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짐'이 필요한 시간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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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이제 제대도 했으니 몸을 만들어야겠다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운동을 제대로 해 보려고 여러 정보들을 찾다가 신기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식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라서 맛있는 것을 놓쳤을까봐, 비싼 돈값만큼 제대로 먹지 못했을까봐 전전긍긍하고 결국 필요 이상으로 과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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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이제 제대도 했으니 몸을 만들어야겠다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운동을 제대로 해 보려고 여러 정보들을 찾다가 신기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무턱대고 무거운 것을 계속 들어올리면 근육이 잔뜩 생길 줄 알았는데 강렬한 운동과 운동 사이에 잠시 쉬어주는 '끊김'을 주어야만 운동의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테니스를 배울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공을 넘겨 보겠다고 라켓을 꽉 잡고 휘둘러대다가 근육에 경련이 오고 급기야 팔꿈치에 염증까지 생긴 것이다. 테니스를 가르쳐주던 강사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라켓을 계속 꽉 쥐고 있으면 정작 공을 때릴 때 힘을 줄 수가 없어요. 이미 세게 잡고 있는 상태이니 더 이상 세게 잡는 것이 불가능하잖아요."
아, 그런 것이었나. 열심히,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등등의 말들을 평생 들으며 살아온 입장에서는 그저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집중'은 평소보다 더 많이 신경을 모으는 상태를 말하는데 평소에 '계속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논리적으로 보자면 정작 필요할 때 집중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뒤따르는 경직과 피로는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일까? 나는 뷔페에서 식사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식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라서 맛있는 것을 놓쳤을까봐, 비싼 돈값만큼 제대로 먹지 못했을까봐 전전긍긍하고 결국 필요 이상으로 과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식후에 가볍게 물을 마시며 맛을 음미하는 이완과 긴장의 오르내림이 뷔페에는 모두 생략되어 있다. 주말부부가 대개 금슬이 좋다는 속설은 부부간의 관계가 거듭해서 끊김과 이어짐을 반복하는 가운데 기분 좋은 리듬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는 옛 주택을 개조한 여관에 묵었는데 가장 괴로운 것은 부족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얇은 판자벽과 장지문이었다. 전혀 차음이 되지 않아 옆방에서 나누는 나직한 대화소리까지 다 들리다 보니 안과 밖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풀 수 없어 방 안에서도 제대로 쉬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난 약 100년간의 시간 동안 인류는 서로 더 많이, 더 빠르게 연결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자동차와 배, 비행기로 공간을 뛰어넘고 전화, TV, 인터넷 등을 통해 말과 영상을 주고받으며 행성 전체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는 것이 당연히 추구되어야 할 방향으로 여겨졌다. 최근엔 여기서 더 나아가 스마트폰, IT 기기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 누구와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유비크'(ubique)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곁에 타인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니, 그건 끔찍한 일이 아닌가?
코로나 시대 3년간의 단절을 겪으면서 우리는 전에 없이 연결에 대한 갈망을 키우게 되었다. 최근 공연, 축제 등 각종 이벤트에 사람들이 전에 없이 몰리는 것은 그 반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끊어짐도 필요하다. 휴식이 더 멋진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끊어짐은 더 건강한 관계의 필수조건일 것이다. 오늘 우선 그간 별 필요도 없이 유지해 오던 동영상 구독서비스 하나를 끊어 보려 한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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