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 재선… 종신집권 길 열었다

김동현 기자 입력 2023. 5. 29. 02:31 수정 2023. 5. 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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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선관위 “에르도안 당선” 발표
52.1% 득표, 野 클르츠다로을루는 47.9%
에르도안 “5년 더 통치할 권한 받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대선 결선 투표에서 재선이 유력해지자 이스탄불 시내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UPI 연합뉴스

28일(현지 시각) 실시된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 소속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대통령이 당선돼 연임에 성공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선 승리가 유력해지자 이스탄불 시내에서 “오늘 우리는 역사를 다시 썼다. 투표해준 국민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고 튀르키예 국영 방송 TRT는 보도했다.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인 최고선거위원회(YSK) 아흐멧 예네르 위원장은 99.43%를 개표한 결과 에르도안 대통령이 52.1%를 얻어 승리했다고 밝혔다. 야권 연합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74) 공화인민당 후보(득표율 47.9%)를 4.2%포인트 앞섰다. 이날 선거에서 이기면서 에르도안은 총리 재임 시기(2003년 3월~2014년 8월)를 포함해 25년 동안 터키의 지도자로 군림하게 된다. 현재 69세인 그가 79세까지 집권하게 되면서 ‘사실상 종신집권’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대선 결선 투표에서 재선이 유력해지자 이스탄불 시내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에미네 에르도안. /로이터 연합뉴스

개표 시작 초기인 이날 오후 6시 19분(개표율 43%)만 해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득표율 57.1%로 클르츠다로을루 후보(42.9%)를 15%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앞섰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격차가 점점 좁혀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5년 추가로 통치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신의 뜻에 따라 여러분의 믿음에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또 “오늘의 승리자는 8200만 튀르키예 시민”이라며 “아무도 우리를 얕볼 수 없고, 아무도 우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7년 개헌을 통해 사실상 독재의 포석을 깔았다. 기존 헌법은 대통령 연임을 한 번만 가능하게 해 에르도안의 임기가 2019년 끝나야 했다. 하지만 새 헌법에 따라 실시되는 ‘첫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경우 기존의 임기를 집계하지 않고,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승리하면 추가 5년 임기를 보장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2029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28일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가 열린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개표 현황 스크린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2029년까지 집권할 길을 열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앞서 에르도안은 지난 14일 1차 투표에서 49.5%로 1위를 차지하면서 44.9%를 득표한 야권연합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에 앞섰지만 과반 달성에 실패해 1·2위 후보끼리 이날 결선 투표를 치렀다. 이슬람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성향의 에르도안과 달리 클르츠다로을루는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복원하고 친서방 노선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에르도안의 승리가 확정되면서 서방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고 러시아와의 관계도 중요시하는 외교노선이 더욱 힘을 받게 돼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자유주의 동맹 확장을 꾀하는 서방권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에르도안 체체에서 영향력을 키워온 튀르크 민족주의·이슬람주의도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1차 투표 직전까지만 해도 에르도안이 패배해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클르츠다로을루가 상당한 격차로 앞서갔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각종 대외 악재 속에서 에르도안 정권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리라화 가치를 폭락시키고 인플레이션 상태를 악화시키는 등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론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 2월 튀르키예 남동부를 덮쳐 5만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규모 7.8 대지진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등 행정 미숙의 난맥상이 드러나면서 민심은 갈수록 악화했다.

하지만 1차 투표 결과 예상을 뒤엎고 1위를 기록했다. 대선을 앞두고 흑해 가스생산시설 개통, 강습상륙함 공개식, 첨단전투기 시험비행 등의 공개 행보를 이어가면서 강력한 국가 지도자 이미지 구축에 나섰고, 수입 곡물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등 농민과 서민층을 겨냥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한 것도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28일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수도 앙카라의 대통령궁 앞에 모여 환호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2029년까지 집권할 길을 열었다. /튀르키예 대통령실, 로이터 뉴스1

여기에 1차 투표에서 5%를 득표한 강경 민족주의 성향 승리당의 시안 오안 후보가 22일 에르도안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승세를 결정적으로 굳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1차 투표와 같은 날 열린 총선에서 에르도안의 집권 여당 정의개발당(AKP)과 동맹 민족주의운동당(MHP)이 의회 600석 중 322석을 차지해 여소야대 상황으로 정국 혼란을 바라지 않는 중도 표심이 에르도안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거취가 달렸던 이번 튀르키예 대선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많은 외신 매체들로부터 일찍이 ‘올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에르도안의 연임 여부가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 향배를 포함한 외교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체제의 튀르키예는 서방의 최대 군사 동맹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도 가깝게 지내 ‘나토의 이단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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