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비상구 좌석
비행기의 ‘비상구 좌석’은 명당 자리로 꼽힌다. 앞 공간이 널찍이 비어 있어 다리를 맘껏 뻗는 게 가능해서다. 장거리 비행일수록 체감 효과가 크다. 요즘 대다수 항공사는 이런 장점을 앞세워 국제선에서는 추가 요금을 받고 비상구 좌석을 팔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아무나 앉는 곳이 아니다. 비상시 승무원과 함께 승객들의 신속한 탈출을 도와야 하는 임무가 주어지기에 비상구 개폐를 할 수 있을 만큼 신체 건강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앉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항공사들은 대개 공항에서 승객을 대면한 뒤 결격 여부를 가려 비상구 좌석을 배정한다.
지난 26일 대구공항에 착륙하던 제주발 아시아나 항공기의 비상 출입문을 상공 약 213m 지점에서 열어 승객 194명을 위험에 빠뜨린 A씨(33)가 28일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A씨는 창가 쪽 비상구 좌석에 앉아 있다가 비상구 레버를 당겨 문을 열었다고 한다. 사고 항공기 기종인 에어버스 A321-200의 그 비상구 좌석에서는 안전벨트를 풀지 않은 상태로도 비상구를 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니 아찔할 뿐이다. 비상구 좌석 규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엄밀히 조사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당시 항공기가 거의 만석이었고 비상구 좌석만 비어 있어서 A씨에게 해당 좌석이 제공됐다고 밝혔다. 공항 수속 때 비상구 좌석 규정을 설명했고 A씨가 동의해 해당 좌석 탑승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고를 막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재발 방지책으로 이날부터 같은 기종 여객기의 비상구 좌석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만석이 되더라도 위험천만한 그 자리는 비우겠다는 것인데, 이런 임시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번 사고는 돌발행동을 일으킬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승객도 간단한 동의만으로 비상구 좌석에 태울 수 있다는 허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상구 좌석에 ‘믿음직한’ 승객이 타고 있는지를 승객들이 확인해야 하는 건가. 답답한 노릇이다. 비상구 좌석 탑승자 규정과 이중삼중의 감독 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비상구 좌석은 비상시 승무원과 더불어 제일 늦게 탈출해야 하는 자리다. 그 막중한 책임을 한시도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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