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 살핀다며 빚많은 스페인에? 9000만원 유럽 출장 ‘빈손’

박국희 기자 2023. 5.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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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위 5명 8박10일 출장 결과
빚더미 스페인 가서 조언 구하니
“우리가 한국보다 빚 더 많은데…”

나랏빚을 함부로 늘릴 수 없도록 하는 ‘재정 준칙’ 제도를 살피고 오겠다며 지난 4월 유럽 3국으로 8박 10일 출장을 다녀온 여야 국회의원 5명의 총 소요 경비가 9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이 찾아간 스페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재정 건전성이 훨씬 좋지 않아 스페인 측에서 “오히려 대한민국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 등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여야 의원들이 세금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스페인 국회 구경간 기재위 의원들 -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4월 20일 스페인 마드리드 의사당에서 하원 본회의를 참관하고 있다. 앞줄 맨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재위 소속 국민의힘 윤영석·류성걸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 박상훈 스페인 대사, 민주당 김주영 의원,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윤영석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양당 간사인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과 민주당 김주영 의원 등 5명은 지난 4월 18일부터 27일까지 8박 10일간 스페인·프랑스·독일로 출장을 다녀왔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파리와 프랑크프루트 등 모두 유럽의 유명한 관광 도시다.

이들이 지난 26일 국회에 제출한 출장 보고서에 따르면, 총경비는 항공권 5496만원과 숙박비 2173만원 등 모두 8876만원이었다. 항공권은 비즈니스 클래스만 이용했다. 현재 인천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왕복 비즈니스 티켓은 1인당 약 800만원이다. 이들은 인천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직항편이 없다는 이유로 공식 일정도 없던 관광 도시 바르셀로나를 먼저 방문했다. 10일간 현지 외국인을 만나는 일정은 5개가 전부였다.

그러나 정작 국회 기재위는 이달 15일 유럽 출장 이후 처음 열린 법안 회의에서 재정 준칙 안건은 맨 끝 순번에 배치해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6월 국회 논의 일정도 불투명하다.

재정 준칙 제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하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2% 내로 유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10월 재정 준칙 논의가 시작된 이래 31개월 넘게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 기재위는 재정 준칙은 법제화하지 않고 내년 총선을 대비해 사회간접자본(SOC) 공사를 쉽게 하도록 하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 완화 법안만 소위에서 처리한 뒤 해외 출장길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9.6%인데, 유럽의 재정 준칙 제도를 배우고 오겠다며 여야 의원들이 출장을 떠난 첫 방문지인 스페인의 국가채무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안 좋은 114%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유럽 출장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스페인처럼 빚더미에 앉은 국가에 가서 뭘 보고 배워 온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출장 보고서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과 면담에 나선 스페인 하원의 재정·공공기능위원장은 “유럽연합(EU) 멤버 중 14개 국가는 재정 준칙을 지키고 있지만 스페인은 현재 지키지 않고 있다”며 “GDP 대비 채무 비율도 114% 수준으로 한국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김주영 의원이 “한국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스페인 위원장은 “한국은 (스페인에 비해) 재정 적자도 적고 채무 비율도 낮다. 오히려 스페인 측에서는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지 한국에 되묻고 싶은 부분”이라고 했다.

여야 의원들의 다음 방문지인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에는 각국 정부 당국자와의 면담 일정은 아예 없었다. 해당 국가에 위치한 국제기구 관계자들만 만났다. 나머지는 모두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 현지에 나가있는 국내 기관 및 기업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식사 일정이 전부였다.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차장과의 면담에서 기재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은 “OECD가 한국이 재정 준칙을 도입해야 할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그러자 OECD 사무차장은 “답을 내는 것은 OECD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당이 활발한 토론으로 재정 책임성과 복지국가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왜 한국 재정 준칙 도입 여부를 OECD에 문의하는지 황당하다”고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면담에는 윤영석 국회 기재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 의원은 참석하지도 않았다. 이 자리에서 라가르드 ECB 총재는 “재정 준칙은 매우 좋은 원칙이다. 재정 준칙의 가장 중요한 원칙 두 가지는 채무를 줄이는 것과 지출을 통한 구조적 개혁”이라는 원론적 주장만 했다.

여야 의원들은 출장 보고서의 재정 준칙 필요성에 대한 최종 결론에서 “재정 준칙을 도입할 경우 재정 상황 및 국제 신용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자체적인 재정 건전성 유지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병행될 때 재정 건전성이 달성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자평했다. 국회 관계자는 “지난 31개월간 국회 공청회 등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매번 했던 이야기를 기재위 의원들만 몰랐다는 것이냐”고 했다.

윤영석 국회 기재위원장은 통화에서 “이번 출장은 성과도 많았고 완전히 공무 출장이었다. 꼭 재정 준칙 법안 때문에 유럽에 간 것은 아니다”라며 “기재위 업무는 전 부처에 해당되기 때문에 현지 대사관을 찾아 애로 사항도 청취하고 도와줄 것은 도와줘야 한다. 국가 간 경제 협력과 부산 엑스포 유치 등 의원 외교 차원의 성과도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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