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문단에 큰 족적 남긴 소설가 최일남씨 별세

김태훈 2023. 5. 2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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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한 언론인 출신의 소설가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낸 최일남씨가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언론인으로서 권위주의 정권에 몹시 비판적이었던 고인은 신동아 기자 시절인 1980년 5공 신군부 집권과 동시에 해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해직 언론인 시절이던 1982년에는 처음으로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을 출간했다.

언론인 시절부터 권위주의 극복과 민주화에 앞장선 고인은 2008∼2010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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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절 민주화 앞장섰다가 1980년 해직
예술원 회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 지내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한 언론인 출신의 소설가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낸 최일남씨가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193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1957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생이던 1953년 잡지 ‘문예’에 단편소설 ‘쑥 이야기’가, 1956년 ‘현대문학’에 역시 단편소설 ‘파양’이 추천되며 일찌감치 등단했다. 하지만 직업 작가가 되는 대신 언론계에 투신해 1963년부터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언론인으로서 권위주의 정권에 몹시 비판적이었던 고인은 신동아 기자 시절인 1980년 5공 신군부 집권과 동시에 해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기간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을 맡은 고인은 해직 4년 만인 1984년 동아일보로 복직했고, 민주화 이후 한겨레가 창간되자 그리로 옮겨 논설고문을 지냈다.

소설가 최일남(1932∼2023). 세계일보 자료사진
고인은 1970년대부터 기자와 소설가를 병행하며 ‘서울사람들’(1975), ‘타령’(1977), ‘손꼽아 헤어보니’(1979) 등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해직 언론인 시절이던 1982년에는 처음으로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을 출간했다. 고인의 창작 활동은 2010년대 초까지도 계속 이어졌으며 장편 및 단편은 물론 에세이도 왕성하게 발표했다.

고인의 소설은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월탄문학상(1975)을 시작으로 한국일보 문학상(1981), 이상문학상(1986), 오영수 문학상(1998), 한무숙 문학상(2001), 김동리문학상(2008) 등 권위있는 문학상을 휩쓸었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1년 한국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2002년에는 예술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언론인 시절부터 권위주의 극복과 민주화에 앞장선 고인은 2008∼2010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 단체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옛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 계승을 표방한다.

유족으로 1남1녀와 사위, 며느리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9시, 장지는 성남 영생관리사업소. (031)787-1500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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