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은 마약, 멈출 수 없다”…벼랑 끝 중독자의 삶[이현정의 현실 시네마]

2023. 5.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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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이 24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유아인, 남태현, 서민재, 돈스파이크.

최근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의 기로에 섰던 공인들입니다.

마약은 유명인들만의 범죄가 아닙니다.

10년 전 9000여 명에 그쳤던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 1만8000여 명으로 두 배 뛰었습니다.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암수범죄까지 고려하면 실제 마약사범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약 청정 국가’는 옛말이 됐죠.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마약을 접하고, 어떻게 빠지는 걸까요?

오늘은 농구선수 유망주 소년이 마약의 수렁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은 1995년작 할리우드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를 통해 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화 작가 짐 캐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명연기를 바탕으로 마약의 위험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화와 함께 마약 중독자들의 실제 경험담도 들어봅니다.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응해준 3명은 모두 민간 약물치유재활센터인 ‘경기도 다르크(DARC)’에 자진 입소해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분들입니다.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
“이거 하나면 수퍼맨처럼 할 수 있어.”

학교에서 불량 학생으로 통하는 짐 캐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친구들과 본드를 흡입하고 도둑질까지 일삼으며 사고만 치고 다닙니다. 그래도 농구에 큰 재능을 보이며 농구 선수의 꿈을 키우죠. 친구들과 어울리던 어느 날 그는 이성 친구의 ‘악마의 속삭임’으로 마약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짐은 어린 호기심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마약에 손을 댑니다.

마약을 접하는 배경에는 실제로 주변의 영향이 큽니다.

A(26·여) 씨도 스무 살 무렵 당시 남자친구의 제안으로 필로폰을 처음 접했습니다.

김 씨는 “당시 유행이었던 해피벌룬을 이미 자주 접한 터라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다”며 “남자친구가 필로폰을 권했을 때 호기심에 시도했는데 이후론 중독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약인지도 모른 채 중독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허리 통증이 겪었던 B(27) 씨는 어느 날 회사 동료부터 ‘허리를 낫게 해주는 비타민 주사’를 소개 받았습니다. 동료가 직접 B 씨에게 정맥 주사를 놔줬는데, 신기하게도 허리 통증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일의 집중도도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후 회사 동료는 매일 하루에 두 번씩 B 씨에게 ‘비타민 주사’를 투여해줬습니다. 이 주사가 필로폰이라는 사실을 B 씨가 안 것은 2주 뒤. 그러나 멈추기엔 늦어버렸습니다.

B 씨는 “그 주사를 맞으면 허리 통증이 사라지고 시간 개념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며 “그냥 신기하니까 필로폰인 걸 알면서도 계속 맞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
“고통과 슬픔, 죄책감이 전부 씻겨 나갔다.”

“처음에는 토요일 밤에만 즐긴다. 너무 좋아서 화요일에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목요일에도..그리고 중독된다.”

짐은 중독 과정을 이 같이 표현합니다. 절친한 친구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짐은 헤로인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하죠. 가루약으로 시작했던 짐은 점점 알약을 찾고, 이후엔 정맥 주사까지 찾으며 깊은 수렁에 빠집니다.

실제 마약 중독자들도 마약에 빠진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A 씨는 “필로폰을 처음 경험했을 때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며 “7~8시간 약효가 유지될 때 정신이 또렷해지고 집중력이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착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B 씨 역시 “처음엔 주사기의 용량이 한 칸에서 시작했는데 나중엔 네 칸까지 늘었다”며 “필로폰 0.5g을 한 번에 다 투여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필로폰의 일반적인 1회 투약량은 0.03∼0.05g입니다.) 그는 이어 “많은 양을 투여해도 느낌이 오지 않자 나중엔 팔이 아닌 목에 스스로 주사했다”며 “그 땐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되돌아봤습니다.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
“돈 좀 주세요. 돈이 필요해요”

농구 선수를 꿈꾸던 짐의 삶은 마약으로 크게 달라집니다. 좋아하던 농구 연습도, 매일 쓰던 일기도 손에서 놓게 되죠. 중요한 농구 시합까지도 약에 취한 채 뛰면서 망쳐 버립니다. 그렇게 그의 농구 선수의 삶은 끝이 납니다. 오직 약만 찾아다니는 짐. 수중에 약 살 돈이 떨어지자 강도 범죄와 성매매도 서슴치 않죠. 그 사이 농구선수의 꿈을 이뤄 방송 인터뷰를 하는 친구를 보고 자괴감도 느낍니다. 짐은 지인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잠시 약에서 멀어지는 듯 하나 이내 다시 약을 찾아 떠납니다. 약에 취한 채 엄마를 찾아가선 애원하죠. 제발 약 살 돈 좀 달라고.

여자친구의 권유로 필로폰에 손을 댄 C(23) 씨도 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창 중독됐던 당시 그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거의 매일 약에 취해 살았습니다. 일도 그만 두면서 수입이 끊겼고, 키 180㎝인 그의 당시 몸무게는 48㎏까지 빠졌습니다. 약에 취한 상태에서 밖에서 난동을 부리고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죠. 스스로 망가진 모습에 극단적인 선택도 시도했습니다. C 씨는 엄마를 찾아가선 짐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엄마, 5만원만 주세요.”

C 씨는 “약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집에 있는 옷부터 신발까지 필로폰 딜러에게 다 주면서 약을 구걸했다”며 “약 때문에 가족들과도 갈등이 많았는데 그 상황에서도 약 살 돈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
“멈추고 싶다. 진심이다.”

“마약은 꿈 같다. 꿈을 멈출 순 없다.”

짐은 약을 끊고 싶어하면서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약상을 또 만나 헤로인을 얻은 짐과 친구. 알고 보니 가짜 약인 것을 알아챈 이들은 마약상을 쫓다가 옥상까지 올라갑니다. 친구는 실수로 마약상을 밀어버리고, 마약상은 끝내 사망합니다. 친구가 경찰에 붙잡힌 사이 짐은 도망칩니다. 짐은 엄마를 또 찾아가 약 살 돈을 달라고 간청합니다. 엄마는 울면서 그를 경찰에 신고하죠.

6개월 간 교도소에서 글을 쓰며 반성의 시간을 보낸 짐. 예전 친구가 나타나 약을 건네지만 짐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짐이 쓴 글은 나중에 이 영화의 원작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약의 중독성이 워낙 강한 탓에 단약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A 씨도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두 차례나 입원하는 등 수 차례 단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결국 그는 지난 16일 자진해서 경기도 다르크를 찾았습니다.

그는 “약을 하고 후회하는 걸 반복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니 공감대가 형성돼서 단약 의지를 다지기 훨씬 좋다”고 했습니다.

C 씨는 “당시 약을 끊고 싶은데 끊지 못하니 스스로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한 번의 투약으로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필로폰을 했던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약 중독자에서 작가로 변신한 짐

실제 인물 짐 캐롤은 마약 생활을 청산한 뒤 꿈을 하나씩 찾아갔습니다.

교도소에서 썼던 글을 바탕으로 자전적 소설와 시를 썼고, 펑크 음악 뮤지션으로도 활동했죠.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마약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습니다.

다르크 입소자들도 성공적인 퇴소를 꿈꾸고 있습니다. 맘 한 켠엔 소박한 꿈도 키우고 있죠.

대학원을 휴학 중인 A 씨는 심리학 석사를 밟을 계획을 세우고 있고, C 씨는 퇴소 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B 씨는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마약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개인의 강한 의지를 강조합니다.

“약은 평생 생각난다고 하지만 노력하고 노력하면 생활 습관과 가치관이 바뀐다고 한다. 마약을 끊기 위해선 본인이 스스로 약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끊어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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