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소름 돋는다”...집집마다 난리나게 한 이놈의 정체
겨울·봄 최저기온 높아질수록
해충들 살아남아 한번씩 번식
미국 작물 피해 매년 1조 추산
불안해진 한반도
강남서 발견된 외래종 흰개미
목조 건출물과 가구에 치명적
잠실 야구장 뒤덮은 ‘팅커벨’
해충 아니어도 공포심 유발
과학자들은 특정 곤충의 등장에 기후변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한다. 특정 곤충 개체의 증감은 기상 현상이나 천적, 먹잇감과의 상호작용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데, 기후변화 영향으로 특정 곤충의 증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악취벌레란 별칭을 가진 노린재와 모기 등이 최근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도 기후변화와 관계가 깊다는 분석이다.
레너드 슈나이더 스위스 뇌샤텔대 생물학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지난 4월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해충의 확산을 촉진시켰다”는 분석을 담은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커런트 오피니언 인 인섹트 사이언스(Current Opinion in Insect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기후변화에 대한 해충의 반응은 생물 군계나 서식지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일반적으로 기후변화로 해충 공격의 증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이 같이 분석한 것은 높아진 온도가 곤충의 발육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평균 기온 상승은 곤충의 번식력이나 생존, 개체군 규모의 확대를 가속화한다. 종의 생태나 섭식방식에 따라 정도가 달라질 순 있으나 날씨가 따뜻해지면 곤충이 한 해에 번식에 나설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또 추운 날씨가 사라짐에 따라 저온 저항성이 낮은 곤충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북미에서 주로 발생하는 점박이 날개 초파리는 영하 5도 이하의 추운 날씨에선 알을 까고 활동하지 않는다. 최저기온 증가에 따라 북미에선 점박이 날개 초파리 등장이 늘어나고 있다. 연구팀은 “겨울과 봄 최저기온 증가는 해충의 발생을 유발한다”며 “특히 온대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에서 무더기로 등장한 대형 하루살이 역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루살이 유충은 물 속에 산다. 온난화 때문에 수온이 상승하며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기후변화가 유발한 극단적인 날씨 변화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국내에선 가뭄이 이어지다 폭우가 내린 바 있다. 곤충학자들은 기후변화로 극심한 가뭄과 강우가 이어져 하루살이 개체 증감의 폭이 커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흰개미 등장엔 따뜻한 기온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해충 연구를 총괄하는 이흥식 박사는 “강남에서 발견된 외래 흰개미는 추운 날씨에서는 살지 못하고 집 밖에선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현철 부산대 생명환경화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개체에 날개가 달려 있는데 이는 짝짓기를 위한 것”이라며 “기온이 너무 낮으면 흰개미는 짝짓기에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뜻해진 온도는 곤충의 활동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곤충은 변온동물로 자신의 온도와 수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따뜻해지면 더 활동적으로, 더 차가워지면 느리게 활동한다는 게 곤충학자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활동성이 높아지며 곤충의 식욕이 과거보다 더 왕성해졌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이렇게 번식 횟수가 늘어난, 활동성이 증대된 곤충들은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도에 민감한 곤충들은 기후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곤충 수가 늘어나며 농업이 큰 피해를 받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막 메뚜기 떼는 태양을 가릴 정도로 새카맣게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옥수수 등 식량을 휩쓸어간다. 워낙에 많은 숫자라 살충제와 항공방제도 소용이 없다. 곤충으로 인해 인류 식량안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스위스 뇌샤텔대 연구팀은 2022년 4월 지구 온도가 평균 1도 상승하면 곤충으로 인한 밀이나 쌀, 옥수수 작물 생산 피해가 최대 25%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아프리카 뿐 아니라 북미나 호주 등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곤충으로 인한 작물 피해로 매년 약 10억 달러(약 1조 321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도 있다.
곤충은 질병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인간에 전염병을 전파하는 매개가 된다. 모기가 대표적이다. 모기퇴치 운동을 벌이는 국제 단체인 ‘세계모기프로그램’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7억명 가량이 모기 매개 질병에 걸린다. 이 중 100만 여명은 목숨을 잃고 있다. 기후변화로 모기 활동 시기가 길어지고 활동 영역도 확대될 것으로 분석된다. 2021년 독일에서 극심한 홍수가 발생했는데, 이 때 모기 개체 수가 평소보다 약 10배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모기매개 질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는 수도 자연히 늘 것으로 전망된다.
악취나 혐오감 같은 피해를 주는 곤충도 늘고 있다. 하비에르 구티에레즈 일란 미국 워싱턴주립대 곤충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해충관리과학’에 미국 내 노린재 개체 수가 기후변화로 수년 내 약 70% 가량 증가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3년 간 전 세계 543곳의 곤충 서식지를 분석한 후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린재 서식지가 늘어날 것을 분석한 결과다. 노린재는 위협을 받거나 짓눌리면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국내에 등장한 대형 하루살이 역시 노린재와 비슷한 혐오감을 주는 곤충이다.
곤충의 확산은 전 세계 생물 다양성도 흔든다. 어떤 곤충 개체가 늘게 되면 포식자 숫자가 늘거나 해당 곤충 개체 아래의 먹이사슬이 끊어질 수도 있다. 장이권 이화여자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천적이나 먹이감과의 상호작용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슈나이더 교수는 “기후변화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물과 해충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미 여러 방식으로 곤충 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에 따라 이런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연구를 해야 상호작용을 파악하고 인류에 위협이 될만한 요소들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농업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류 식량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곤충 때문에 코로나19를 잇는 또 다른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슈나이더 교수는 “기후변화 영향은 지역 기후와 생물 군계에 걸친 지역 생태 상호 작용의 맥락에서 연구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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