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4] 살해를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특히 갓 태어난 새끼들만 노리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지요. 앙증맞은 표정으로 엄마의 가슴을 찾는 아기들의 숨통을 끊어놨습니다. 일말의 죄책감도 물론 없어 보였고, 범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새끼들을 차례로 죽여나갑니다.
영아살해는 ‘작전’의 첫 단계에 불과했습니다. 슬픔에 빠진 어미에게 그 놈이 접근했고, 결국 성관계까지 성공하지요. 임신시키면 다음 대상을 찾아 헤맸습니다. 살해의 다음 목표가 될 아기들, 다음 성관계의 목표가 될 또 다른 어미들. 그는 또다시 군침을 삼킵니다. 밀림의 왕 수사자의 이야기입니다.
수사자는 왜 암컷의 새끼를 죽였나
밀림의 왕 사자가 남의 새끼를 죽이는 이유는 ‘번식’ 때문입니다. 포유류 암컷은 대개 수유 중에 배란하지 않습니다.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라는 의미입니다. 새끼가 제법 제구실을 할 때까지는 암컷은 잉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후손을 물려줘야 하는 수컷 입장에서는 번식의 기회를 잃는 셈이지요.
자연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수컷은 암컷이 남의 새끼를 키우는 걸 잠자코 보고만 있지 않지요. 본능적으로 새끼를 죽이면 암컷이 다시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된다는 걸 알아챕니다. 수사자가 (남의) 새끼를 죽이면 암컷도 수유를 중단하고 다시 배란이 시작됩니다. 영아살해가 수사자 사이에서 만연하게 된 배경입니다. 동물학자들은 생후 첫해에 죽는 새끼 사자 중 4분의 1이 영아 살해의 희생자인 것으로 추정할 정도입니다.
사자의 생물학적 특성도 영아살해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수사자의 경우 2년 동안만 번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암사자의 출산 주기는 2년에 한 번이지요. 수사자로서는 제한된 시간을 벗어나면 번식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암사자의 새끼를 죽이면서까지 짝짓기를 시도하는 데에도 그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지요.
랑구르 원숭이도 영아살해의 대표 종
‘영아살해’는 밀림의 왕 사자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영장류, 설치류에서 흔하게 목격됩니다. 특히 인도에 서식하는 랑구르 원숭이가 대표적이지요. 이들 집단에서는 우두머리 수컷이 여러 암컷을 지배하는 구조입니다. 다른 수컷들은 감히 두목의 여자를 건드릴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에게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수컷 우두머리가 새로 떠오르는 신인에 일격을 맞으며 패배를 당하는 ‘반정(反正)’이 벌어지지요. 새 임금(?)의 첫 행보는 영아 살해입니다. 전 두목의 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리는 극악무도한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수유를 하는 암컷 랑구르 원숭이들이 다시 임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진화적’인 행동입니다. 다른 수컷의 새끼를 키우는 암컷의 가임기를 2~3년 동안 멍하니 기다리느니, 새끼를 살해해 어미를 다시 발정기에 넣어버리는 것이지요. 실제로 51종의 영장류 사이에서 영아살해가 목격되었습니다. 분류 기준에 따라서, 최소 10%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영아살해에 ‘난교’로 대응하다?
하지만 세상의 엄마는 강합니다. 수컷이 제 새끼를 도륙하는 데 가만히 있을 어미는 없지요. 암사자의 경우 수사자에 격렬히 저항하면서 싸움을 시도합니다.
랑구르 원숭이의 암컷의 경우는 보다 외설스러운 방법을 택합니다. ‘난교’입니다. 임신한 랑구르 원숭이는 때때로 무리를 조용히 빠져나옵니다. 집단 외부의 수컷들과 섹스를 즐기기 위해서지요.
과학자들은 애초에는 랑구르 암컷 원숭이의 행동을 ‘지나친 성욕’이라고 해석했습니다만, 수컷들의 ‘영아살해’ 행위가 확인 된 이후 새로운 해석을 도출합니다. ‘친부혼동 이론’입니다. 난잡한 관계를 가져서 가급적 많은 수컷들과 연계되는 전략입니다. 자신과 교미한 암컷이 임신한 사실을 수컷은 알 도리가 없지요. 그들로서는 ‘자신의 아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영아살해를 주저하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얼치기 과학자의 설익은 이론이 아닙니다. UC 데이비스 명예교수인 저명한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는 말합니다. “암컷이 자신의 아이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곤경 앞에서 난교라는 해결책을 생각해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수컷의 ‘영아살해’라는 공격에, 암컷이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고자 ‘난교’로 대응했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짐승보다 우월한가
동물의 세계만 잔인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번식을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이진 않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자식을 학대하고 죽여 왔기 때문입니다. “양육할 능력이 없다”, “아들을 낳고 싶은데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인류학자 조셉 버드셀은 구석기 시대에 태어난 아이 중 최소 15%에서 최대 50%까지 영아 시기에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꽃 같은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새끼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합니다. 모두 어른의 욕심 때문입니다.
<세줄요약>
ㅇ수사자는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인다. 암컷의 수유를 중단시켜 다시 ‘가임기’로 만들기 위해서다. 쥐 , 원숭이 사이에서도 ‘영아살해’가 발견된다.
ㅇ랑구르 원숭이 암컷이 임신 중 ‘난교’를 펼치는 이유가 ‘친부 혼동’으로 영아살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과학계는 해석한다.
ㅇ인간 역시 수많은 어린이를 다양한 이유를 들어 살해해 왔다. 어른의 욕심으로 아이들이 고통받는 건 동물과 인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참고문헌>
ㅇ버지니아 헤이슨 · 테리 오어, 포유류의 번식 암컷 관점, 뿌리와이파리, 2021년
ㅇ루시쿡, 암컷들, 웅진지식하우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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