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의 ‘아름다운 동행’…야구장에 울려퍼진 농아인의 외침

배재흥 기자 2023. 5. 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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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 27일 수원 개최
선 감독 “세상 떠난 옛 청각장애인 친구 떠올라”
농아인 야구팀 15개, 등록 선수 300명 불과
지난 27일 수원 KT위즈파크 에서 열린 제14회 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에서 안산 윌로우즈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OK금융그룹 스포츠단 제공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게 아니야. 소리를 질러. 가슴이 울리도록 질러!”

충주성심학교 청각장애인 야구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글러브>에서 코치 김상남(정재영)은 상대 팀에 0-32로 완패하고도 속으로만 분을 삭이던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라고 다그친다.

상남의 눈에는 농아인의 소리가 비장애인에게 이상하게 들릴까 걱정하며 입을 닫고 산 선수들의 마음이 경기 중에 읽혔다. 선수들은 이후 야구장에서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해 생기는 약점을 메우려고 소리를 낸다. 이들의 외침은 2023년 현재 스크린 밖에서 계속되고 있다.

영화 속 농아인 야구선수들 곁에 상남이 있다면, 현실에는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있다. 지난 27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제14회 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에서 선 전 감독을 만났다.

선 전 감독은 지난 2010년 이 대회에서 시구하며 맺은 인연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농아인 야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선 전 감독은 “어렸을 적 친한 친구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었다. 세상을 일찍 떠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고, 평소 친분이 있던 주최 측 요청으로 시구를 하며, 내 이름을 걸고 대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7일 수원 KT위즈파크 에서 열린 제14회 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 우승팀 시상을 하고 있다. 수원|배재흥기자



선 전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야구 용어는 ‘희생 번트’라고 한다. 그는 농아인들의 야구 경기를 보며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선 전 감독은 “땅볼과 플라이를 치고 죽을 줄 알면서도 베이스까지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은 프로 선수들이 배워야 한다”며 “이들의 야구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고, 동료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농아인야구소프트볼연맹에 등록된 농아인 야구팀은 15개, 등록 선수는 약 300명이다. 코로나19 탓에 한동안 대회가 열리지 않아 야구를 그만둔 선수들도 많다고 한다. 야구를 즐기는 농아인들의 몇 안 되는 해방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안산 윌로우즈 소속 투수 김선도씨(26) 또한 최근 몇 년간 야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는 야구가 좋아 충주성심학교에 입학한 케이스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주말에 좋아하는 야구를 하며 평일에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안산 윌로우즈 포수 손진호와 투수 김선도. OK금융그룹 스포츠단 제공



선도씨는 수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야구는 내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코로나19 시기에 대회가 중단돼 많이 힘들었다”며 “농아인 야구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전했다.

팀 숫자가 많지 않고, 등록 선수도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농아인 야구대회는 1년에 4~5번밖에 열리지 않고 있다. 조일연 한국농아인야구소프트볼연맹 회장은 “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처럼 민간 기업에서 대회를 열어주는 것 이외에 정부 등 공적인 지원을 받아 개최되는 대회는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선 전 감독은 “선수들의 열정으로 지금까지 대회가 유지될 수 있었다. 농아인 야구가 더 활성화되도록 나를 포함한 야구인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힘을 보탰다.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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