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벽에서 걸어다니는 만리장성까지…

김종수 2023. 5. 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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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비 미국인 스타들의 시대가 왔다①

 

블라디 디박, 토니 쿠코치, 페자 스토야코비치, 덕 노비츠키, 스티브 내쉬, 야오밍, 디켐베 무톰보, 파우 가솔,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NBA팬들이라면 어렵지않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NBA에서 한시대를 뛰며 자신만의 족적을 남긴 선수들로, 비 미국인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NBA가 진작부터 노리고있는 목표중 하나는 단체의 세계화다. 장소는 미국이고, 미 프로농구로 불리고 있지만 압도적 기량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만큼 전세계 농구팬 모두가 주목하는 리그를 만들고 싶어한다. 현재 시점에서 이러한 바램은 실현단계에 들어섰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농구리그가 있지만 대부분 해외 팬들은 자국리그를 제외하고는 NBA에게만 관심이 있다. 자국리그보다 NBA에 관심이 더 많은 나라도 많다. 여기에는 미국인 일색이던 NBA에서 쉼없이 경쟁하고 편견과 싸워온 소수 타국선수들의 노력도 간과할 수 없다. 각나라에게 NBA를 가장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해당 나라 국적 선수가 리그에서 뛰는 것이다.


어떤 NBA 슈퍼스타도 자국 출신 선수에 비할 수는 없다. 단지 NBA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흥분할 일인데 잘하기까지 하면 해당 국가 팬들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지기 일쑤다. 아르헨티나는 축구의 나라다. 하지만 자국내에서 지노빌리의 인기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에 버금갈 정도다.


무톰보는 코트밖 선행으로 유명하다. 1997년부터 내전으로 황폐해진 조국 콩고 민주공화국을 돕기 위해 재단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에는 고향 킨샤사에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딴 '비암바 마리 무톰보 병원'을 세웠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못한 많은 콩고인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져있다. 이같은 스토리와 미담 등이 모여 각나라 NBA스타들은 자국에서 영웅으로 불리며 코트 안팎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있는 모습이다.


1990년대는 NBA 역사상 센터들이 가장 흥했던 시기로 불린다.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샤킬 오닐의 '4대 센터'에 더해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브래드 도어티, 릭 스미츠, 숀 브래들리 등 그 어느 시절보다도 뛰어난 센터가 즐비했다. 블라디 디박(55‧세르비아‧216cm)은 그러한 엄청난 빅맨 전국시대 틈바구니 속에서도 경쟁을 멈추지않았고 세차례 시즌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통해 유럽 센터 특유의 장점과 경쟁력을 확인시켜줬다.

 


정규시즌 MVP 2회, 어시스트왕 5회에 빛나는 스티브 내쉬(49‧캐나다‧188cm)는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가드중 한명이다. 비 흑인 1번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존 스탁턴과 함께 투탑으로 꼽힐만하다. 그는 뛰어난 야전사령관이자 최고의 슈터중 한명이었다. NBA 역사상 180 클럽을 4차례나 달성해 내고 이중 3번은 3시즌 연속으로 달성해냈다.


대부분 백인 단신가드들이 그렇듯 내쉬는 신체능력적인 면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나마 빠르다는 정도가 유일한 장점이었는데 거기에 더해 높은 BQ와 수준급 볼핸들링을 앞세워 능수능란하게 코트의 지휘관 역할을 해냈다. 여기에 통산 4차례나 야투 성공률 50% 이상, 3점슛 성공률 40% 이상, 자유투 성공률 90% 이상을 기록했을만큼 슈팅력 하나만큼은 당대 최고였다.


토니 쿠코치(54‧크로아티아‧208cm)는 한때 ‘유럽의 매직 존슨’으로 불렸다. 빅맨의 사이즈를 가지고 가드와 스몰포워드를 넘나들며 플레이했는데 내외곽에 걸쳐 전천후로 득점을 올리는 것을 비롯 준수한 시야를 앞세워 게임리딩까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대회에서는 볼운반, 리딩 등에 집중하며 포인트가드처럼 플레이할 때도 많았다.


쿠코치하면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시카고 불스 2차 왕조의 핵심 식스맨이다. 기량만 놓고보면 주전으로 뛰는게 맞았지만 당시 이런저런 포지션별 밸런스 문제로 주로 벤치에이스를 담당했다. 주포지션은 있지만 상황에 따라 센터 수비도 하는등 전포지션을 소화했다고 보는게 맞다. 사실상 당시 불스의 만능키 역할을 했다.


페자 스토야코비치(45‧크로아티아‧208cm)는 밀레니엄 킹스 시절의 주역중 한명으로 새크라멘토 킹스 역사상 최고의 슈터로 평가받고있는 장신 저격수다. 스토야코비치는 특유의 빠른 릴리즈에 장신의 우위를 살린 높은 타점에서 터져나오는 슈팅능력이 위협적이었다. 거리를 가리지않고 터지는 슈팅 옵션에 포스트업 등 다양한 공격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오프 더 볼 무브였다.


빈틈을 찾아다니는 눈과 센스가 매우 좋았으며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2000년대 초반 킹스가 추구하던 모션 오펜스에서는 코트 여기저기서 빈공간이 많이 생겨나는데 스토야코비치는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안정적으로 슈팅을 날려줄 수 있는 선수였다. 역대급 슈터를 논할때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교과서같은 슈터였다는 평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비흑인은 철저한 비주류다. 그중에서도 아시아는 최약체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신체조건의 열세에 리그의 크기, 발전 수준 등에서 가장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백인같은 경우 미국 현지에서 흑인들과 같이 경쟁하거나 유럽에서 그들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켰지만 아시아는 경쟁력있는 무기를 아직 갖추지못했다.


하지만 어떤 스포츠던지 이른바 ‘돌연변이’는 존재한다. 걸어다니는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야오밍(43‧중국‧226cm)은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테크닉과 좋은 슛 터치를 자랑하며 아시아 센터의 자존심을 지킨 존재다. 단순히 크기만 했으면 의미가 덜할 수 있겠으나 두두두루 갖춘게 많아 NBA흑인 빅맨들 사이에서도 정상급 기량을 과시했다.

 


덕 노비츠키(45‧독일‧213cm)는 댈러스 매버릭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비교적 약체였던 시절이 많은지라 리그를 뒤흔든 스타급 선수가 없다시피했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일한 파이널 우승을 만들어준 선수가 바로 노비츠키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그것 하나로 댈러스 역사상 최고의 영웅 논쟁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득점루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리그 역사상 유일한 180클럽 가입 파워포워드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슈팅력은 역대 빅맨들을 통틀어서도 최고를 다툴만한 수준이었다. 그냥 잘던지는 것이 아닌 키큰 슈터였다. 스트레치 빅맨의 정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슛좋은 빅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다.


디켐베 무톰보(57‧콩고‧218cm)는 현역 시절 ‘통곡의 벽’으로 불렸다. 거대하고 단단한 벽같이 포스트를 지키고 있는지라 도무지 뚫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단순히 센터로만봤을 때는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수비형'이라는 말이 붙게되면 단숨에 역대급으로 격상되도 이상할 것 없는 강력한 수비형 빅맨이다. 블록왕 3회, 리바운드왕 2회의 커리어가 이를 입증하는데 무톰보가 포스트 인근에 있으면 상대편 선수들은 돌파를 할 때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NBA 역사상 비미국인이 신인왕을 차지한 사례는 지금까지 총 4번 있었다. 캐나다 출신의 앤드류 위긴스, 호주 출신의 벤 시몬스, 슬로베니아 출신의 루카 돈치치 그리고 파우 가솔(43‧스페인‧213cm)이다. 그중에서도 가솔은 최초 수상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마크 가솔, 아드리아 가솔과 함께 형제 농구선수로도 유명하다.


뛰어난 BQ와 다재다능함을 자랑하는 유러피언 정통 빅맨으로 부드러운 포스트업에 넓은 시야 거기에 긴 슛거리 등을 통해 피지컬이나 운동능력에서 앞서는 흑인들과 맞섰다. 고 코비브라이언트가 샤킬 오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더맨으로 우승에 도전하던 시절, 가장 든든한 파트너로서 LA 레이커스의 2년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토니 파커(41‧프랑스‧188cm)와 마누 지노빌리(46‧아르헨티나‧198cm)는 역대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불리는 팀 던컨과 함께 샌안토니오 스퍼스 왕조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초창기 샌안토니오가 데이비드 로빈슨과 던컨의 ‘트윈타워’ 중심이었다면 이후에는 던컨, 파커, 지노빌리의 3총사가 오랜시간동안 샌안토니오를 지키며 서부 컨퍼런스의 강자로 위용을 뽐냈다.


파커는 4번의 우승을 경험했으며 파이널 MVP도 1회 수상했다. 커리어 초반에는 닥돌형 듀얼가드였으나 이후 꾸준하게 슈팅, 패스 등에서 발전을 가져오며 든든한 야전사령관으로 거듭난 케이스다. 엄청난 순발력과 바디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돌파 후 페인트존 득점력은 초창기부터 공인된 주무기였는데 수비가 약한 상대와 매치업될 경우 영혼까지 털어버리기 일쑤였다.


지노빌리는 현역 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 식스맨으로 불렸다. 팀에서 맡고있는 역할은 식스맨이지만 실력이 주전에 못미쳐서 식스맨을 한 것이 아닌 워낙 다방면에 재주가 많아 전략상 벤치에서 출격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2008년 올해의 식스맨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올-NBA 서드팀에도 이름을 올렸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식스맨이 올-NBA 서드팀에 입성한 것은 NBA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파커와 함께 4회 우승을 합작했다.


그 외 4대 센터중 2인인 ‘흑표범’ 하킴 올라주원(60‧213cm)과 페트릭 유잉(61‧213cm)은 각각 나이지리아와 자메이카 출신이다. 다만 올라주원은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 미국을 선택해 귀화를 했으며 유잉 또한 12살에 가족들이 미국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로 이민을 오게되면서 미국인이 된 케이스다. 둘다 미국 국가대표로 뛴 경력을 가지고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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