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손길] 하인을 거느리는 가족국가

기자 입력 2023. 5. 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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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도우미 추진하며
근로기준법은 적용 않는다는데…
한 나라의 주요 정책을 보면
그 나라의 격이 보인다
우리의 격이 이 정도밖에 안 될까

풍요로운 국가에서 미래세대의 인구 감소는 오래된 문제다. 미래세대 인구가 감소하면 여러 측면에서 국가 경제가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노동인구’가 감소한다. 특히 풍요로운 국가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하부 경제를 돌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 더해 노동인구가 줄어드니 연금을 내는 이의 숫자가 줄어들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기도 힘겨워진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이 때문에 풍요로운 국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 국가 하부 경제를 돌리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싼 비용으로 데려다 쓴다. 둘째, 국내 출산율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쓴다. 곤란한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로 해결하고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 방식은 이내 문제점을 드러냈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엔 정당성의 문제를, 국내 출산율의 경우엔 효율성의 문제였다.

우선 대다수 국가에서 출산율 증가 정책은 별달리 효과가 없었다. 한 국가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선 최소 2.1명의 합계출산율이 필요한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20년 기준으로 이를 넘긴 나라는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밖에 없다. 우리나라 2020년 0.84명, 2022년 0.78명으로 유일하게 1명이 안 되는 초저출산 국가다.

한편 당장 급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외국인 노동자 제도 역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각 정치공동체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자들조차 비난한다. 예를 들어, 마이클 월저는 이 제도로 인해 ‘국가가 마치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가족과 같은 형태’가 되어버린다고 일갈한다. 이런 제도는 잘사는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자격만으로 그렇지 못한 국가의 구성원을 하인으로 부릴 자격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월저는 만약 이런 제도가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면, 자기 영토 내로 들여오는 모든 노동자에게 ‘손님(guest)’이라는 자격 대신 ‘잠재적’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이 노동자들이 원해서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원해도 그들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승인하지 않는다면 다른 영토에서 일할 자격을 얻을 순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노동력을 원했기 때문에 이곳에 와 있다.

그런데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하고 임금을 받는 것 외에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국가 권력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수용된 영토 내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규제한다. 그런데도 국가 권력은 이들에게 어떤 견해도 묻지 않는다. 월저에 따르면, 자유로운 공동체는 이런 삶의 방식을 단호히 거부한다.

누군가는 월저의 주장을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독일의 인구 정책을 보면 월저의 주장은 오히려 힘을 얻는다. 독일은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부터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시리아 전쟁으로 생겨난 중동 난민 119만명을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121만명을 수용했다. 총 240만명에 이른다.

독일은 난민 1명당 1만유로(약 1400만원) 정도를 쓰고 있는데, 240만명을 수용했으니 240억유로 정도를 쓴다.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니 당연히 난민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생활비와 학교 교육 지원을 받고, 사회보장제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외국인 중에 배움이 모자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직업교육을 받고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을 거치면 독일에 쉽게 이민하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출산율 장려 정책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미 도입한 일본·싱가포르·대만·홍콩의 사례를 보면 이 제도와 합계출산율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었다. 정책으로서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도입하는 방식도 문제다. 이들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이 발의되어 있다. 국가가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가족의 형태’를 옹호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배고픈 쪽이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이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럼 우리 내국인들도 배고픈 사람이 괜찮다고 하면 최저임금과 상관없이 노동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할까? 한 나라의 주요 ‘정책’을 보면 그 나라의 ‘격’이 보인다. 우리의 ‘격’이 진정,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일까?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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