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은 ‘믿는 구석’ 있어도, 민주당은 없다 [아침햇발]

최혜정 2023. 5. 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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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김남국 의원이 지난 14일 오전 국회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최혜정ㅣ논설위원

두어해 전 코인 광풍이 몰아치던 때, 친구들과 만나면 영양제 정보 교환과 함께 코인 투자 대화가 빠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모두 손절할 틈도 없이 폭망해 비자발적 장기투자자가 된 상태지만, 친구들은 당시 자신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지인 중에는 대박 난 이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가상자산 논란이 불거질 때, 들은 적은 있지만 본 적은 없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지인’ 전설이 실화였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많은 이들에게 ‘코인 흑역사’를 떠올리게 한 김 의원은 지난 15일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사이 국회에선 ‘김남국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직자윤리법과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공직자 재산공개 대상과 국회의원 사적 이해관계 등록 대상에 가상자산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범법 여부는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고, 김 의원 입장에선 대선 자금까지 들고나온 여당의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가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으로서 상임위원회 회의 중 코인 거래로 직무를 게을리했고,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감시하는 공직자윤리법 취지를 무시한 채 수십억원대의 가상자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또 거액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과세 유예 법안을 발의해 이해충돌 논란을 빚었다. 영리 추구를 금지한 국회법 위반 논란에 앞서 선출직 공직자의 윤리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자산 증식 과정의 불투명한 해명으로 스스로 의혹을 증폭시키더니 기습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의 진상 조사와 징계 논의를 무력화했다. 시종일관 떳떳하다고 강변했지만 당의 자료 제출 요구도 뭉갰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탈당의 변에서 민주당을 “잠시 떠난다”고 했고, 잠적 직전 마지막 출연한 방송에선 ‘검찰의 기획수사설’ 주장을 반복했다.

그의 ‘자신감’의 원천은 민주당이 보인 태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휘청이다 ‘김남국 논란’으로 치명타를 맞았는데도, 당 일각에선 그를 두둔하는 수준을 넘어 당이 “너무 도덕적”이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딸’로 대표되는 이재명 대표 팬덤의 맹목적인 김 의원 지지에 조응하는 모습이다. 김 의원이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이 대표의 자타공인 최측근이라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이 대표의 미온적 태도 아래 강성 지지층은 김 의원을 비판하는 쪽에 폭력적 언사를 서슴지 않고, 권리당원들이 총선 공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니 의원들은 이들의 환심 사기에 여념이 없다. 민주당 지지율은 윤석열 정부의 숱한 논란에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중인데,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민주당의 주된 관심사가 아닌 것 같다.

민주당이 김 의원에 대해 뒤늦게, 또 유일하게 취한 조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다. 국회 차원의 징계 논의는 국회의원 직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절차다. 하지만 1991년 국회 윤리특위가 설치된 이후 의원직 제명이 이뤄진 사례는 한차례도 없다. 제명을 제외한 징계는 △공개 경고 △공개 사과 △30일 이내의 출석정지가 전부다. 2020년 21대 국회 개원 이래 윤리특위 회의는 최근까지 일곱차례 열렸는데, 국회 회의록을 보면 이 중 의원 징계안을 논의한 것은 두차례다. 그나마 비공개로 각각 26분, 4분 만에 끝났다. 안건 대부분은 ‘위원 선임’의 건이다. 윤리특위 위원을 지낸 한 의원은 “회의에서 서로 인사한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했다.

징계안은 쌓여가는데 논의는 진척이 없고, 직전 20대 국회에서도 47건의 징계안이 회기 만료로 그대로 폐기됐다. 전례에 비춰 보면, 김 의원 징계안 역시 여야의 ‘보여주기’식 말싸움이 몇차례 오간 뒤에 회기 만료로 자연스레 폐기될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민주당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프로테고 막시마’(악마로부터 방어하는 주문)까지 동원해 감싸주고 ‘가재는 게 편’인 윤리특위 논의는 실효성이 없으니, 김 의원 입장에선 ‘시간이 약’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정치권에선 흔히 이슈보다는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김남국 사태’는 김 의원을 넘어 이에 대처하는 민주당까지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민주당이 ‘남국의 강’을 건널지, ‘남국의 늪’에 빠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시간은 김 의원의 편일 수는 있어도 민주당의 편은 아닐 것이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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