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우주여행 'K굴욕史'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3. 5. 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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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투숙비 4600만원, 교통비 768억원.'

어떤가. 이 호캉스, 끌리시는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내년(2024년) 임무 종료가 예정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우주호텔'로 리뉴얼 중이다. 예로 든 금액은 이 우주호텔의 1박 숙박비와 교통비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우주 호캉스인 셈이다.

누리호 발사 소식에 우주여행이 또다시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슈퍼리치들은 우주 호캉스에 나서고 있다. 미국 백만장자인 데니스 티토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슈퍼리치 마크 셔틀워스는 이미 200억원 넘는 돈을 들여 상업 우주여행을 다녀왔고, 가볍게 대기권을 찍고 오는 우주비행 코스 예약자는 전 세계적으로 8만5000명이 넘는다. 심지어 47개국 300여 명은 예약금 10% 입금까지 마쳤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유독 우주여행이 힘을 못 쓰는 곳이 하필이면 한국이어서다. 우주여행 K굴욕사(史)라 불러도 될 정도다.

우주여행의 첫 굴욕은 2009년으로 거슬러간다. 각광받던 우주여행이, 머나먼 한국 땅의 한 지방 백화점 상품권에 체면을 구긴 사건(?)이다.

당시 30주년을 맞았던 대구백화점이 경품으로 '우주여행권'을 내건다. 발사 후 머무는 곳은 대기권 내 지상 112㎞ 상공. 무중력 상태로 지구를 감상한 뒤 바로 컴백하는 코스다. 이 상품 가격은 당시 돈으로 3억5000만원 상당. 당첨자도 나왔다. 대구에 살던 30대 여성 A씨. 그런데 왜 이 뉴스가 조용하게 묻혀버렸을까. '대한민국 우주인 1호' 타이틀로 이소연 씨를 제치고 역사의 주인공이 될 뻔했던 이분이 '쿨'하게 백화점 상품권으로 전액 교환해 가버렸기 때문이다.

우주여행의 두 번째 굴욕사는 이듬해에 벌어진다.

오픈마켓으로 유명한 11번가에서 '여행몰'을 오픈하면서 단독 론칭으로 하나투어 '우주여행' 상품을 내건 것. 당시 오픈마켓 판매가격은 20만달러. 슈퍼리치가 8만5000명 줄 서 있다는, 대기권 여행의 축소판 코스다. 결과는 역시나 굴욕. 더 충격적인 건 '모객 숫자'조차 '제로'였다는 것이다.

인구 숫자 대비 해외여행 횟수에서 세계 톱3에 드는 '여행광 한국인'들이 하필이면 왜 우주여행만큼은 꺼리는 걸까. 오랜 기간 여행전문기자를 한 필자는 한국인 특유의 K-DNA '조심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한국인들은 여행도 조심스럽게 한다. 계획을 짜고, 맛집을 예약하는 게 귀찮을 뿐이다. 그저 깃발 앞에 일렬로 서서 끌려가는 패키지여행 비중이 유독 높은 것도 이 기질 탓이다. '설렘' '모험'을 여행의 '제1요인'으로 치는 '자유여행파' 외국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기질이다.

온라인을 통해 진행했던 '마스원' 프로젝트를 기억하는가. 2015년이다. 화성 식민지화를 내걸며 돌아올 수 없는 편도 화성 여행에 지원하라며 이주 희망자를 선발했는데, 전 세계에서 20만명이 몰린다. 최종 후보는 100인. 미주 대륙 출신 39명, 유럽 31명, 아시아 16명, 아프리카 7명, 오세아니아 7명으로 구성됐는데, 놀랍게 최종군에 한국인은 없었다.

누가 '1억원을 주겠다. 우주여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한다면? 나의 대답도 "노(No)"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행전문인 나도 패키지여행만 선호한다. 조심성 K-DNA를 품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니까.

[신익수 여행전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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