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사막거북
사막에서 물을 잃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가물에 콩 나듯 사막에서 만나는 풀이나 선인장에게 병아리 눈물만큼의 물을 얻어 몸속에 모았다가 위험에 빠지면 그마저도 다 버린다
살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나도 슬픔에 빠지면 몸속에 모았던 물을 다 비워낸다 쏟아내고서야 살아남았던 진화의 습관이다
어떤 것은 버렸을 때만 가질 수 있고
어떤 것은 비워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쏟아내고서야 단단해지는 것들의 다른
이름은?
돌처럼 단단해진 두 발을 본 적이 있다
피딱지가 엉겨 있었다
어느 거리였을까
어느 밥벌이 전쟁터였을까
정끝별(1964~)
서부영화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결투 장면에서 바람에 굴러다니는 실뭉치 같은 것이 ‘회전초’다. 씨앗을 뿌리며 바람 부는 대로 사막을 굴러다니다가 비가 오거나 물을 만나면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다. 사막거북은 우기가 다가오면 사막을 횡단하거나 “돌처럼 단단”한 두 발로 땅을 파고 알을 낳는다. 그런 점에서 이 둘은 닮았다. 풀이나 꽃, 선인장을 먹는 사막거북은 극한 상황에 대비해 몸속에 물을 저장한다. 하지만 “위험에 빠지면 그마저도 다 버린다.”
시인은 위험에 처한 사막거북이 생명과도 같은 물을 버리는 행위를 통해 ‘눈물’을 소환한다. ‘거리’와 ‘밥벌이 전쟁터’를 제시함으로써 눈물을 다 쏟아내는 이유가 개인적 슬픔보다는 공적 가치를 지닌 것임을 피력한다. “피딱지가 엉겨 있”는 두 발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쏟아내고서야 단단해지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진화의 습관”은 생존과 민주주의인 셈이다. 지금도 거리와 일터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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