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위인의 양면성

입력 2023. 5. 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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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커버린 딸의 책장을 정리하는 일은 뜻하지 않은 추억의 흔적을 찾고 미소 짓게 한다. 내다 놓은 위인 전집 맨 위 '칭기즈칸' 편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 위인 전집의 단골 출연자인 칭기즈칸은 사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제국을 이룬 대단한 인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인류의 '위인'이라는 대목에서는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칭기즈칸의 후예, 몽골 입장에서는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인 위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침략당하고 심지어 인종 말살까지 당한 민족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그들에게 그 이름은 민족의 수치이며, 모욕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어떤가? 한때 프랑스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인물이지만 영국이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침략자로 비치지 않을까? 결국 전쟁을 하고 영토를 넓힌 정복 군주는 한쪽의 위인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공격에서 모두의 위인이 나올 수 없다면 수비 측을 한번 보자. 영국의 대표적 식민지로 인도를 꼽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인도의 독립 영웅, 간디는 두말할 필요 없는 위인이며 수탈자인 영국에서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때 영국의 국익을 위해 아프리카 남단까지 가서 그곳 정착민을 대상으로 정복 전쟁에 참여했던 일은 이후의 행보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정치나 지도자에게서 인류의 완벽한 위인이 나올 수 없다면 과학예술 분야는 어떨까? 위인전의 단골 주인공 에디슨의 욕심과 테슬라의 몰락은 영화화돼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인류 과학기술의 발달을 방해한 빌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피카소, 애들이 보는 위인전에 그의 가정생활을 서술하지 않은 출판사에 감사를 표한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위인은 없는 것일까?

근래 여러 매체, 특히 SNS상에서 현재와 과거 인물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네 편 내 편으로 나뉘어 비속어를 섞어가며 소리를 지른다. 당시의 팩트나 상황 고려, 결과의 객관적 평가는 없다. 과와 오를 구분할 줄 모르고 그 사람 자체를 흑백으로 나눠 추앙하거나 단죄한다. 결국 배울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칭기즈칸도 나폴레옹도 에디슨도 피카소도 배울 것투성이인 사람들이다. 그들을 침략자, 전쟁광, 돈의 노예, 문란한 사람으로만 매도하면 우리에게는 신만이 배울 것이 있게 된다. 하긴 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니 그것도 포기해야 한다.

일요일 시내에 나가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처럼 집회를 여는 모습이다. 길거리에 합법적인, 원색적 선동 문구가 난무한다. 내 편이면 다 옳고 상대편이면 민족의 원수이다.

한 줄로 서서 모두 같은 방향만 바라보면 한쪽만 보이지만 동그랗게 서서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칭기즈칸의 위대함도, 그로 인해 사라져간 민족에 대한 연민도, 공존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아직 힘든 것일까.

[나공찬 대한미용성형레이저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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