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 언제 끝날지 모른다
5월15일, 전세 사기 피해자 하진희씨(가명·31)를 만나기로 한 시각은 아침 6시40분이었다. 인천 부평구에 살고 있는 하씨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뒤늦게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충남 당진시에 위치한 한 대학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다. 10시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 6시40분 첫차를 타야 한다. 약속한 시간이 30분 넘게 지나서야 하씨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전날 밤 10시까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새벽까지 전세 사기 관련 서류와 씨름하다 늦잠을 자고 말았다. 밤잠 없는 일상.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는 하씨가 말했다. “버스에서는 인터뷰 안 해도 되죠? 저 잠 좀 자고 싶어요.”
하진희씨의 전세보증금을 가져간 악성 임대인은 지난해 10월 사망한 김대성이다. 사망 이후 그가 주택을 1100채 이상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자 언론은 그에게 ‘빌라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하씨가 거주하는 인천 부평구도 김대성이 주택을 대거 사들인 지역 중 하나였다.
당초 하진희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임대인(집주인)은 김대성이 아니었다. 자취 경험이 많은 하씨는 나름 집을 꼼꼼하게 골랐다. 문제가 된 집을 고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계약을 맺은 임대인이 그 집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사기 매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임대인은 선순위 근저당으로 걸려 있는 2억원도 입주 당일에 말소하기로 약속했고, 실제로 전세금을 받은 뒤 곧바로 근저당을 말소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도 가입했다. 그렇게 하씨는 2021년 4월 인천 부평구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입주한 지 1년이 지난 지난해 4월, 하진희씨는 전세 계약을 일찍 종료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인천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계약을 일찍 종료할 수 있느냐는 하씨의 질문에 계약을 맺었던 임대인은 “이제 내 집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김대성이라는 인물로 집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세입자도 모르게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황당했지만, 하진희씨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새로운 임대인에게 다시금 계약 종료를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새 임대인 김대성은 다른 임차인(세입자)이 들어오지 않는 한 계약을 미리 종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새 임차인을 구하긴 어려웠다. 그사이 이자는 꾸준히 올랐다. 2% 수준이었던 금리는 어느새 6%까지 올라 매달 내야 하는 이자만 120만원에 달했다. 학생 신분인 하진희씨에게는 부담이 컸다. 계약 종료까지 몇 달만 더 버티자 싶었다. 만기(2023년 4월)를 앞둔 지난 1월 말, 하진희씨는 새 임대인 김대성에게 계약 해지를 알렸다. 그러나 김대성은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내용증명을 보내기 전, 계약서 원본대조필을 받으러 그는 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계약서를 살피던 은행원이 뜻밖의 말을 했다. “집주인이 ‘빌라왕’ 사건 사기꾼인 것 같은데요. 꼭 확인해보세요.” 그렇게 김대성이 사망하고 석 달이 넘어서야 하진희씨는 자신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세 사기 사건의 피해자임을 알게 됐다.
계약 해지 통보조차 못하는 피해자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인 하진희씨가 도움을 청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인천 부평구에 개소한 전세피해지원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센터 직원이 하씨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냐는 것이었다. HUG를 통해 가입했다고 답하자, 센터 직원은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보증 가입이 되어 있는 경우 HUG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HUG 역시 하진희씨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집주인 대신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반환(대위변제)받기 위해서는 먼저 계약 종료를 집주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계약 종료를 통보하지 못했다면, 기간이 만료돼도 계약이 묵시적으로 연장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의 경우 임대인 김대성이 사망함에 따라 계약 종료를 통보받을 당사자가 사라져버렸다. HUG에서는 통상적인 대위변제 신청 절차를 알려줄 뿐 집주인이 사망한 경우에 대해서는 안내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하진희씨가 의지할 곳은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뿐이었다. 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모인 카페에 가입해 각 사례를 살펴보니, 자신과 유사한 케이스가 많았다. 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는 하씨처럼 ‘집주인이 바뀐 경험’을 갖는다. 우선 원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받고 임차인을 들인다. 전세 임대차 계약 직후 원 임대인은 김대성과 매매계약을 맺는다. 매매가는 통상 피해자가 낸 전세보증금과 동일하다. 주택 소유권은 넘어가지만 김대성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다. 사실상 소유권만 이동한다. 구체적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피해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인 구조다. 김대성 피해대책위원회(김대성 대책위)가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4%가 ‘집주인이 나중에 김대성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하진희씨가 당한 전세 사기도 이 구조를 동일하게 답습한다. 2021년 4월16일 하씨는 당시 임대인 김 아무개씨에게 보증금 2억6900만원을 지불하고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당시 임대인 김씨는 입주 당일 2억원 상당의 근저당권을 말소했는데, 이틀 뒤인 2021년 4월18일 김대성에게 소유권을 이전한다. 매매가는 2억6900만원. 하진희씨의 전세보증금과 동일한 액수다. 김대성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피스텔 소유권을 얻었고, 원 집주인은 빠르게 집을 매매했다. 반면 하진희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세 사기 피해자로 전락했다(원 집주인과 김대성이 공모 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믿을 구석’은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지만, 집주인의 사망이라는 이례적 상황 앞에서는 무력했다. 집주인이 사망할 경우 세입자는 상속인을 찾아 그에게 대신 전세 계약 종료를 통보해야 한다. 문제는 그 누구도 김대성의 재산을 상속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00채가 넘는 집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지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의무에다가 62억여 원의 체납 세금 역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대성의 부모는 지난 3월 상속을 포기했다. 이제 상속은 마지막 순위인 4촌 이내 방계혈족에게 달려 있다.

문제는 김대성의 4촌 이내 혈족을 찾는 과정이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김대성의 상속인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한 번에 정리해서 알려주는 절차는 없다. 피해자들이 직접 김대성의 가족관계를 정리해 4촌 이내 혈족을 모두 찾아내야 한다. 이 과정 역시 쉽지 않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상속인의 주민등록등초본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타인이 이를 받아보기 위해선 법원의 명령이 필요하다. 결국 상속인을 찾고, 그 상속인의 주소를 확인하고, 상속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공시송달을 해 계약 종료를 통보하는 모든 법적·행정적 과정을 피해자 개개인이 하나하나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 역시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다.
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찾아낸 4촌 이내 혈족은 총 4명이었다. 각각 김대성의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다. 본격적인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아무리 찾아도 김대성 고모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분명 고모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주민등록등초본이 발급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외 주소지가 확인된 것도 아니다. 출입국사무소에 문의해본 결과, 김대성씨의 고모는 출입국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증발해버린 듯 기록이 전무한 사람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해야 하는 과제가 피해자들에게 놓였다.
당초 피해자들의 예상보다 상속 대상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들은 김대성 부모의 형제·자매 가족을 상속인으로 파악해 대상을 추렸다. 그런데 민법이 규정한 ‘4촌 이내의 방계혈족’에는 이들뿐 아니라 조부모의 형제자매도 포함된다. 이들까지 범위를 넓혀 파악한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상속인만 20명이 넘는다. 피해자들의 보증금 회수가 한층 더 까다로워진 셈이다.

계약 종료일인 지난 4월15일까지 상속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면서 하진희씨는 원치 않는 계약을 억지로 연장해야 했다.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지난 3월부터 하진희씨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학생 신분인 하진희씨가 급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물류센터 일자리밖에 없었다.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는 것이 요즘 하씨의 일상이다. 일을 쉬는 날에도 밀린 학교 과제를 하거나, 김대성의 상속인을 찾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다.
하진희씨에게는 매일 2만원에 달하는 통학 비용도 큰 부담이다. 결국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학교 수업을 마친 후, 당진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평택 쿠팡 물류센터로 출근한다. 밤 10시에 일을 시작해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일한다. 퇴근 후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당진으로 돌아와 그대로 등교한다. 잠을 자는 시간은 당진과 평택을 오가는 셔틀버스 이동시간밖에 없다. 그나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5월15일에는 쿠팡 물류센터 근무를 신청했지만 신청자가 많아 일을 배당받지 못했다. 하진희씨는 보통 하루는 밤새워 일하고 다음 날은 하교 후 집에서 쉬며 과제 등을 하는데, 이날처럼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면 그다음에 연속으로 밤새 일해야 한다. 심한 경우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연속해 일을 하느라 평일 내내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이자를 갚기 위해 야간근무를 하면서 학교생활은 점차 꼬여갔다. 잠을 자지 못해 단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교우관계에 소홀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간 수업에서는 졸기 일쑤다. 깨어 있는 시간에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자 교수님이 따로 불러 수업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땅한 해결 방법은 없다. 매달 돌아오는 이자를 밀린다면 언제든 신용불량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진희씨의 사정을 아는 이들은 그에게 ‘휴학하고 일단 공장에서라도 일하며 돈을 버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나 하씨는 도저히 학업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대출 이자의 늪을 견뎌야 할지 가늠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씨는 “학교마저 놓아버리면 평생 비정규 일자리만 전전하며 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은 지금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다. 무리인 줄은 알지만 마지막 희망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HUG 보증 가입자들은 그나마 다행?
기댈 곳 없는 하진희씨를 지탱하는 것은 같은 피해자들이다. 지난 4월 끝내 전세대출을 연장하고 돌아오는 길, 절망에 빠진 그는 피해자 단톡방에 하소연을 했다. 너무 힘들어 차라리 회생절차를 밟고 싶다는 그를 다른 피해자들이 만류했다. 그가 스스로 삶을 포기할까 봐 걱정된 이들은 그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을 간호사라고 밝힌 한 피해자는 간호학과 재학생인 하진희씨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자며 기프티콘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전세 사기 특별법 또한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 사기 피해자의 요건인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거나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속 문제로 기한 없이 늦어지고 있긴 하지만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대위변제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일지, 언제까지 이 시간을 버텨야 하는지, 기약 없는 기다림이 너무나 길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피해자 구제 대책으로 언급되고 있는 저금리 정책 대출 대환도 불가능하다. ‘HUG 보증 가입자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언론과 대중의 인식과 달리, 하진희씨처럼 막연한 고통 속에서 끝없이 버티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하진희씨는 “내가 전세 사기를 당한 데는 정부·은행·공인중개사의 책임도 크다. 그런데도 개인이 모든 책임을 떠안으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못한 피해자들 역시 앞길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집을 경매에 넘겨 일부라도 보증금을 회수하기 위해선 소송의 상대방이 될 상속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HUG의 대위변제에 비해 경매에까지 이르는 절차는 더 복잡하다. 피해 회복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주축을 이룬 김대성 대책위가 상속 절차를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주기를 요구하는 이유다.
5월8일에는 안타까운 소식도 뒤따랐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고 있던 한 피해자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유가족들은 고인이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투잡·스리잡을 뛰며 무리한 것이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망한 피해자는 생전 김대성 대책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피해자를 위한 저금리 대출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시기가 시급합니다. 전세금뿐만 아니라 월 이자 때문에 피해가 두 배로 와닿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의 사망을 두고 하진희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쳐서 하루라도 쉬게 되면, 다음엔 더 큰 짐이 다가온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면 추락하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동안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살고자 하면 살아졌다. 그런데 지금은 살고자 해도 살 방도가 안 보인다.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도 알 수 없다. 고인도 나와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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