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기술과 창작 노동 사이의 논란, 진짜 책임을 져야할 자는

성상민 문화평론가 입력 2023. 5. 28. 14:46 수정 2023. 5. 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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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성상민 문화평론가]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이 AI(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몇 차례 대국을 둘 때를 기억하시는가. 이세돌이 대국 중 한 번은 이겼지만 나머지 네 판은 모두 알파고의 승리로 끝나자, 한국에서는 AI를 비롯한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는 말이 무수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AI를 비롯한 여러 기술들이 고도로 발달해서 인간이 새로운 변곡점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미래학 서적 '특이점이 온다' 같은 책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비슷한 우려가 전이라고 없던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1996년 IBM이 개발한 AI '딥 블루'가 당시 러시아 출신의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를 비롯해 기술의 결과물이 때때로 인간보다 좋거나 더 나은 모습을 보일 때 이런 우려성 예측은 등장했다.

특히 2023년 현재의 상황은 더욱 극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같은 이미지 제작 및 합성을 전문으로 하는 AI가 등장한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ChatGPT로 대표되는 자연어 합성 AI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서비스로 생성한 결과물은 분명 여전히 한계가 있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결과물을 보여줘도 세부적으로 따지면 아무리 정교하게 명령어를 입력해도 어딘가 어색하거나 말이 안 되는 결과물이 쉽게 등장하고 만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세세한 측면에서는 부족해도 어찌 되었든 '그럴싸한 결과물'이 등장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어차피 모든 그림도, 글도 초안이 나온다고 다 끝나는 것은 아니며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최종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그런데 직접적인 창작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이미 AI가 확보한 다량의 빅 데이터와 경험값을 통해 손을 볼 구석이 많더라도 일단은 봐줄 만한 초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작품을 제작하는것에 걸리는 시간이 주는 것은 물론, 창작자에게 지급한 각종 인건비나 보수도 절감할 수 있다. 특히 개인 단위의 창작이 아니라 에이전시나 스튜디오와 같은 회사 단위의 창작이라면, 더욱 구미가 당길 수 밖에는 없다.

점차 부상하는 기술의 발달과 창작물 사이의 논란

▲ 대만 게임회사 레이아크가 지난 4월19일에 공개한 게임 일러스트. 겉보기에는 큰 문제 없어보이지만 일러스트의 세부적인 표현에서 AI의 활용 의혹이 제기 되었다. 사진=성상민 문화평론가 제공

그리고 창작 노동의 일각에서 이러한 '효율'을 위한 AI의 창작이 서서히 전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먼저 화제가 된 곳은 게임 영역이다. 리듬게임 'Deemo'나 'Cytus', 'VOEZ' 등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대만의 중견 게임회사 레이아크(Rayark, 雷亞遊)에서 발표하는 일러스트가 회사에 소속되거나 계약을 맺은 작가들이 그린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작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AI를 통해 제작한 다수의 그림들이 그런 것처럼, 겉보기에는 꽤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선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는 세부적인 측면에서 조금은 어색한 결과물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이를 뒷받침할 여러 의견과 주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이아크의 전 재직자가 AI 생성 일러스트의 사용 가능성이 있다고 의견을 내는 한편, 이전 레이아크에 소속된 아트팀 인력 다수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림 생성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2022년 말 레이아크에서 관련 기술직을 공개 채용 대상으로 포함시키기까지 했었다. 여가에 지난 5월 10일, 구글이 개최하는 개발자 대상 컨퍼런스 행사 '구글 I/O'에 레이아크의 CTO(최고 기술 책임자)가 참석해 게임 개발에 있어 AI의 중요함과 함께 도입 필요성을 말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다시 주목받으며 일각에서 더욱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레이아크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한 적은 없다. 레이아크가 발표한 일러스트의 디테일이 떨어지는 문제에, 여러 정황 증거들을 얼기설기 맞춘 수준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이야기할 사례는 회사가 부분적이긴 하지만 논란이 제기되자 회사가 창작물 제작 과정에서 AI 서비스의 사용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좀 더 주목해서 봐야 할 사례가 되었다.

▲ 지난 5월22일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웹툰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1화의 수정 전과 후의 한 장면. 수정 전에는 지붕과 창문이 무척이나 자연스럽지 않게 그려져 있었지만, 논란이 제기된 이후 수정되었다. 사진=성상민 문화평론가 제공

논란이 된 작품은 지난 5월 22일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동명 웹소설 원작의 웹툰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다. 원작은 지난 2021년 네이버 웹툰에 인수된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에서 연재했던 작품이자, 문피아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원작이 제법 인기가 있던 작품이었으며, 네이버 웹툰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스튜디오를 끼고 제작하는 작품이지만 모회사 플랫폼인 네이버 웹툰에서 만화판이 연재된다는 점에서 본편이 나오기 전부터 몇몇 독자들의 기대를 사던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기대는 곧바로 의혹과 비난으로 전환되었다, AI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작화의 질이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컷마다 조형이 바뀌는 인물과 사물, 제대로 형체가 완성되지 않은 채로 그려진 인체, 지붕과 창문의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배치 같은 모습들이 이 작품이 AI를 통해 제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더욱 불어일으켰다. 일각에서는 해당 만화가 일본 TV 애니메이션 '무직전생'에 등장하는 캐릭터 디자인과 어느 정도 닮았다는 것을 이유로, 제작 스튜디오 차원에서 해당 작품을 일러스트 생성 AI에 학습시켜 작품을 그리게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문제가 빠르게 확산되자 작품을 제작한 '블루라인 스튜디오'에서는 부랴부랴 해명을 1화 마지막 부분에 게시했다. 블루라인 스튜디오는 일단 부분적으로는 작품 제작에 있어 AI의 사용 여부를 인정했다. 단,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웹툰 제작 전 영역에서 AI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보정 작업 단계에 한정해서 AI를 사용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동시에 현재 게시된 작품에서 AI 보정을 삭제하여 재업로드하며, 앞으로 연재할 작품에서도 AI 작업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많은 논란을 낳았던 해당 작품의 1화는 좀 더 그럴싸한 결과물로 수정되었지만,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캡처한 이미지 파일이 계속 여기저기 퍼지는 등 논란은 아직까지는 쉽게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문제는 '기술'인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인가

이러한 문화예술 산업에서 제기된 두 개의 의혹은 창작과 관련성이 깊은 AI가 매우 빠른 속도로 산업적인 차원에서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이 사례는 좀 더 신중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의혹이 제기되는 방식에 있어 '소비자'의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웹툰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에 가해진 문제 제기와 비난이 특히나 그렇다. 해당 작품에 가해지는 비난 다수는 주로 인간이 손수 그리지 않고 어떠한 공력도 들이지 않고 쉽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만든 결과물의 품질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왜 이런 작품에 시간과 돈을 쓰도록 만드느냐”는 식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AI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몇 번의 클릭 작업만으로 작품을 완성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딸깍질'이라는 비하어가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비난은 '상품의 질'이라는 측면을 넘지 못한다. 만약 두 사례 모두 회사의 차원에서 매우 정교하게 AI에게 지시어를 입력하거나 사후 보정 작업을 통해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AI 생성 이미지를 만들었다면 이렇게 논란이 되었을까. 아마도 큰 논란도 없이 넘어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어떤 의미로는 이러한 방향의 지적은 AI를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겉보기가 시원치 않다'는 생각에 이에 부합할 근거를 찾다 AI라는 단서를 발견하는 식으로 흘렀을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작업에 AI가 사용된 '맥락'이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게임과 웹툰 두 업계는 일정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예술의 산업 영역이다. 모두 비교적인 형성된 역사가 짧으며, 업무 강도가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창작 노동자나 창작 관련 회사에 소속된 종사자에게 대한 처우에 대한 문제도 낮지 않다.

게임의 경우에는 게임 발매일이나 온라인 업데이트 예정일에 맞처 밤을 새면서 작업을 하는 '크런치 모드'(crunch mode)가 일상화되어 있다. 특히 게임 자체를 큰 폭으로 업데이트하지 않더라도, SNS 등을 통한 만화나 일러스트 같은 각종 홍보물로 적극적인 유저와의 소통의 중요성이 늘어난 지금은 기획자가 프로그래머가 아닌 홍보/마케팅이나 아트팀 종사자에게도 지속적인 업무의 부하가 가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웹툰은 웹툰이 등장하기 전 흑백의 연재 만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도 작업 강도와 창작 노동자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컬러 채색과 주간 연재가 기본이 되면서 더더욱 작업 강도가 폭증하고 말았다. 페이지 단위로 작업의 상한을 정할 수 있었던 출판/페이지뷰 만화와 달리 웹툰은 물리적인 상한선도, 합의를 통해 전한 작업의 상한선도 여전히 명확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기에 게임과 웹툰 모두 어떻게든 기술적, 도구적으로 작업 강도와 부하를 줄이기 위한 무수한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한국 웹툰의 경우에는 높은 작업 강도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한 다양한 작업 툴의 도입이 널리 주목받던 영역이었다. 본래 건축 설계 프로그램이지만 어느 순간 웹툰 배경 제작에 절찬리에 사용하는 툴이 된 '스케치업'(SketchUp)이 대표적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차원에서 제작, 배포한 만화에서 사용되는 각종 효과음 글씨체를 담아낸 폰트도 이와 상통하는 맥락이다. 두 툴 모두 분명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주지만, 요령껏 사용하지 못하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주거나 아류의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도 AI를 활용한 창작물 논란과 이어지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술의 도입이 창작자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작업량을 낮추는 것에 있어 분명 일정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작업량 그 자체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수준으로 변하는 것도, 합당한 작업량 기준을 정하기 위한 회사 단위나 산별 차원의 교섭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기술 도입은 그 자체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AI를 통해 그럴듯한 1차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게 된 현 상황에서는 도리어 자본이 더욱 낮은 가격과 적은 시간을 들여 창작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창작 노동자들이나 종사자가 과로를 비롯한 여러 노동안전보건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구조에 대한 해결 없이, 역설적으로 창작 노동자 자신들이 자신들을 위해 도입했던 기술의 도입이 자본의 더욱 효율적인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차원에서 책임을 지어야 할 것은 AI 같은 기술 그 자체나, 또는 그 기술을 '티가 나는 방식으로' 사용한 업체 개개인이 아니라 이에 대한 사용을 촉진시키고 있는 작업 환경과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판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그저 AI를 사용한 창작물에 대한 비판과 퇴출이 아니라, 이를 추동하고 있는 판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와 변화이다.

▲ 지난 5월2일 미국 작가노조(WGA, Writers Guild of America West) 협상위원회 크리스 카이저(Chris Keyser) 공동의장이 폭스 스튜디오 밖에서 열린 피켓 집회에서 “이것은 올바른 싸움이고 유일한 싸움이며 우리가 질 수 없는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사진=WGA 홈페이지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지난 5월2일부터 미국의 영상 작가 노동자들이 뭉친 노동조합인 '미국 작가길드'(또는 '미국 작가노조', WGA, Writers Guild of America West)이 약 한 달째 파업을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최저 작업료나 각본의 AI 도입 여부 등등의 여러 쟁점 사항이 있지만, 가장 큰 쟁점은 OTT에 있기 때문이다. 영상 산업에서 OTT가 빠른 속도로 보급이 되어 새로운 메인 미디어가 되었지만 정작 작가를 비롯한 창작 노동자들이 OTT가 대세가 된 환경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보상 체계를 도입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금 필요한 것은 AI 그 자체에 대한 왈가왈부 이상으로, 제대로 된 노동과 보상 체계를 작동하지 않는 산업 영역을 바꾸기 위한 강력한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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