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략 점검] '자해적 광고' 언제까지 모른 척할 건가

강미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2023. 5. 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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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강미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근래 언론계에선 난데없이 등장한 '손석희 광고'가 화제였다. 손석희 전 JTBC 사장 얼굴을 앞세워 실체가 불분명한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프로그램을 알리는 광고가 인터넷상에 무작위로 뜨면서다.

이 광고로 언론인뿐만 아니라 언론사도 적잖이 피해를 봤다. 해당 광고에 JTBC를 비롯해 국내 여러 신문방송사 제호가 무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자사의 홈페이지 구성 및 디자인까지 모조리 도용당했다.

더 황당한 건 기성 언론(인) 브랜드를 악용한 광고가 다수의 언론사 웹사이트에 버젓이 노출됐다는 점이다. 그나마 광고가 조악하게 만들어져서 어렵지 않게 사기성을 의심할 수 있었지만, 신뢰가 생명인 언론의 외피를 쓰고 언론사 앞마당에서 불특정 다수를 현혹하려 들어 우려를 자아냈다.

▲ 조선일보 CI와 손석희 특파원을 사칭한 광고 배너.
▲ 조선일보 홈페이지와 손석희 특파원을 사칭해 만든 광고.

문제성 광고가 삽시간에 퍼진 원인은 구글 애드센스(AdSense)에 있다. 애드센스는 웹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60~70%를 차지하는 크롬(Chrome)을 등에 업고 디지털 매체 어느 곳에서나 흔히 자리하고 있는 보편화된 광고 상품이다. 대부분의 언론사 웹사이트에도 애드센스가 적용돼 있다. 다만,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 자동으로 구동되는 프로그래머틱(Programmatic) 방식이라 편의성이 높은 대신 필터링에는 한계가 있다. '손석희 사칭 광고'가 수차례 기사를 통해 공론화되고, 복수의 언론사가 구글 측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쉽게 근절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언론(인)을 사칭도용하는 광고 문제를 구글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언론다운 모양새는 아니다. 웹사이트를 찾는 이용자 입장에선 구글이 운영하는 광고 서비스라는 사실보다 광고를 접하게 되는 장소, 즉 개별 매체의 대응 자세나 관리 의지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 웹사이트가 뉴스라는 상품을 내놓는 언론의 홈그라운드라면 일반 기업의 홈페이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관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의 온라인 저널리즘 현주소를 보면 '광고 수질 관리'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가뜩이나 광고 물량이 없어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이것저것 가려서 받을 처지가 되느냐는 열패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광고 퀄리티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훈수'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손석희 사칭 광고'처럼 얼토당토않은 광고가 언론사 앞마당을 휘젓고 다녀도 '나 몰라라' 한다.

사실 프로그래머틱으로 돌아가는 애드센스라 해도 문제 있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걸러내려고 작정하면 방법이 아예 없진 않다. 애드센스 관리자 계정에 접속해 사이트에 뜨는 모든 광고를 최대한 자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유사시 직접 차단하면 된다. 자동화된 광고 시스템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관리하는 것이 대단히 비효율적이긴 해도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하는) 구글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는 충분히 도움 된다. 그런데도 구글과 함께 애드센스로 광고 수익을 공유하는 언론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저널리즘 혁신은 뉴스 콘텐츠 못지않게 광고도 정보성 콘텐츠로 다루는 것을 포함한다. 온라인 사이트를 방문하는 오디언스가 마주하는 것이 비단 뉴스에만 국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디언스 관계관리, 언론(사) 브랜딩 측면에서 고객 경험을 해치는 요소요소를 바꿔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단박에 내놓지 못하더라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와 행동을 보일 때 크고 작은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해외 선도 언론들은 디지털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광고 제품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용자 개개인의 콘텐츠 선호도나 이용 습관을 분석, 관심 가질 만한 광고를 자연스레 매칭하는 것이 대세다. 유효 데이터를 확보하고 적절한 기술을 입혀 뉴스제품을 선보이는 공간에서 광고도 세련되게 노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한다. 프로그래머틱 광고 게재를 중단한 블룸버그 미디어(Bloomberg Media)의 자신감도 이런 노력에서 기인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자사 디지털 플랫폼 재설계 과정을 설명하며 광고 혁신을 첫 번째 사례로 소개했다. 디지털 광고 실시간 입찰(Real-Time Bidding, RTB) 중단, 행동 데이터 고려한 광고 위치 최적화, 프리미엄 KPI(핵심성과지표) 기반 광고 제품군 개발 등을 언급했는데, 이 가운데 RTB는 구글 애드센스와 같은 프로그래머틱 광고의 일종이다.

RTB 지양 이유에 대해 블룸버그는 “공개 경매(open auction)가 사용자의 프리미엄 경험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를 제거함으로써 광고주들이 우리 팀을 통해 직접 거래하고 성과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실질적 속내야 광고주 직거래를 통해 광고 수익을 개선하는 것이겠지만, '오디언스를 최우선으로 유지하는 방법(How We're Keeping Our Audience First)'을 명분으로 내세워 광고 프리미엄화를 꾀하는 방향성만큼은 인상적이다.

▲ 공개경매 방식의 광고를 지양하는 블룸버그

질 낮은 광고가 즐비한 국내 언론사 웹사이트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사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성가신 팝업광고, 선정적 이미지로 시선을 낚는 디스플레이형 광고만이 아니라 추천뉴스 카테고리 목록에 교묘하게 끼워 넣어 기사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위장광고'도 범람하고 있다. 광고를 접하는 오디언스보다 광고로 돈을 버는 언론사-대행사 우선주의의 결과다.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고 기피하는 공간에 브랜드 광고를 붙이려 하는 광고주는 없다. 해괴한 광고들을 방치한다면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언론사 웹사이트는 골방 신세를 면키 어렵다. 오디언스에 더 나은 프리미엄 경험까진 못 주더라도, 보통의 경험마저 해치는 '자해적 광고' 정도는 걸러내야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따져 남 탓하기 전에 언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는 각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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