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 반도체 제재에 다급했나...“한국이 공급협력” 일방 발표한 속내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맞서 반격을 시작한 중국이 한국 붙잡기에 나서고 있다.
27일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전날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무역장관 회의에서 만나 양자 회담을 가졌다. 중국이 최근 한미일 공조 강화와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에 반발하며 한중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양국의 고위급 경제 대화가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회담 직후 발표한 자료에서 “양국이 반도체 공급망 협력 강화에 동의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회담에서 왕원타오 부장은 “양국 정상의 전략적 지도 아래 중한 경제·무역 관계가 심화·발전했다”며 “중국의 수준 높은 대외 개방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은 한국과 함께 양자 무역 및 투자 협력을 심화하는 것을 비롯해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길 원한다”고 했다. 중국 상무부는 그러면서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산업통상자원부가 회담 직후 발표한 자료에서는 반도체를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양국 경제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안 본부장이 중국 측에 교역 원활화와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고, 중국 내 우리 투자기업들의 예측 가능한 사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은 특정 분야가 아닌, 광물·원자재·부품 등 광범위한 공급망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힌 것이다. 안 본부장이 강조한 ‘상호존중 기반 양국 경협’, ‘우리 투자기업의 예측 가능한 사업 환경’은 사드 보복 이후 우리 기업의 중국 경영 상황에 대한 불만 표출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이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한중 반도체 협력 강화’를 못 박은 자료를 발표한 것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맞서 싸우려면 한국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중국은 미국 대표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서 사이버 보안 위험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에서 데이터·운송·금융 등 정보 인프라의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단해 미국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계산이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에만 중국에서 4조원의 매출(전체 매출의 11% 수준)을 올렸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그동안 ‘칩4(한·미·일·대만)’와 ‘반도체지원법’ 등으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중국을 제압하는 양상이었는데, 이제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반격이 성공하려면 한국 반도체 기업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 반도체 소비의 24%를 차지하는 중국은 마이크론에서 수입하던 낸드플래시는 YMTC(창장메모리) 등 중국 기업에서 조달하고, D램은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공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중국의 D램 메모리 선두 기업인 CXMT(창신메모리) 등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한국 기업이 향후 수년 동안 중국에 첨단 메모리를 원활하게 공급해야 한다. 당장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공급 초과’ 상황이라 마이크론 퇴출에 따른 중국의 공급망 타격이 최소화되겠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한국산 칩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전망이다.
일본과 서방 국가들이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마저 잃을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진영 구도는 ‘빅4′인 한미일·대만과 유럽이 반도체 분야에서 밀착하고, 중국은 고립된 모양새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의 강자 대만, 반도체 장비 강국인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과 손잡고 반도체 신(新)공급망을 빠르게 형성하는 중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제재를 발표했고, 지난 1월에는 일본·네덜란드 측에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기지를 둔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중국이 적극 공략하는 타깃이 된 것이다.
지난 23일 미국 의회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중국이 한국과의 대화에 나선 배경으로 보인다. 미 상무무가 중국의 제재 발표 이후 연일 한국을 향해 자국 편에 서라는 압박을 가하자 중국도 왕원타오를 통해 한국에 메시지를 전했다는 분석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장기전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특정 국가에 줄을 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일방적으로 미국이나 중국 편을 드는 결정을 내렸다가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물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 낸드플래시의 20%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생산 라인을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될 수록 중국 내 생산 기지가 삼성·SK하이닉스의 중국 판매를 보장하는 보호막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에서 삼성·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공백을 채우는 것이 중국의 반도체 자립 속도를 늦춰 오히려 미국에 이득이라는 주장 또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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