면적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위치합니다. 그런데, 빛이 작물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엽록체는 위치를 옮깁니다. 강한 빛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잎의 앞뒷면 사이에 세로로 자리 잡습니다.

작물마다 최적의 빛과 온도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은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작물별 광포화점과 최적온도를 찾음으로써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고, 다가오는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변화를 예측할 수도 있죠.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이행을 이야기하는 연재 기사에서 광합성과 엽록체에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광포화점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일은 또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작물이 맑은 날의 햇빛을 100% 다 활용하지 못 하는 데에서 비롯된 활용법입니다. 이를 위해선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등 그 산하 기관을 넘어선 융합이 필요하죠. 바로, 농지에 쏟아지는 햇빛을 다른 것과 나누는 것, 솔라 셰어링(Solar Sharing)입니다.

지금까지 '농촌'과 '태양광'은 서로 상극으로 여겨졌습니다. 태양광 발전 설비가 들어서면서 논과 밭이 사라지는 일들이 잇따랐기 때문입니다. 작물별 광포화점에 대해 알았더라면, 이를 활용해 서로 보완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입니다. 광포화점을 넘어서는 햇볕은 농업에 있어 도리어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강한 햇빛, 그로 인해 지나치게 뜨거워지는 온도는 작물에도, 농민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여름철, 맑은 날의 햇빛의 밝기는 100~120klux에 달합니다. 사과(20~30klux), 배(40~60klux), 벼(50~60klux), 수박과 토마토(70~80klux)가 필요로 하는 밝기를 크게 뛰어넘을 정도죠. 이런 '넘치는 햇빛'을 '셰어링'하는 것은 바로 태양광 패널입니다. 농업과 발전업을 한 부지에서 병행하는 영농형 태양광, 아그리볼타이크(Agri-voltaic,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와 태양광 발전을 뜻하는 Photovotaic의 합성어)는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을 일컫는 '아그리볼타이크'라는 용어가 처음 만들어진 곳, 프랑스를 다녀왔습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농지가 가장 넓은 나라로, 전체 국토에서 농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습니다.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농업식품환경연구소에서 만난 '아그리볼타이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앙 뒤프라 선임연구원은 프랑스가 처한 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에선 15년 전부터 농업 수확량이 늘어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점점 더 건조해지며 가뭄이 늘고, 더위는 일찌감치 봄부터 찾아오는데, 이런 문제는 특히 곡식이 꽃을 피우는 개화기 무렵에 발생해 큰 문제를 일으키죠. 과수의 경우, 서리로 인한 피해를 많이 입게 됐습니다. 온난화로 성장 시기는 당겨졌는데, 이 때 발생하는 서리가 어린 꽃이나 열매를 해치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죠.”
크리스티앙 뒤프라 프랑스 국립농업식품환경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런 상황에서 농업을 지키기 위한 대안이 된 것이 바로 영농형 태양광이었습니다. 2010년, 유럽 최초의 영농형 태양광 실증 연구가 이곳 몽펠리에의 연구소에서 시작됐고, 지난 3월, 영농형 태양광 법이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법안엔 프랑스에서 영농형 태양광의 정의가 담겼습니다. 농업 생산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선순위가 전력 생산에만 있지 않고, 동시에 농업인들이 기후변화에 맞서는 데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영농형 태양광 시스템은 극단적인 이상 기후에 맞서 농업과 동물을 보호하며 전력도 생산해야 합니다. 때문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더라도 수확량이 전과 같이 보전되어야 하죠.”
크리스티앙 뒤프라 프랑스 국립농업식품환경연구소 선임연구원

뒤프라 박사는 프랑스의 풍부한 농지를 활용하면 태양광 발전에 부족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10만 헥타르의 농지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면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며 “프랑스의 농지 2%에만 영농형 태양광을 도입해도 국내에서 필요한 전력을 모두 충당할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영농형 태양광이 실현되고 있는 농장을 찾아갔습니다. 프랑스 제2의 도시로 불리는 리옹에서 차를 타고 1시간 반 가량 이동하면 마주하게 되는 에투왈-쉬르-론 지역. 이곳에선 여러 농장들에서 체리와 복숭아, 살구 재배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농장에선 4헥타르의 농지에 1.9MW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설비가 가동 중이었습니다.

농부는 농사를, 발전사업자는 발전을.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하고, 각자의 일을 통해 얻는 수익은 각자 가져가는 구조로 운영되는 농장이었습니다. 농장주 크리스토프 샤메는 본인의 농장에 발전사업자가 설비를 설치할 수 있게 허락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건 일종의 보호 목적에서였습니다. 우박이나 서리와 같은 예상치 못 한 기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죠. 우박은 여기 심어둔 살구보다도 더 큰데, 최근엔 테니스공 크기의 큰 우박들도 떨어집니다. 패널 구조물을 이용해 그물망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우박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물 사용량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패널 아래의 땅에선 그늘 덕분에 물의 증발이 줄어들어서 농장의 물 사용량을 줄일 수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겨울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엔 냉해 방지에도 도움이 되고요.

영농형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선 새로운 영농법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원래 살구나무는 옆으로 자라나는데, 이를 수직 방향으로 자라게 만들어서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나무를 심는 것이죠. 그러려면 나무를 지탱해줄 지지대와 쇠줄이 필요합니다. 패널이 없었다면 기둥도, 쇠줄도 모두 비용이 많이 들었겠지만, 패널 사이의 기둥을 활용해서 훨씬 저렴한 비용에 이를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프 샤메 살구 농장주

샤메는 영농형 태양광 설비 설치 이후, 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이점도 생겼다고 덧붙였습니다. 무더운 여름, 이 지역의 한낮 기온은 40도 넘게 치솟는데, 패널로 생긴 그늘 덕분에 일하기 수월해졌다는 거죠. 일이 고되고, 온난화로 점차 기온도 높아지면서 농장에서 일할 인력을 찾기도 어려워졌는데, 영농형 태양광으로 근로 환경도 개선된 셈입니다.

드롬 지역에선 이런 이점을 누리기 위해 영농형 태양광을 찾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론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드롬 지역에서 대규모 영농형 태양광 설비를 설치중인 한 체리 농장도 찾아가봤습니다. 기존의 농장에서 소규모로 영농형 태양광을 시도해보고, 그 장점에 매료돼 새롭게 2.2MW 규모의 대형 영농형 태양광 단지를 공사 중인 농장이었습니다. 4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 농부 아드리앙 클레르는 우연히 찾은 박람회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처음 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래부터 우리 가족은 작물을 보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전시회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접하게 됐죠. 농장 사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아이디어구나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재생에너지가 필요할테고, 농장에서 발전과 농업을 병행해도 농지를 잃지 않는 것이니까요.

한여름의 나무는 강한 햇볕에 물이 많이 부족합니다. 무더위에 나무가 타들어가면서 나무의 고사율도 높아지고, 이는 생산량의 감소로 이어졌죠. 서시로 인한 피해도 많았는데, 패널을 설치하고서 꽃과 과일의 늦서리 피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태양광 패널이 작물에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죠. 한 번에 내리는 너무 많은 비, 한 번에 쏟아지는 너무 강한 햇빛, 한 번에 갑자기 뚝 떨어지거나 치소는 기온… 이런 기상 조건들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아드리앙 클레르 체리 농장 농민

클레르는 “심리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며 농업과 발전의 병행 외에 다가오는 이점을 설명했습니다. “처음 농업을 시작할 때엔 서리나 우박, 폭염 등으로 인한 손실로 낙심하곤 하는데, 영농형 태양광으로 그 걱정을 덜 수 있다”며 “또, 경우에 따라 잠시 농업을 멈춰야 할 수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발전을 병행한다면 심리적으로 부담을 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영농형 태양광과 농업은 공생 관계에 있습니다. 당장 우리는 태양광 패널 없이는 작물들을 보호할 수 없기도 하죠. 1헥타르의 땅에서 농업 생산과 전력 생산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집니다. 농업을 위한 1헥타르, 발전을 위한 1헥타르가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둘을 1헥타르의 같은 땅에서 하니까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고선, 거의 모든 작물이 영농형 태양광을 할 수 있습니다. 설비를 본다면, 농업인이라면 본능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체리, 살구, 복숭아, 키위, 사과, 배 등 거의 모든 과일에 패널 작동 알고리즘을 적용해 가동할 수 있죠. 쌀과 같은 곡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햇빛, 온도 등 알고리즘을 짜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죠.”
아드리앙 클레르 체리 농장 농민

농업과 전력 생산의 융합을 넘어서 갑자기 '알고리즘'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에뚜왈-쉬르-론과 드롬에서 둘러본 영농형 태양광 농장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태양광 패널뿐 아니라 온도계와 습도계, 적외선 카메라 등 각종 센서와 측정 장비가 농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이런 알고리즘은 농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영농형 태양광과 농업이 서로 상생하는 모습은 오는 31일 수요일 오전 10시, JTBC 다큐멘터리 〈농촌과 태양광, 상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다음 주 연재를 통해서 보다 상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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