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뻔뻔한 혐오에 맞서

기자 2023. 5.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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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2023년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대신 이들은 같은 날 기독교 단체 CTS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에 자리를 내줬다. 그것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된 행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에 부정적인 기독교 계열 문화재단이 기획한 점에서 추측은 가능하다. 줄곧 이러한 단체들은 서울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몇년째 같은 날 반대행사를 신청하고 방해했으니까.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놀라운 건 시민위원들이다. 공개된 문건에서 이들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문란하고 유해하며 공공성을 저해한다고 언급했다. 발언이 공개될 것을 모를 리 없는 이들이 폄훼와 모욕의 언사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성소수자가 광장에 나와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하는 자리와, 이를 방해하기 위해 같은 날 기획한 행사를 대치하며 동성애와 청소년을 대결 짓는 태도는 오히려 청소년과 청년들의 회복은커녕 성적 자기 결정권을 단속하고 통제하며 성평등의 가치를 저해할 뿐이다. 지역 행정과 종교단체가 뜻을 모아 인권기반 행사를 막는 상황에서, 기어이 청소년을 내세워 혐오를 수행해온 이들에게 광장을 내어주는 서울시는 혐오의 일선에 선 꼴이 되었다.

기관의 뻔뻔한 혐오는 인권 부처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이충상은 시도 때도 없이 혐오 발언을 남기며 그 자격을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군대 내 두발 규제가 인권침해라는 견해에 대해 그는 ‘항문성교로 인하여 남성 동성애자의 항문이 파열되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식시켜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발언을 남겼다.

당신이 군인의 인권을 얼마나 부정하는지는 알겠으나, 반대를 위해 내놓은 발언은 해당 사안과 어떤 연관성도 없다. 신기할 만큼 평소에도 동성애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맥락 없는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인권정책과 지자체 행정에서 주요 실무자들이 반인권적인 언사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시민의 존재를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진심인가 싶을 정도로 뻔뻔하고 적나라한 태도를 이제는 공적인 자리에서 보게 되는 시국이다. 이에 대해 생존할 권리를 요구하며 거리를 점거하는 이들의 농성장을 부수고 노동조합을 폭력단체 취급하는 현 정권의 태도와 연결 지어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권이 우스워지는 일은 절대로 당연하지 않다. 지금의 법과 정치, 인권 제도들은 혐오가 광장을 지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거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지킬 수 있다. 그것이 인권운동의 역사가 가져온 오늘의 성과이자 동시에 과제가 아닐까.

여전히 민주주의가 기능하고, 사회가 작동하고 있다면 혐오와 차별을 견제하고 인권의 가치를 실천하자.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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