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의 잠재력 경시 경향
기술변화의 본질은 개인 지원
크리에이터 경제가 바로 그것
즐기면서 일할 때 지속가능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 '큰 것'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에서 '작은 것' 우월론은 낯설다. 한국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원하는 국가 단위의 산업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 작은 기업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부에서는 작은 것의 추구를 반기업주의로 치부한다.
하지만 현대의 메가 트렌드 중 하나가 작은 것의 부상이다. 라이프스타일이 집단이나 획일성에서 개성과 다양성으로 변화함에 따라 기업도 대기업에서 스타트업, 소셜벤처,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등 다양한 규모의 기업으로 진화한다.
대도시가 승리한 것으로 보이는 도시 분야에서도 소도시화와 다핵화가 두드러진다. 대도시의 확장과 분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서울시가 '2050 그랜드 플랜'으로 '하나의 서울이 100개의 보행 생활권을 갖춘 작고 강한 서울'과 '970만 도시가 2500만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메가시티' 등 두 개의 비전을 제시하는 이유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작은 것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면 무엇을 놓친 것일까? 바로 기술 변화의 본질이다. 기술이 산업화 과정에서 큰 조직을 지원하는 기술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장기 발전 궤적은 개인 지원 기술이다. 개인 지원 기술이란 PC, 인터넷, 스마트폰, 플랫폼, 블록체인 등 개인을 해방하고 연결하는 기술이다.
개인 지원 기술의 결과는 개인 중심 경제다. 개인이 큰 조직에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자영업으로 살 수 있는 경제다. 초연결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빅테크 경제의 이면에서 이런 개인 중심 경제가 형성되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크리에이터 경제가 대표적인 개인 중심 경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라인 셀러, 인플루언서 등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제작해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환경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1인 기업이다.
공간, 장소, SNS, 위치 기반 서비스, 온라인 쇼핑몰 등 다양한 오프라인과 온라인 자원을 융합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지역 기반 로컬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기술의 발전으로 독립적인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가능해졌다.
돌이켜보면 개인 중심 경제는 항상 인류의 염원이었다. 기술이 충분히 진보하지 못한 1970년대에도 대안 경제학자 E F 슈마허와 같은 지식인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했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예측하지 못한 그는 적정 기술, 대기업 소유권의 분산, 커뮤니티 자산화, 지역 경제에서 개인 중심 '작은 경제'의 가능성을 찾았다.
슈마허가 개인 중심 경제를 추구한 이유는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노동의 중요성이다. 지속가능한 경제는 노동자에게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좋은 일은 자영업과 협동이다. 그는 기술이 허용한다면 "사람들은 자영업자가 되거나 생존과 지역 시장을 위한 자율적인 협동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현대의 크리에이터 경제가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술을 완성한 것은 아니다. 웹3과 탈중앙화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크리에이터 중심의 플랫폼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진행 중이다. 오프라인 기술도 다수의 로컬 비즈니스를 자유롭게 만드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슈마허 정신을 계승하고 완성하는 크리에이터 경제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우리가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한 미래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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