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하는 부르고뉴가 부담스럽다면 보졸레 텐 크뤼에 주목하라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영할땐 꼬뜨 로띠 시라· 숙성되면 영락없는 부르고뉴 빌라쥐급 피노 누아 같아/보졸레와인협회·소펙사 코리아 보졸레 텐 크뤼 매력 탐구 마스터 클래스 열어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한국 와인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와인 가격도 많이 착해졌습니다. 하지만 부르고뉴 빌라쥐 와인들은 전혀 딴 세상입니다. 쥬브레 상베르탱, 샹볼 뮈지니, 몽라셰 등 꼬뜨 드 뉘와 꼬뜨 드 본을 가릴 것 없이 가격이 천청부지로 뛰고 있습니다. 와인샵에서 10만원 중반대 훌쩍 넘어서 20만원대로 올라섰고 부르고뉴 여러 지역의 포도를 섞어 만드는 기본급인 레지오날급도 5만원 밑으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니 부르고뉴에 맛들이면 패가망신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꼬드 드 뉘와 꼬뜨 드 본 와인 가격들이 급등하다보니 전에는 부르고뉴의 변방으로 취급받아 5만원 밑으로 충분히 살 수 있었던 부르고뉴 남쪽 와인들까지 덩달아 가격이 오르는 상황입니다. 꼬뜨 샬로네즈(Cote Chalonnaise) 지역의 메르퀴리(Mercurey), 지브리(Givry), 브즈롱(Bouzeron), 룰리(Rully), 몽타뉴(Montagny)가 대표적입니다. 부르고뉴 최남단 마꼬네(마꽁 Maconnais)의 ‘저렴한 몽라셰’로 불리던 푸이퓌세(Pouilly Fuisse)는 물론, 생베랑(Saint-Veran), 비레 끌레세(Vire-Clesse) 등 빌라쥐 와인들은 지역을 가릴 것 없이 부담스러운 가격이 돼 버렸습니다.
이처럼 부르고뉴 가격이 급등하면서 새롭게 조명받는 곳이 보졸레 텐 크뤼 10 CRU 와인들입니다. 발 빠른 와인 마니아들은 이미 부르고뉴 빌라쥐에서 보졸레 텐 크뤼로 갈아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매년 11월 세번째 목욕일 전세계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가메 품종으로 만드는 보졸레는 풍선껌과 체리사탕처럼 인위적인 향이 강한 햇와인으로 가볍게 마시는 와인정도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텐 크뤼로 가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크렌베리, 체리, 산딸기 등 과일향이 풍성하고 스파이시한 향신료도 느껴지며 복합미가 뛰어납니다. 탄닌도 엄청 파워풀하고 산도가 좋아 10∼20년은 끄떡없이 버팁니다.
이런 보졸레의 매력을 파헤치는 보졸레 와인 마스터 클래스가 소펙사 코리아 주최로 최근 열렸습니다. 보졸레 와인을 홍보하는 보졸레와인협회, 인터 보졸레(Inter Beaujolais) 소속의 WSET 디플로마 소유 카롤린 산토요(Caroline Santoyo)와 28살이던 2016년 국내 최연소로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한 양윤주 소믈리에와 함께 보졸레 텐 크뤼의 매력을 따라갑니다.
보졸레 텐 크뤼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일까요. 보졸레 와인을 초창기부터 수입한 배리와인 이상황 대표는 시라로 만드는 꼬뜨 로띠와 피노 누아로 만드는 부르고뉴 빌라쥐급 와인의 매력을 하나의 와인에서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텐 크뤼 가메는 영할때는 꼬뜨 로띠처럼 제비꽃향이 풍성하고 묵히면 피노 누아처럼 바뀌죠. 10~20년 지나서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면 십중팔구는 부르고뉴라고 말합니다. 영할때 마셔도 매력적이고 숙성돼도 매력적입니다. 30년은 충분히 숙성됩니다. 마셔본 보졸레 텐 크뤼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64년산인데 잘 살아있더군요. 생각보다 훨씬 잠재력 있는데 그동안 간과한 것이죠. 꼬뜨 로띠와 부르고뉴 빌라쥐 와인은 가격이 비싸지만 보졸레 텐 크뤼는 생산량도 많아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양쪽 즐거움을 누릴수 있어요. 입맛은 이미 고급화됐지만 취향이 피노 누아로 갔다면 보졸레 텐 크뤼는 굉장히 좋은 대안이랍니다. 아직 눈을 못 떠서 그렇지 이 세계로 들어오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이미 부르고뉴 와인을 많이 마신 사람들이 대안으로 보졸레 텐 크뤼를 찾기 시작했어요.”
보졸레 텐 크뤼가 숙성되면 왜 피노 누아와 비슷해 질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가메의 조상이 바로 피노 누아이기 때문입니다. 피노 누아와 화이트 품종 구에 블랑(Gouais Blanc)을 교배해서 탄생한 품종이 바로 가메랍니다. 보졸레에서는 이 가메를 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포도송이째 넣어서 만드는 홀번치 발효를 사용합니다. 홀번치로 발효하면 복합미가 높아집니다. 줄기가 지닌 향이 풍미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탄닌이 적은 품종은 탄닌 구조를 좋게 만들어주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 줄기를 통째로 집어넣으면 향과 탄닌의 추출이 더 잘 됩니다. 줄기가 적절한 포도알 사이 간격을 유지해 포도즙이 그 사이로 왔다갔다 갈수 있기 때문이죠. 포도알만 넣으면 떡처럼 돼버려 펀칭 다운이나 펌핑 오버 같은 방식으로 위 아래 포도즙을 계속 섞어줘야 합니다. 따라서 보졸레에서는 포도가 줄기까지 잘 익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풋내가 납니다. 홀번치는 현재 부르고뉴에서도 대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로마네 꽁티를 비롯해 유명한 도멘의 거의 절반 이상이 홀번치로 양조합니다. 예전에는 줄기가 안 익어서 못썼지만 지구 온난화 영향의 줄기까지 잘 익기때문입니다. 또 론과 랑그독-루시옹에서도 홀번치를 많이 사용합니다.
보졸레는 12개 아뻴라시옹이며 크게 보졸레 AOC, 보졸레 빌라쥐 AOC, 텐 크뤼 AOC로 나눕니다. 보졸레 AOC는 리옹의 바로 위쪽에 위치한 보졸레 남부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보졸레 전체 생산량의 33%이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절반 가량이 바로 보졸레 누보로 판매됩니다. 보졸레 빌라쥐는 38개 지역, 생산량의 26%를 차지하고, 보졸레 텐 크뤼는 41%에 달합니다. 텐 크뤼의 생산량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착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겁니다. 2021년 현재 와이너리 2000개, 평균 포도밭 면적 8Ha, 협동조합 9개, 네고시앙 200개입니다. 보졸레 대표 토양은 편마암(Gneiss), 블루스톤(Bluestone), 화강암(Granites), 석영(Quartz), 이회암(Marls), 라임스톤(Limestone) 등입니다. 텐 크뤼는 북쪽부터 생따모르(Saint Amour), 줄리에나(Julienas), 쉐나(Chenas), 물랭아방(Moulin a Vent), 플뢰리(Fleurie), 시로블(Chiroubles), 모르공(Morgon), 레니에(Regnie), 꼬뜨 드 브루이(Cote de Brouilly), 브루이(Brouilly)로 구성됩니다. 텐 크뤼에선 물랭아방이 ‘보졸레의 왕’으로 꼽힐 정도로 가장 파워풀합니다. 모르공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물랭아방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꼬뜨 드 브루이(310ha·평균해발고도 300m)도 매력적인 텐 크뤼입니다. 보졸레 와인 산지들은 계곡 사이에 펼쳐져 있는 곳이 많은데 꼬뜨 드 브루이는 화산 활동으로 생긴 하나의 커다란 언덕, 몽트 부르이라 햇볕이 잘 들어 포도가 잘 숙성됩니다. 포도의 당도가 높아 알코올 도수도 많이 나오는 편이라 바디감 있는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또 보졸레 와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토양은 화산분출로 생긴 변성암(Metadiorite)의 일종인 블루스톤으로 꼬뜨 드 부루이에 이 토양이 많아 와인에서 미네랄 캐릭터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블루스톤은 워낙 좀 딱딱하고 척박한 토양이라 포도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다양한 풍미와 미네랄을 움켜 쥔 가메 포도가 생산됩니다.
산기슭에 있는 브루이(1205ha·평균해발고도 290m)는 텐 크뤼중 가장 규모가 큽니다. 토양이 다양해 싱글빈야드 또는 포도밭을 블렌딩했을때 스타일이 크게 달라집니다. 브루이는 꼬뜨 드 브루이보다 더 라운드하고 마시기 편한 스타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르공과 굉장히 가까와 모르공과 유사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답니다. 브루이의 떠오르는 와이너리가 알렉산드레 뷔고(Alexandre Burgaud)로 유앤코퍼레이션에서 수입합니다. 평균 수령 80년 올드바인으로 만들며 체리, 오디, 과일 퓨레와 감초같은 허브향이 어우러집니다.
텐 크뤼에서 가장 유명한 물랭아방(626ha·평균해발고도 255m)은 ‘보졸레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파워풀한 와인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물랭아방은 ‘풍차가 있는 언덕’이란 뜻으로 부르고뉴처럼 잘게 쪼개진 포도밭인 리외디(lieu-dit)가 무려 71개에 달합니다. 화강암과 점토질 비율이 좀 높아 부르고뉴 스타일의 와인이 생산됩니다. 와이너리 이름 자체가 샤토 뒤 물랭아방(Chateau du Moulin a Vent)은 50년 수령 포도를 사용해 60% 홀번치로 만들며 검붉은 과일향, 스파이시, 장미, 제비꽃, 모란 등의 꽃과 섬세한 탄닌이 돋보입니다. 오크통 20%, 스틸 탱크 80%에서 12개월동안 숙성한 뒤 다시 스틸 탱크에서 12개월 숙성합니다. 와이너리는 쥬브레 샹베르탱에서도 와인을 만드는데 두 와인을 같은 가격에 팔았을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양윤주 소믈리에는 트러플을 곁들인 닭고기, 마라를 얹은 순대, 피시 소스를 사용한 태국 음식과 매칭을 추천합니다.
플뢰리(849ha·평균해발고도 340m)는 토양의 90%가 화강암과 규토질암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름 자체가 꽃이라는 뜻처럼 천상의 화원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합니다. 전체적으로 향이 좋은 좀 더 섬세한 스타일의 가메 와인을 만듭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은 420m까지 올라가며 리외디는 10개입니다. 샤토 드 플뢰리(Chateau de Fleurie)는 50∼100cm 깊이 화강암 토양에서 자라는 50년 수령 가메로 만들며 산화방지를 위한 이산화황(So2)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생딸기, 크렌베리, 블랙 커런트, 블랙베리로 시작해 서서히 감초같은 허브향, 다크 초콜릿향이 어우러지며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탄닌이 돋보입니다. 60% 홀번치로 15∼20일 발효하고 오크통에서 8∼9개월 숙성합니다. 양파 수프, 쌀처럼 작은 꾸스꾸스는 파스타면으로 캐주얼하게 만든 음식이나, 장어구이의 불맛과 좋은 매칭이 됩니다.
생따모르(315ha·평균해발고도 280m)는 로마 군사와 시골 아가씨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라 발렌타인데이 와인으로 많이 쓰입니다. 줄리에나스(575ha·평균해발고도 330m)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을 정도로 로마시대부터 포도재배를 많이 한 곳입니다.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알자스와 호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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