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어떤 봉별기(逢別記)

정재운 소설가 2023. 5.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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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운 소설가

여행은 여행이니까, 라고 주억거렸다. 들을 사람도 없는 혼잣말을 곱씹는 까닭은 곧 당도할 도시가 광주요, 일자도 오일팔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공간, 그런 시간 속으로 향하는 자는 여행이 품기 마련인 우연조차 기대해선 안 될 것 같다. 마치, 순례길에 오른 신실한 자에게 신의 섭리와 음성 외에 다른 목적이란 존재하지 않듯.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대학 신입생이 되기 전까지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읽을 줄 몰랐다. 가르쳐줄 이가 없었다는 둥 갖가지 변명을 늘어놓아도 용서받을 수 없는 무지였다.

물론 광주시민이 흘린 피가 무의미한 패배로 점철된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광주의 봄을 무참히 짓밟고 들어선 신군부는 그 탄생부터 정통성을 상실했고, 끝내 1987년 유월의 함성으로 이어져 직선제 개헌을 낳았다. 그 승리와 패배가, 좌절과 희망이, 질서와 혼돈이 교차하는 그해 오월에 관하여 알게 된 지 스무 해가 흘렀다. 그동안 거의 매해 빛고을을 찾았다. 무지보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진실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것이기에 나름의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내 몫의 부끄러움을 닦아내는 일이란 그렇게 지난한 시간을 요구했다.

올해 광주를 찾은 까닭은 35회째를 맞은 오월 미술제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청탁받은 전시비평과 애도의 수행. 어느 하나 앞설 것도, 후순위에 놓을 것도 없이 동일한 무게로 내 안의 천칭에 올랐다. 미술제의 슬로건은 “내 삶의 주인으로서 행동하라. 그리고 참여하라!”였다. 희생과 헌신, 저항과 참여의 오월광주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저 격문이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전시장을 나오자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우산으로 몸을 가리고 싶지 않아 비닐 씌운 걸 팔에 낀 채 거리로 나섰다. 익히 안다고 여겨온 자리, 그곳에 내가 서 있었으며, 애써왔다는 착각이 알량했다. 계획한 일정은 끝났지만, 나는 예년처럼 묘역을 향하거나 기념관 등을 찾지는 않았다.

까라지는 걸음이 이끈 곳은 옛 전남도청 별관이었다.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또 하나의 전시를 만났다. “1980, 로숑과 쇼벨”, KBS광주 5·18 미공개사진 특별전이었다. 미디어아트로 제작된 사진들이 암막이 내려진 전시장 벽면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한 사내를 만났다. 그는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씨였다. 그를 만난 장소가 환한 대로변이었다면 유명인이라도 만난 듯 악수를 청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 그 어둠 속에서 만난 그이의 몰입에 훼방을 놓을 순 없었다. 그는 긴 목을 뺀 채, 작품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구석 깊숙이 담는 것도 모자라 동시에 본인의 휴대폰으로 전시영상을 녹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녹화해 무에 쓰려 그러나. 기억의 보조재로 되풀이해 볼 요량일까. 단 한 번의 목도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기억과 장면들이 아닌가.

그를 안다 확신하기에 만남은 너무 짧았다. 나는 그의 속을 잴 수 없다. 얕을지 깊을지, 보이는 것보다 어떨지. 일가의 돌출적인 존재인 그가 스스로의 변별적 자질을 만들어가는 저 고통스러운 과정엔 분명 응원할 구석이 있으나, 그이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본인 가계(家系)의 죄를 씻어내는 데에 있는지, 더 심원한 데에 닿고 있는지. 자, 그럼에도 그이에 관한 의심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해 오월로부터 43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해원은 멀기 때문.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의 진전은 여전하다. 이런 때에 그이의 사과가 나온 것. 그간 가해의 주체가 사과를 않았기에 유족 당사자들은 잊고 싶어도, 용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전우원 씨에게 응당 구원의 빛살을 내리자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이를 비롯한 각하 일가를 용서할 가능성과 권한은 모두 당사자들에게 있으니까.


마감 시간이 다 된 전시장에 그를 남겨놓고 나왔다. 해가 긴 오월의 세상은 아직 밝았고, 전시장의 어둠 속엔 이제 그만이 남았다. 수분 내 나올 그를 기다릴까 잠시 고민했으나, 나는 혼자만의 봉별로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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