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향 풍기자 청년 상인들도 신바람… 세대교체 꿈틀대는 경동시장

김표향 입력 2023. 5. 2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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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통시장] <23> 서울 경동시장
스타벅스 유치로 방문객 급증 '핫플레이스' 부상 
청년몰 식당도 덩달아 대박… 휴폐업 위기 극복
시장·청년몰 상생 신바람… 새 프로그램 협력도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으로 젊은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스타벅스 경동1960점'과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 입구. 안다은 인턴기자

“시원한 커피 한 잔 드세요. 경동시장 왔으면 커피 맛은 보셔야죠.”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상인회 사무실에 커피추출기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걸어서 30초면 닿는 옆집 가게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서 공수한 커피 원두란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웃 점포들은 전부 ‘인삼 도매상’이다. 갓 내린 커피 향과 인삼 달이는 내음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25일 경동시장에서 만난 김영백(58) 상인회장은 “시장 커피 맛이 좀 어떠냐”고 웃으며 물은 뒤 “요즘 스타벅스 덕분에 활기가 돈다”고 전했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스타벅스… 경동시장이 젊어졌다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스타벅스 경동1960점'을 찾은 방문객들이 커피를 즐기며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동시장은 국내 최대 인삼ㆍ도라지ㆍ더덕 도매 시장이자 바로 옆 약령시와 함께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유명하다. 서민들에겐 시중보다 저렴하고 신선한 식자재가 넘쳐나는 ‘장바구니 성지’로 사랑받았다. 대지면적 1만5,540㎡, 건물면적 3만1,500㎡ 규모로, 현재 709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하지만 전국의 여느 전통시장처럼 쇠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상인들은 늘 근심이 깊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경동시장 경영주인 케이디마켓과 상인회가 3년여 노력 끝에 스타벅스 유치에 성공한 뒤부터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스타벅스는 1962년 지어진 본관 건물에 20년 넘게 버려져 있던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경동1960점’을 열었다. LG전자도 협업해 스타벅스와 연결되는 문화체험공간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차렸다. ‘레트로 열풍’을 타고 젊은이들이 몰려왔다. 하루 방문객은 평일 1,500~2,000명, 주말에는 4,000명에 달한다. 김 회장은 “예전에는 중장년ㆍ고령층 어르신들만 찾는 시장이라 젊은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엄마 손 잡고 온 아기들까지 보이니 상인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월 매출 4000원에서 1400만원으로… 청년몰 대박 터졌다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청년몰을 찾은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최대 수혜자는 신관 3층에 자리 잡은 청년몰 ‘서울훼미리’다. 식자재를 주로 파는 경동시장은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스타벅스 방문객들이 식사를 하러 청년몰로 몰린다. 이날도 청년몰엔 빈 테이블이 하나도 없었다. 검은색 봉지를 든 손님도 많이 눈에 띄었다. 경기 하남에서 온 주부 박시연(47)씨는 “경동시장 스타벅스가 유명하다고 해서 친구와 구경 삼아 왔다가 시장에서 들기름과 포기상추를 잔뜩 샀다”며 “청년몰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아주 맛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 청년몰 점포 650곳 중 27%가 휴ㆍ폐업 상태다. 경동시장 청년몰도 지난해까진 파리만 날렸다. 2019년 8월 문을 열자마자 반년 만에 코로나19가 터진 탓이다. 살아남은 음식점이 8곳 중 2곳뿐이었다. 청년몰 상인들은 “이러다 정말 망하겠다”는 절박함에 신규 입점 공모를 추진했고, 음식점 8곳, 디저트가게 6곳, 공방 6곳을 모두 채웠다. 그때 스타벅스 개점 소식이 들려왔다. ‘청년한식’ 대표인 전훈(33) 청년몰 회장은 “처음엔 대기업까지 우리 앞길을 막나 싶어서 절망했다”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스타벅스 개점 첫날부터 청년몰도 대박이 터졌다. 대기 줄까지 늘어섰다. 예전엔 인근 직장인 대상으로 점심 장사만 근근이 하는 수준이었으나, 요즘엔 오후 4~5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하루 매출 4,000원이었던 매장이 1,400만 원을 찍기도 했다. 이지은(39) ‘청산제과’ 대표는 “외부의 긍정적 자극이 창업 초보들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며 고마워했다.


시장에서 받은 사랑, 다시 시장으로… “함께 잘 살아야”

경동시장 위치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청년몰과 시장의 상생 관계도 살아나고 있다. 청년몰은 식재료를 시장에서 조달하고, 시장은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한다. 청년몰 음식점들은 잠시도 가게를 비우기 어려운 상인들을 위해 식사 배달도 하고 있다. 입맛 까다로운 상인들의 ‘맛 평가’ 덕분에 청년 사장들의 요리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호텔 중식당 10년 경력을 지닌 정봉우(39) ‘봉차우’ 대표는 “힘든 시기에 상인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실력도 더 연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건나물을 판매하는 부성물산 이재숙(67) 대표는 “자식 같은 청년들이 열심히 장사하는 모습이 기특해 뭐라도 덤으로 주게 된다”며 웃었다.

외부에 대관하는 청년몰 ‘공유주방’도 시장에 활기를 더한다. 이곳에서 열리는 해외 단체 관광객 대상 한식 체험 프로그램으로 외국인들도 많이 온다.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시장 매출에 도움이 되는 투어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인삼 전문 가게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경동시장 상인회는 옥상 푸드트럭 야시장, 전통시장 축제, 인근 약령시와 연계한 관광코스 개발 등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 사장들도 팔 걷고 나섰다. 최근에는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사업에 응모해 경동시장과 청년몰 홍보 마케팅 비용 4억 원을 따냈다. 청산제과는 경동시장 특산품 인삼을 활용한 신 메뉴 ‘인삼 튀일’을 개발 중이다. 전훈 회장은 “전통시장이 잘 돼야 청년들이 살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도 이뤄질 수 있다”며 “청년들의 꿈을 키워주는 경동시장에서 좋은 장사꾼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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