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의 햇빛] 세월 따라 날씨 따라

한겨레 입력 2023. 5. 28. 18:50 수정 2023. 5. 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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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순환하는 동안에도 우리 몸은 날씨 변화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더울 때는 땀을 흘려 체내 열을 빼내고, 추울 때는 근육을 떨게 하여 열을 낸다.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표피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스트레스를 받아 균열이 생긴다.

아열대 지역은 연중 날씨의 변화가 크지는 않지만, 비가 적고 일사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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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의 햇빛]

게티이미지뱅크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순환하는 동안에도 우리 몸은 날씨 변화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더울 때는 땀을 흘려 체내 열을 빼내고, 추울 때는 근육을 떨게 하여 열을 낸다. 바깥 활동을 하다 햇볕에 그을리거나 비나 눈을 맞아 축축해지기도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쾌적한 상태를 복원한다. 신진대사를 통해 얻은 에너지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날씨의 힘을 거슬러 가며 생존해 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세파에 시달려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자연에서 날씨에 노출된 물질도 풍파에 깎여 표피가 까칠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에 가보면 무상함을 실감한다. 가로수는 훌쩍 자라 이파리가 무성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집집마다 시멘트 벽재도 담벼락의 페인트칠도 모두 색이 바래고, 대문의 철재는 녹슬고, 곳곳에 표피가 벗겨져 날씨 따라 부침한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때 묻은 손으로 만지작거렸던 골목길 후미진 흙더미도 변했기는 마찬가지다. 한때는 어디선가 단단했던 암석이었겠지만, 바람에 깎여 부서진 후 이곳으로 날려 온 후에도, 한란(추움과 따듯함)이 교차하고 틈새의 물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여 뒤틀리고 쪼개지고, 미생물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성분이 변환하는 과정을 반복했을 것이다. 다만 주변 자재와는 달리 토양의 변화가 워낙 서서히 진행하다 보니 육안으로는 실감이 잘 나지 않을 뿐이다.

페인트가 자외선을 받으면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표피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스트레스를 받아 균열이 생긴다. 습기를 빨아들이는 재질이라면 우기와 건기를 거치면서 스트레스는 배가한다. 흠집이 난 자국에 빗물이 스며들거나 내린 눈이 녹아 스며든 후 얼어붙으면 표피가 부풀어 오른다. 강한 소나기구름이라도 만나 밤톨만 한 우박을 맞으면 약한 표피에는 곰보 자국이 나고 만다.

일반 재질은 햇빛과 습기에 특히 취약하다. 아열대 지역은 연중 날씨의 변화가 크지는 않지만, 비가 적고 일사량이 많다. 위도가 낮아 햇빛을 정면으로 받은 탓에 자외선의 강도가 높고 기온도 높아 재질의 화학적 변화가 심하게 일어난다. 우리나라처럼 여름에 푹푹 찌는 무더위에 겨울이면 매서운 한파가 찾아오는 지역은 연중 한란과 건습의 변동 폭이 극심하고, 특히 해안가에서는 염분에 노출되며 재질의 내구성이 빠르게 떨어진다.

전 세계가 하나의 상품 시장이 되다 보니, 외장도료와 표면 재질도 수출국의 기후 조건에 견디게끔 설계해야 한다. 유수 기업마다 아열대 기후, 아시아 몬순 기후, 극지 툰드라 기후권을 대표하는 거점에 내구성 실증 센터를 세워 놓고, 어디에 갖다 놓아도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혈안이다. 실험 환경에서 자연 상태보다 훨씬 가혹한 기후 조건을 만들어내고, 상품의 노화를 앞당겨 기대수명을 예측하기도 한다. 마냥 기후변화가 오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대신, 최악의 이상 기후 조건에 한발 앞서나가 적응력을 시험하는 셈이다. 슈퍼컴퓨터에서 가상의 지구를 모델링하고는 현재보다 몇 배가 넘는 온실기체가 대기 중에 쏟아져 나올 때를 가정하여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전망해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어엿한 영화감독이 된 주인공은 30년 만에 고향 시칠리아를 찾아온다. 한때 꿈을 심어준 영화관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내부 벽재도 헐고 낡았다. 남겨진 조각 필름을 영사기로 돌려본다. 세월 따라 날씨 따라 필름에는 군데군데 흠집이 났지만, 필름에 묻힌 기억만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때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은 여전히 마음속에 변치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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